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박물관・미술관을 찾아서] 쇳대박물관

철물쟁이가 모은 옛 자물쇠들이 보석처럼 빛나는 곳

공연장과 카페, 음식점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방송통신대학 사이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벌겋게 녹이 슨 거대한 강철판이 턱하니 가로막는다.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한 6층짜리 건물로, 내후성 강판을 외장재로 사용했다. 내후성 강판은 어느 정도 녹이 슬어 층이 형성되면 더 이상 녹슬지 않는 재료. 거대한 쇳덩어리 같은 건물이 자물쇠-열쇠 전문 박물관인 쇳대박물관의 성격과 잘 부합된다. 쇳대는 열쇠의 사투리다. 수십 년간 철물점을 운영하며 최고의 철물 디자이너로 꼽히는 최홍규 씨가 2003년 문을 연 곳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치 않았던 공간이 나타난다. 중정이 하늘까지 뻥 뚫려 있어 바깥과 내부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천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건물 구석구석을 화사하게 비춘다. 이 건물 3층(기획 전시실)과 4층(상설 전시실)에 자리 잡은 박물관에 가려면 중정의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고대 사원 중에는 가파르고 긴 계단을 따라 올라가게 해 놓은 곳이 많다. 인간의 영역을 지나 신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옛사람들이 쓰던 자물쇠를 보러 갈 때도 그런 의식이 필요하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어두컴컴하고 좁은 복도를 지나 다시 어두운 전시실로 들어섰다. 부분 조명으로 환하게 밝힌 유리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자물쇠들. 일상적인 물건을 귀한 보석을 보여주듯 디스플레이해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열쇠와 자물쇠. 디지털 시대에는 잊혀가는 물건들이지만, 옛사람들에게 이것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게 또 있을까. 곳간 열쇠를 누가 갖느냐는 곧 살림의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를 의미했다. 황동이나 백동, 혹은 철로 만든 자물쇠에 우리 선조들은 집안의 복과 평안을 비는 마음을 새겨 넣었다. 별 장식이 없이 수수하고 소탈했던 조선시대 가구에서 자물쇠는 시선을 집중시키는 요소였다. 쌀을 넣어 보관하던 뒤주에는 붕어 모양 자물쇠를 많이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붕어가 눈을 뜨고 잔다 해서 수호(守護), 알을 많이 낳아 다산(多産), 입이 작아 들어온 재물이 나가지 않는다 해서 부(富), 물속에서 산다 해서 화재 예방의 의미가 있었다 한다. 박쥐 모양의 자물쇠는 벽사(僻邪)와 오복(五福), 거북 모양 역시 벽사와 오복에, 장수(長壽)의 의미가 담겨 있다. 壽(수) 福(복) 喜(희) 康寧(강녕) 富貴多男(부귀다남) 같은 길상문(吉祥文)과 모란, 당초, 매화, 나비 등 동식물, 기하학적 문양을 음각 혹은 은입사로 새겨 넣은 우아한 자물통.

(왼쪽) 쇳덩어리 같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이 있어 개방적인 공간이 나타난다.
(오른쪽) 상설 전시실 입구. 왼쪽 벽에 열쇠들이 장식처럼 붙어 있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양식을 가지고 있던 자물쇠들을 하나 하나 음미하며 옛사람들의 삶을 상상한다. 자물쇠에까지 저런 우아한 문양을 새겨 넣은 사람이라면 팍팍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삶의 향취를 잃지 않는 마음의 여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 자물쇠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미국에서도 전시돼 호평을 받았다. 2008년과 2009년, 일본 민예관에서 〈한국의 쇳대〉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했고, 2009년 10월부터 2010년 1월 30일까지 미국 뉴욕의 TKS 갤러리와 플러싱 타운홀에서 〈조선시대의 부적(Talismans of Protection from Chosun Korea)〉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했다. 미국 내 주요 박물관의 전시도 계획돼 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사라져가던 옛 자물쇠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자리에 올려놓는 최홍규 관장. 그가 아니었다면 이 물건들이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을 ‘철물쟁이’라고 부른다. 그가 처음 철물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세 때였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후 우연히 들른 철물점에서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한 일이 13년 동안 지속됐고, 1989년 독립해 ‘최가철물점’을 차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점차 디자인에 눈을 뜨기 시작하던 때, 최가철물점은 ‘나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찾는 강남 문화와 함께 성장했다. ‘얼마나 싸고 오래 쓰느냐’로 평가하던 물건의 가치가 ‘얼마나 독특하고 아름다운가’로 옮겨가던 때에 그는 단연 돋보였다. 작은 철물점에 있을 때부터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맞춤 제작해주었던 그. 최가철물점을 열자 “거기 가면 안 되는 게 없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액자, 촛대, 문고리, 조명 등 그가 만든 독특하고 과감한 디자인의 철물들이 고급 주택, 레스토랑, 카페, 호텔 등을 장식하고 영화 세트나 공연 무대에까지 등장하면서 그는 ‘철물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디자인의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소비자가 ‘남들이 갖기 어려운 물건을 얻었다’고 느끼게 한 것이 성공비결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옛 장인의 자취를 찾아 옛 물건을 수집해왔다. 앞선 디자인의 힘은 옛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철물점 직원으로 일할 때부터 고물상을 뒤져 옛 물건들을 모았어요. 인사동은 너무 비싸 청계천이나 황학동 등을 주로 찾았는데, 가끔 정말 좋은 물건을 횡재하는 수도 있었지요.”
▣ 쇳대박물관

