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박물관・미술관을 찾아서] 전국 유일의 섬 미술관 ‘연홍미술관’ 선호남 관장

연홍도를 미술의 섬으로 만들고 싶어요

전남 고흥군 연홍도에는 폐교를 개조해 만든 ‘연홍미술관’이 있다. 해안선 길이 4km, 인구 100여명에 불과한 작은 섬에 자리 잡은 이 미술관은 영화 세트장 같은 아기자기한 공간이다. 실제로 탁재훈 주연의 영화 〈어린 왕자〉를 이곳에서 촬영했다. 돌담 너머에는 쪽빛 바닷물이 출렁거리고, 작은 마당에는 우윳빛 섬초롱이며 들국화를 닮은 마가레트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각박한 도시를 떠나 고즈넉한 여름휴가를 꿈꾼다면 연홍미술관이 어떨까. 미술관 한켠에는 숙박과 취사가 가능한 펜션이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이 머물다 가기에 불편함이 없다.
연홍도는 거금도에 딸린 ‘섬 속의 섬’이다. 거금도 남단에 있는 신양 선착장에 서면 연홍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해발 81m밖에 안 되는 낮은 구릉지대가 완만하게 이어진 능선에는 적토가 보슬보슬하게 펼쳐지고, 파란색 기와를 얹은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돌담과 흰 벽으로 이어지는 구불거리는 골목길은 얼핏 지중해 작은 마을을 닮았다. 거금도와 연홍도 사이의 거리는 불과 420m. 섬 주민이 이용하는 10인승 여객선을 타면 5분도 안 돼 도착한다.

마당에 핀 ‘섬초롱’.
연홍미술관은 미술 작품과 바닷가의 고즈넉한 풍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섬 미술관이다. 165㎡(50여 평)에 달하는 전시관에서는 1년에 5~6회 초대 기획전이 열린다. 강혜림, 김정만, 김희열 화가의 초대전을 열었고, 매년 <서양화 4인의 섬과 바다 이야기>, 연홍미술관 회원 131명의 <연홍전>,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아름다운 고흥전> 등을 연다. 최근엔 <섬 위에 떠 있는 시간들>이라는 테마로 권기현, 김창덕 등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 중이다. 매미 잡는 소년들, 타작하는 할머니 등을 소재로 한 권기현 화가의 그림에서는 삶의 표정이 묻어나고, 연홍도와 선착장 등을 소재로 한 김창덕 화가의 그림에서는 바다 내음이 물씬 난다. 전시실 한가운데에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외딴 섬마을 미술관까지 일부러 올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작년 한 해 2500여 명이 다녀갔고 이제까지 1만여 명이 방문했다 한다.

미술관 현관에서 바라본 풍경.
연홍미술관은 4년 전, 1998년에 폐교된 연홍분교를 개조해 개관했다. 문화관광부로부터 생활친화적 문화공간 조성사업에 최종 선정돼 받은 지원금이 바탕이 됐다. 이 외딴 미술관을 지키고 있는 이는 선호남 관장이다. 추계예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고향인 고흥에 내려와 식당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식당 자리가 도로에 편입되는 바람에 식당을 접은 후 아내 손을 잡고 연홍도로 들어와 연홍미술관을 열었다. 이 섬에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 하던 화가 김정만 씨를 돕다 아예 맡은 것.

부부는 1남 1녀 자녀를 다 키워놓고 섬으로 왔다. 스물일곱 살 아들은 직업군인이고, 스물다섯 살 딸은 서울서 유통업에 종사한다. 동갑내기 부부는 눈매며 표정이 꼭 닮았다. 만난 지 보름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는 부부는 함께한 세월만큼 사랑도 깊어 보였다. 선 관장이 “이 사람이 곁에 없으면 잠이 안 와요”라고 하자 부인 장경실 씨도 “나도 당신 없으면 못 자잖아요” 한다. 장씨는 녹동의 한 유치원 교사로 근무 중이다. 식당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어 주말에 단체 손님이 몰리면 혼자 50인분은 거뜬히 차려낸다고 한다. 고흥에서 나는 배추, 갓, 열무, 마늘잎으로 담근 장씨의 김치 맛이 기가 막히다.

김창덕 화가의 그림.


전시실 내부.


선호남 관장.




유채꽃보다 샛노란 갓꽃 축제 열 것

선 관장은 틈나는 대로 미술관 여기저기를 꾸민다. 몽돌을 주워 와 마당 오솔길에 깔고, 펜션이며 전시실 안의 빈 공간에 소품들을 채워 넣는다. 선 관장은 이 섬을 ‘미술의 섬’으로 꾸밀 구상 중이다. 그는 “아직 밑그림 단계”라며 이렇게 말했다.


“연홍도는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아서 테마가 있는 섬으로 만들기에 딱 좋아요. 야외 조각과 조경으로 유명한 외도처럼 말이에요. 섬 어디를 가나 조각과 그림이 있고, 어디에서나 감상하면서 쉴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주민들 소득 창출도 중요하니까 갓꽃 축제를 구상 중입니다. 고흥 갓이 유명해요. 톡 쏘는 특유의 향이 오래가죠. 갓꽃은 생명력이 강해서 바닷바람에도 쉽게 떨어지지 않아요. 꽃 본 적 있으세요? 유채꽃보다 더 샛노란 색이라 아주 예쁩니다. 섬 전체에 노란 갓꽃이 피어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얼마나 예쁘겠어요?”

