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Chef] 박효남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총주방장(상무)

한식으로 글로벌 리더 입맛 사로잡은 프랑스 요리 전문가

박효남 셰프는 국내 최고의 프랑스 요리 전문가로 통한다. 2001년, 전 세계 힐튼호텔 체인 최초 현지인 총주방장으로 임명된 이래 10년째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총주방장을 맡고 있다. 1961년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군인 아버지가 퇴역하면서 상경했다. 힐튼호텔 취직 당시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그는 몸으로 부딪히면서 독학으로 요리를 익혔다.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요리대회인 싱가포르 세계요리대회에서 5개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수준 높은 프랑스 요리를 선보인 공로로 한국 요리사 최초로 프랑스 정부 농업공로훈장 ‘메리트아그리콜’을 받았다.
박효남 셰프는 한국 최고의 스타 셰프 중 한 명이다. 그가 셰프로 있는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시즌즈’는 2010년 밀레가이드에서 우리나라 레스토랑 중 2위에 선정됐다(1위는 롯데호텔의 ‘피에르 가니에르’). 지난 1월 말, 박효남 셰프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글로벌 리더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슈바이처호프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된 만찬에서 박효남 셰프가 이끄는 8명의 한국 요리사들은 전복보쌈김치, 닭강정, 메밀잡채말이, 비빔밥 등을 직접 시연해 보였다. 그는 이번 행사를 통해 “외국인이 한식을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며 “한식의 세계화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프랑스 요리 전문가인 박효남 셰프가 ‘한국의 맛’을 선보이는 이번 행사의 수장을 맡은 데는 ‘끝없는 학구열’이 한몫했다.

5성급 호텔의 총주방장으로 국내 최고의 프랑스 요리 전문가 하면 화려함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의 삶은 눈물과 땀으로 점철돼 있다. 중졸로 호텔에 취직했던 그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매순간이 냉혹한 자기검열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저는 자칭 프로입니다.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늘 스스로 프로라고 자부하며 살아왔습니다. 프로는 남이 인정해주는 게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가 그만큼 노력했을 때 당당하게 붙일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가진 장점을 살려 자기가 생각하는 최고에 이르면 그게 프로 아닙니까?”

그는 점심 영업시간이 끝나는 오후 3시 정도까지 점심을 먹지 않는다. 커피를 딱 한 잔 마실 뿐이다. 포만감이 들면 만사가 귀찮고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리를 시작한 후 32년 동안 담배와 술을 안 했다고 한다. “운동선수가 몸을 관리하듯 요리사는 혀를 관리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그는 인터뷰 중 “저는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두드러진 타이틀이 없다는 말일 게다. 그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하나 했다. ‘가진 것’과 ‘갖지 않은 것’을 꼽아보자는 것이었다.

박효남 셰프가 갖지 않은 것

돈 -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퇴역하면서 가족이 다 같이 상경했는데, 아버지는 사업이 거듭 실패하면서 연탄장사, 야채장사를 했다. 그도 돈을 벌기 위해 중학교 1학년 때 의사협회에서 사환으로 일했다.

학력 - 그가 1983년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에 취직할 당시,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을 다녔고, 초당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허영심 - 최고급 프랑스 요리 전문가이지만, 자신은 이런 요리를 향유하는 고객층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가진 것

욕심 -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

성실성 - 30년 가까이 이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는 요즘도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밤 10시가 넘어 퇴근한다.

고객 취향 노트 - 모든 고객을 만족시키는 맛은 없다. 짜게 먹는 고객에게는 짜게, 싱겁게 먹는 고객에게는 싱겁게 해야 고객을 만족시킨다.


고객 취향 노트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 재미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피터 현 씨가 ‘시즌즈’를 방문해 남프랑스 요리 부이야베스를 주문했을 때다.