주소 : 서울 종로구 동숭동 187
전화번호 : 02-766-6494
홈페이지 : www.lockmuseum.org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박물관은 옛 장인들과 만나는 장소

처음에는 토기를 모았지만, 철물쟁이 눈에 금속으로 만든 물건들이 들어와 자물쇠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집해 소장하게 된 물건이 4000여 점. 소장품을 체계적으로 정리-보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박물관 건립을 계획했다 한다. 4000여 점의 물건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한다는 그. 그에게 옛사람의 물건은 옛 장인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제가 철물을 두들기는 철물쟁이이니, 그 물건들을 볼 때의 느낌이 남다르지요. 어떤 망치로 어떻게 힘주어 두드리느냐에 따라 철물의 텍스처가 달라집니다. 제가 물건을 만들 때도 그래요. 어떤 물건은 남 주기 아까워 팔고 싶지 않은 게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남 주고도 부끄러운 게 있어요. 나만 느끼는 거지요. 물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장인들을 만납니다.”

기계화에 밀려 옛 대장간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던 그는 최가철물점에 따로 대장간을 두고 전통적인 방식의 담금질로 철물을 생산하기도 한다. “내 사주에 쇠가 있다”고 할 정도로 쇠를 좋아하는 그는 “쇠는 강하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럽다”고 말한다. 서울 논현동 가구거리에 자리 잡은 최가철물점은 지금 레노베이션 중인데, 4월에 새로 선보일 때는 1층에 대장간을 두겠다고 한다. 강남 거리를 오가는 멋쟁이들이 대장장이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쇳대박물관에서도 그가 특별히 아끼는 곳이 있다. 두석장인의 공방을 재현한 곳이다. 두석장인은 구리와 아연을 합금한 금속으로 장식을 만드는 장인. 통영에서 중요무형문화재 제64호 두석장인 김극천 선생을 만났을 때, 그분의 부친이자 역시 두석장인이었던 김덕룡 선생의 공방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그는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고 한다.

박물관 한켠에 두석장인 김극천 선생의 공방을 옮겨왔다.
“오랫동안 사용해 윗부분이 문드러진 굴림정과 빠꿈정, 끈으로 칭칭 동여맨 끌 등 혼이 담긴 공구들을 보자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어요.”

그의 마음을 읽은 김극천 선생이 기증한 공간이다. 이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자물쇠뿐 아니라 나무로 만든 빗장, 세계 각국의 자물쇠들이 함께 소장되어 있다. 유럽에서 중세 때 쓰던 일종의 자물쇠인 정조대도 볼 수 있다. 최 관장의 지인들이 외국 여행길에 구한 자물쇠들을 기증한 ‘기증실’. 화가, 배우, 디자이너, 작가, 학자, 스님, 육군 참모총장까지 그의 교유범위를 짐작케 한다. 〈건축가의 가구전〉 〈건축가의 도어핸들전〉 같은 독특한 기획 전시를 한 후 그때 나온 물건들을 최가철물점에서 생산해 판매하기도 했다. 그가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게 있다.

“외국에서 전시하면 관람객이 찬찬히 옛 물건들을 음미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옆에 붙어 있는 설명문만 보고 ‘다 알았다’는 듯 지나가버려요. 그게 안타까워 설명문을 붙이지 말까 고민하기도 했어요. 박물관 홈페이지(www.lockmuseum.org)에 들어가 미리 공부하고 와서 옛 장인들의 손길을 충분히 즐겼으면 합니다.”


사진 : 정익환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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