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39) | 버들개지 피는 이유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이 일만 끝내면 개울가 버들개지 보러 가야지!”

간신히 책상 앞에 마음을 붙들어 앉히고 다짐합니다. 아침 산책 다녀온 이가 “버들개지가 맺혔네!” 하는 바람에 ‘그거, 꽃인데! 봄꽃인데!’ 하고 온 몸이 그리로 쏠리는 것을 달래는 참입니다. 눈 그치자 봄비 오고, 꽃봉오리 맺고, 다시 꽃샘바람 불고, 비 오고, 그러면서 산골짜기는 겨울을 벗어나고 있는 모양입니다. 쓸쓸한 부음 속에서도 말입니다.

어제 산골짜기에 들어와 처음 들은 소식은 올에 일흔 넷인 권 이장님 부음이었습니다. 장년 시절 이 마을 이장을 맡아 큼직큼직한 일을 해냈다는 전력에 걸맞게 두 다리를 잃고도 웃음이 호쾌한 분이었지요. 다리가 그렇게 된 것은 어이없게도 환갑 기념 여행을 잘못 치렀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여행지 식당에서 구두를 잃고, 급히 사서 신은 싸구려 구두에 발을 상해 괴저가 생겨 진행된 탓이라고요.

처음 이사 와서는 개울 건너 이웃의 두 다리 없는 노인이 빨간 모자를 쓴 채 새벽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일하시는 모습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도시 번화가 한복판에서 이따금 그렇게 몸 상한 분들이 고무 타이어를 대고 엎드려 구걸하는 모습하고는 정말 딴판이었지요. 시간이 지나면서야, 몸하고 달리 자식이야 재산이야 마음이 넉넉한 분이라는 얘길 전해 들었습니다.

2년 전 권 이장님이 쓰러져 시내 기독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전갈을, 마침 시내에 있다가 전해 듣고 급히 병문안 간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곧 돌아가실 거라는 산골짜기 사람들 얘기와 달리, 입원실의 권 이장님은 눈빛이 밝고 맑았어요. 할머니가 “누군지 아느냐, 작가 선생댁 안사람” 하는 말에 ‘모를 리 있느냐’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이기도 했지요.

댁으로 돌아와 자리보전한 채 바깥나들이 못하실 때에도 얼굴빛이며 눈빛만은 환했습니다. 열린 방문으로 모습이 보여 멀찌감치 인사를 드리면 가까이 오라 손짓해 부르시곤 했어요.

“내가 할 일이 엄청나게 많은데, 이러고 있어!”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얼마나 재미나고 다채로웠는지 모릅니다. 젊었을 때 이런저런 큰일 한 얘기며 앞산 뒷산에 얽힌 전설이며 전쟁 때 이 산골짜기에서 일어난 얘기, 당신만이 아는 곳에서 자라는 송이버섯 얘기, 벌치는 얘기가 끝이 없었습니다. ‘언제 한번 녹음기 들고 가서 제대로 채록해야지’ 했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몇 번을 다시 쓰러지고 자리보전하는 세월이 길어지면서 그 총기도 흐려져간 모양입니다. 할머님이 용변 수발 들기에 지쳐 푸념하신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몸을 씻길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도 들려왔지요. 멀리 사는 자식도, 이웃 사는 장년들도, 차일피일 엄두를 못 내던 차에 마침 복지회관에 강연하러 갔다가 이동목욕봉사 서비스 얘길 듣고 곧바로 주소를 알아내 연결했습니다. 그 며칠 뒤부터 고마운 분들이 정기적으로 특수차를 몰고 이 산골짜기까지 와서 목욕을 시켜드릴 뿐 아니라, 가사 도우미까지 번갈아 와서 집안 청소를 하고 반찬을 만들어놓고 가곤 했답니다. 그이들 덕분에 권 이장님보다 셋이나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가 한결 편해졌다는 얘기가 들려왔지요. 그제야 개울 건너를 바라보는 내 어깨가 가뿐해졌습니다.

컴퓨터 화면의 글자들이 흩어져 버들개지를 그리는데, 내 마음은 또다시 74세 나이로 해찰을 합니다. 얼마 전 본 기사에서도 ‘74세’가 골자였던 것이 생각납니다. 독일과 미국의 과학자들이 10대부터 70대까지 남녀 2만 1000명의 행복지수를 따져보았더니 40대부터 높아지기 시작해 최고 정점을 이루었다는 그 나이 74세…. 74세에 이르러서야 정서적이며 경제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누리게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가 산골짜기에 들어온 뒤로 개울 건너 사는 세 가구의 어르신만 벌써 두 분이나 돌아가셨습니다. 해마다 많은 노인이 돌아가시지만, 태어나는 아기 하나 없는 이 산골짜기는 그러니까 지금도 끊임없이 뺄셈을 하는 중입니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새로 태어난 버들개지 구경은 명분이 대단해졌습니다. 버들개지로 말하자면 허전한 산골짜기 마을에 덧셈을 놓으러 온 것이니, 일을 다 끝내지 않고서라도 보고 오리라는 것입니다.
글쓴이 원재길·이상희 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살며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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