“맛이 없다며 다시 만들어달라고 했죠. 정성들여 다시 만들었는데, 또 다시 만들어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가서 물었죠. 간이 안 맞는다고 하더군요. ‘아차’ 싶었어요. ‘간을 내 입에 맞추었지, 손님 입에 맞춘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 고객 취향 노트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쓰기 시작한 고객 취향 노트에 기록된 단골 고객은 수백 명에 달한다. ‘피터 현 사건’은 그의 요리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그는 피터 현 씨를 “아버지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피터 현 씨는 한국에 올 때마다 꼭 ‘시즌즈’를 방문한다고 한다. 끊임없이 배움을 이어온 것도 그의 경쟁력. 지난해에는 농림수산부와 연세대가 공동 운영한 ‘한식 스타 셰프 최고위 과정’을 이수했다. 사람들은 “최고급 호텔 총주방장이 뭘 배우러 왔느냐?”며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봤지만 그는 5개월 동안 단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과정을 마쳤다.

어떻게 닭고기 속에 거위간을 쏙 박았을까?
그에게 인터뷰 전, ‘창조적 발상이 돋보이는 단 하나의 창작 요리’를 부탁했다. 완성된 요리만 봐서는 요리 재료를 알아채기 힘든 ‘닭가슴살을 이용한 거위간 요리’. 장식으로 나온 튀긴 바질 잎과 튀긴 토마토 껍질을 입에 넣으니 상큼한 향에 식욕이 돋는다. 거위간 요리 한 조각을 맛보았다. 거위간의 기름기가 고르게 밴 닭가슴살은 부드러웠고, 시금치 향이 감도는 거위간은 혀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닭고기와 거위간의 조합. 느끼할 것 같지만 아니다. 적양배추를 이용한 고구마 소스를 곁들이면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움이 배가된다.
‘시즌즈’는 계절마다 메뉴가 완전히 바뀐다. 1년에 네 번은 메뉴를 바꾼다. 그는 늘 ‘새로운 재료, 새로운 요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 꿈에서 요리한 적도 많다고 한다. 새로운 요리를 구상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은 프랑스 등 요리 선진국으로 요리 여행을 다녀오고, 외국의 요리 서적을 사 온다. 이번 다보스 행사가 끝난 후에는 프랑스 르와르 지방을 방문해 재래시장을 누볐다고 한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오른 요리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GRANDS CRUS CLASSES TOP CHEFS OF THE WORLD(세계 최고의 요리사)》. 세계 최고의 요리사 63명과 그들의 대표 요리 한 가지씩을 소개한 이 책에 그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소개됐다.

그는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의 상징적인 존재다. 자본은 댈 테니 ‘박효남’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차리자는 제안도 많지만, “아직까지는 전혀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고액의 연봉을 제시하는 스카우트 제안도 많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이곳이 나를 알아주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지금의 그를 가능케 한 가장 큰 힘은 긍정의 힘이다. 그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 한 마디가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작두에 잘려 나갔다고 한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다행이에요. 중지까지 잘려 나갔으면 요리사가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이것만 잘린 건 축복이죠.”

그는 요리사 지망생들에게 우상 같은 존재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편지도 많이 받는데, 그는 일일이 답장한다고 한다. 그에게 요리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죽기 살기로 해야 합니다. 요리의 기술이나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는 마음자세를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해요. 또 어디를 가든 이름 석 자를 남기라고 합니다. 호텔에 20여 명의 실습생들이 왔다 가면 그중 죽기 살기로 했던 친구들은 꼭 기억에 남아요. 그런 친구들한테 기회가 열립니다.”

사진 : 이창주
▣ 닭가슴살을 이용한 거위간 요리 만들기


① 거위간과 닭가슴살을 소금과 후추로 간한다.
② 거위간을 돌돌 말아 시금치 잎으로 감싼다.
③ ②를 다시 닭가슴살로 돌돌 말아 진공 포장해 냉장고에 하루 이상 보관한 후 삶는다. 약한 불에 익혀야 닭고기 살이 퍽퍽하지 않고 부드럽다.
④ 적양배추, 사과, 주니퍼 베리(상큼한 향이 나며, 가금류의 누린내를 없애준다), 월계수 잎, 설탕, 레드와인, 레드와인 식초를 믹서에 넣고 갈아 2시간 동안 약한 불에 뭉근하게 끓인다.
⑤ 삶아서 으깬 고구마를 넣어 ④에 섞는다.
⑥ ⑤를 접시에 얇게 깐 후 ③을 한입 크기로 잘라서 얹는다.
⑦ 튀긴 토마토 껍질과 튀긴 바질 잎 등으로 장식한다.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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