이 섬의 최연장자 강안례 할머니(96).
이 섬 주민의 평균 연령은 72세. 대부분 섬 토착민이고, 외지인은 연홍미술관 관장 부부와 연홍교회 목사님 부부 네 명뿐이다. 선 관장의 하루는 섬을 돌며 문안인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연세가 있으시고 혼자 사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걱정이 되야서 그러지요”라고 말한다. 섬 주민 대부분은 어업과 농업으로 자급자족한다. 마당과 텃밭에 고추・마늘・파・상추・배추 등 각종 야채를 유기농으로 재배해 먹고, 썰물 때면 뻘에 나가 바지락을 캔다. 다시마와 미역, 톳이 지천에 널려 있고, 부두나 가까운 갯바위에 올라 낚싯대를 드리우면 팔뚝만 한 참돔・우럭 등이 잡힌다.

섬 안을 다니는 자동차는 딱 세 대, 물건을 실어 나르는 용도다. 자동차 소리, 기계음 하나 없이 적막한 가운데 파도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섬 원형의 매력을 그대로 간직한, 국내에 몇 안 되는 섬이다. 토착민과 외지인의 시선을 모두 가진 선 관장은 이 섬의 진정한 매력이 뭔지 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주민들은 “편리하면 좋은 것 아니여?” 하면서 자동차 다니는 다리가 뚫리길 바라고, 돌담을 허물고 시멘트 벽을 세웠지만, 선 관장의 생각은 다르다.

“여기 오면서 어떠셨어요? 배 두 번 타고 오자면 불편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가 있지요? 녹동에서 여기까지 다리가 뚫리면 이 섬의 매력이 사라져버려요. 작은 배를 타고 들어와서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누벼봐야 연홍도를 제대로 볼 수 있거든요.”

61년째 섬에서 사는 서필심 할머니(81).
섬을 거닐다 섬 주민들을 만났다. 톳을 마당에 널고 있는 서필심 할머니(81), 밭에서 마늘을 캐고 있는 김홍권 할아버지(77), 마을회관에 모여 마늘을 까고 있는 강안례 할머니(96). 이분들은 모두 실제 나이보다 10년 이상 젊어 보였다.

연홍도 집배원 남애자 씨(39).
“이건 국 파래여. 시원허니 맛있어. 나 젊어 보이제? 여서 산 지 61년째여. 뭐가 좋다고 영감 따라 이 섬에 와서 이 고생인가 몰러. 허허허. 영감은 하늘나라에 갔어. 그래도 우리 영감이 여물기는 했제.”(서필심 할머니)

“동네에 동갑내기가 일곱 명 있었는디, 우리 할매가 젤루 이뻤재. 8남매를 낳았는디 다 광주랑 서울 가 있어. 우리 할매도 광주 갔어. 할매 오기 전에 이 마늘 다 뽑아야 혀. 그래야 이쁨 받제. 어이, 선 관장! 쇠주 한 잔 꺼내 와봐.”(김홍권 할아버지)

“보청기? 그런 거 몰러. 그렇게 작게 얘기해두 다 들려. 장수 비결? 몰러. 그냥 잘묵으니께. 묵는 게 밥배께 읍서. 반찬두 읍서. 귀찮아서 못 혀. 그래도 감기 한 번 안 앓았어.”(강안례 할머니)

이 섬의 최연장자 강안례 할머니는 “고마워. 놀러 와줘서. 사람 구경허기 힘든디. 젊은 처자들 참으로 오랜만에 보네 그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섬의 우편배달을 담당하는 남애자 씨를 만났다. 5년째 연홍도 집배원을 하는 남씨는 매일 오후 1시 배로 왔다가 3시 배를 타고 나간다. 섬 주민 이름은 물론, 며느리와 사위 이름까지 줄줄이 꿰는 그는 연홍도 주민이나 다름없었다. 떠나는 배를 탄 기자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드는 그의 해맑은 미소가 가슴 깊이 박혔다. 39세의 그는 20대로 보였다. 연홍도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섬인가 보다.

사진 : 김선아
▣ 연홍도는…

섬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도’로 불리다가 1928년에 연홍도(連洪島)로 개칭했다. 거금도와 맥이 이어져 있다고 해서 ‘이을 연(連)’자를 쓴다. 벌교・강진・해남・금당도가 에워싸고 있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연홍미술관과 마주 보고 서 있는 금당도 절경이 빼어나다. 품질 좋은 김 산업으로 부흥해서 섬 주민이 한때 1000여 명에 달했으나 바닷물의 성질이 바뀌고 수온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소록도와 가깝고, 맑은 날엔 제주도까지 보인다.


▣ 연홍도 가는 법

1 녹동신항에서 금당도행 페리를 타면 연홍도까지 한 번에 닿는다. 소요시간은 30~40분. 하루 딱 한 번, 오후 1시 배가 있다. 녹동터미널에서 녹동신항까지 거리는 도보로 10분 정도.

2 위의 배를 놓치면 배를 두 번, 버스를 한 번 타야 한다. 녹동구항에서 매시 30분마다 출발하는 금산행 페리를 타고(20분 소요)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는 시내버스를 타고(15~20분) 신양 선착장에 내려 연홍도행 배를 이용한다(5분 소요). 거금도 북단에서 남단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 세 번밖에 없기 때문에 버스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문의 : 녹동신항(061-843-2300), 녹동구항(061-843-9184), 연홍미술관(010-7256-8855)
  • 2010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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