[한국의 사회적 기업] 문화예술분야 첫 사회적 기업 ‘노리단’

재활용 악기 만들어 연주하며 일과 놀이, 학습이 하나가 되는 곳

얼마 전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조권, 가인 커플이 홍콩으로 날아가 퍼레이드에 참가하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이 방영됐다. 한국 대표로 퍼레이드를 벌이는 문화예술기업 ‘노리단’의 일원이 잠시 되었던 것. 지난 6월 초, 서울시청 광장에서 시민들과 어울리는 ‘노리단’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화공약품 통, PE관, 자동차 휠 등 버려진 폐자재로 만든 독특한 악기들을 신나게 두들기면서 연주하는 그들. 그들을 보면서 드는 첫 느낌은 ‘어떻게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공연예술이 사람들에게 웃음과 활력, 감동을 전해주는 분야이긴 하지만, 그것도 일인데…. 어떤 일이든 되풀이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들 입가에 감도는, 아니 온몸에 철철 흘러넘치는,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것 같은 저 웃음과 에너지는 뭐란 말인가? 그런 물음표를 찍으며 ‘노리단’의 공동 대표인 안석희 씨를 만났다.
서로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르는 노리단에서 그는 ‘도리’로 불린다. 노리단이 최근 새로 둥지를 튼 ‘9로로 발전소’. 정확한 주소는 서울시 구로구 구로5동 37-11이지만, 지도에서 이곳을 찾기란 어렵다. 신도림역과 대림역을 지나는 지하철 다리 밑에 자리 잡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벽을 오렌지색으로 칠하고, 해체된 자전거를 설치미술처럼 붙여놓은(노리단에서 악기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컨테이너 건물 안에 들어가자 뜻밖의 공간이 나타났다. 주방이 딸려 있는 사무실이자 연습장인데, 편안하면서도 아늑한 인테리어 감각이 돋보였다.

“단원 중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도해서 꾸몄어요. 벽을 칠하고, 꾸미는 것 모두 단원들이 했고요.”


안석희 대표는 “우리는 산업 폐자재를 재활용해 악기를 만들 뿐 아니라, 개개인의 묻혀 있는 재능도 재활용한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노리단 단원의 일은 그래서 제한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배우가 되고, ‘워크숍’ 형태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이끌어 내는 교사 역할을 하다가, 직접 악기를 만드는 ‘장인’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단원들끼리 나눠 먹거나 다른 이들을 대접할 음식을 만들고, 청소도 하고, 새로운 공간이 생기면 인테리어까지 담당한다.

이렇게 잡다한 일들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회사가 있다면 불평부터 터져 나오지 않을까? 엄청난 연봉을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노리단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환한 웃음을 보인다. 그 만족감의 첫 번째 이유로 “놀이와 일, 배움이 분리되지 않는 이곳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노리단 단원의 연령은 17~65세. 나이도 다르고, 그전에 하던 일도 제각각이고, 신입 단원, 준단원, 정단원 등 참여하는 형태도 각기 다르고, 연봉도 다르지만 이들은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며 거리낌 없는 소통을 지향한다. 정체를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노리단이 어떤 곳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곳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노리단’의 안석희 공동대표.
1999년 서울시가 연세대에 위탁운영하면서 개관한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이곳은 ‘하하하 웃으면서 하자’ ‘준비된 사람이 먼저 하자’ ‘하고 싶은 일 하자’를 모토로 내세우며 ‘하자센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2004년 이곳에서 만난 기획자, 예술가, 청소년 11명이 노리단을 만들었다. 노리단에 처음 영감을 준 것은 15명의 가난한 소년들과 청년 신부가 만든 스페인의 어린이 서커스단 ‘벤포스타’. 3인조 밴드로 시작된 호주의 허법(Hubbub)을 만나 워크숍을 하면서는 공연과 놀이, 교육이 하나가 되는 모델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허법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은 손으로 몸을 두드리면서 노는 보디 퍼커션(Body percussion)부터 익혔다. 이들은 몸뿐 아니라 플라스틱 병 등 소품을 두들기고, 건축자재상과 재활용센터에서 재료를 찾아내 악기를 만들었다. 허법의 스티브 랭턴과 함께 개발한 악기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노리단 악기들은 버려진 물건들이 어떻게 예술의 도구로 재탄생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구로 주민들 속으로 들어간 ‘9로로 발전소’ 문 열어

위부터_ 새로 둥지를 튼 ‘9로로 발전소’ 앞에서 공연 연습을 하는 단원들. 노리단이 만든 에코 뮤지컬 〈핑팽퐁〉. 못 쓰는 물건을 해체해 악기로 재활용하는 단원들.
콜라의 페트병을 재활용한 ‘하품’. 페트병 뚜껑에 구멍을 뚫고 폐기된 자동차 타이어 밸브를 끼워 만드는 악기다. 이 밸브를 통해 공기를 주입하는데, 공기압이 높으면 고음, 공기를 빼주면 저음이 난다. 아주 맑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하늘 거품 터지는 소리’라는 뜻의 하품이란 예쁜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플라스틱 화공약품 통의 아랫부분에 구멍을 내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게 해서 만드는 악기 ‘두둥’은 드럼 같은 역할을 한다. PE관을 각기 다른 길이로 겹겹이 붙여 만든 ‘한내’는 가로 8m 세로 7m의 공간을 차지하는 거대한 악기로, 두세 명이 조를 이뤄 연주한다. 뉴기니 원주민의 전통 악기인 통가폰을 PE관으로 개량한 것. 풍성한 저음과 통통 튀는 고음이 뒤섞여 다채로운 음악을 만든다. 자동차 바퀴를 지탱하는 고강도 알루미늄 맥휠로 만드는 ‘감돌’은 바퀴가 돌면서 내부의 소용돌이치는 소리를 뿜어내기 때문에 여운이 긴 소리를 낸다. 노리단의 악기 개발은 무궁구진하다. 거리 공연 때면 3.5m 키의 거대한 자라 모양 악기가 등장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가 하면, 오토바이, 자전거의 폐자재로 만들어 바퀴로 움직이는 이동형 악기 ‘스프로킷’, 입는 악기 등도 등장한다. 버려진 물건들을 보고 ‘이 물건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데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한다. 악기를 만들다 보면 상상력과 팀워크, 장인정신, 수학과 과학 지식까지 모두 동원돼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의 장이 되곤 한다.

나무・파이프・PVC・고무・플라스틱・자동차 휠 등 여러 재료로 만드는 악기는 선율악기, 타악기, 치는 관악기 등 10여 종인데, 파워풀한 소리, 맑고 청량한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오묘한 음악이 된다. 연주가 끝나면 관객에게 직접 악기를 만져보고 쳐보고 불어보게 한다. 오랜 숙련 과정 없이도 누구든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라는 것. 처음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면서 신나게 일할 거리를 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 하나하나 사업 모델이 됐다. 직접 만든 악기들로 공연을 하고, 보디 퍼커션, 악기 등으로 워크숍을 열고, 악기를 제작해 팔거나 새로운 형태의 놀이터를 만들어주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것. ‘신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자’며 창의적·사회적 문화예술벤처를 지향했던 이들은 2007년 11월, 노동부로부터 문화예술분야의 첫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연매출은 매해 몇 배씩 늘어 지난해 18억 원을 올렸지만, 노리단은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현재 노리단 단원은 73명이다.

평균 연봉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연봉이 아니라 ‘나 자신을 찾아 즐겁게 일하고 싶어’ 합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불평은 없다고 한다. 신입 단원을 뽑는 방식도 특이하다. 어떤 재주와 능력이 있는가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게 하는 게 채용 과정.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 주부, 영화계 종사자, 배우,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과정을 통해 들어왔다. 아버지와 딸, 엄마와 아들 등 가족이 함께 활동하기도 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서로 이해하고 나누고, 그 과정을 통해 다채로운 색깔을 낸다는 것. 오리지널 공연 팀의 박태주(27) 씨는 “원래 공연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는데, 이곳에 와서 내 안에 있는 적극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우리 공연을 보고, 또는 우리가 만든 악기를 연주하며 환하게 펴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게 무엇보다 큰 기쁨이자 보람”이라고 말한다.

‘9로로 발전소’는 노리단이 지역사회에 더 깊이 들어가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만든 것. 지난 5월 말 집들이 겸해 마을축제를 벌였는데, 주민들은 노리단이 만든 다문화 음식을 맛보고, 재활용 악기를 두들기면서 놀고, 벼룩시장을 열었다. 6월부터는 ‘구로는 예술대학’을 열어 주민들이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창의력을 끄집어낼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노리단은 6월 19일부터 27일까지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에코 뮤지컬 <핑팽퐁>을 공연한다. 노리단에서 만든 재활용 악기들이 등장하면서 음악과 퍼포먼스, 노래, 신체 움직임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 2008년 5월 마카오 아트 페스티벌 초청공연 때 유료 객석 점유율 90%를 차지해 화제를 일으켰던 공연이다. 노리단은 일본・홍콩・중국・영국・미국・러시아 등 세계 각지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도쿄에서 노리단 공연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일본의 청년들이 도쿄에도 노리단을 만들겠다며 찾아왔다. 안석희 대표는 “이렇게 세계 곳곳,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노리단을 심을 계획”이라고 말한다. 곳곳에 노리단의 상상력과 활력, 에너지를 퍼뜨리겠다는 계획. 지난해 노리단은 피터드러커 혁신상, 사회적 기업 최우수혁신상, 서울시 환경상 자원 재활용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다.




일과 놀이, 학습이 하나가 되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 모두의 꿈이긴 하지만 이루기는 어려운 이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리단은 어떻게 했을까? 노리단이 신입 단원을 뽑을 때 묻는 질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①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원하는가? 소비를 줄이거나 생활을 바꿀 생각은 없는가? ② 혼자만이 아닌, 함께할 수 있는 의미를 찾는가? ③ 그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닌, 함께 성장할 파트너를 찾는가? ④ 그래서 일과 놀이, 학습을 함께할 수 있는가?

사진 : 진구
  • 201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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