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을 매혹시킨 우리 조각보] 일본에 한국의 생활문화 알리는 조각보 작가 김명숙

조각보 바느질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이겨냈어요

조각보 작가 김명숙(56) 씨의 작업실 겸 살림집은 경상남도 하동군 진교면 이곡리에 있다. 배나무가 많아 ‘배골’이라 불리는 이곳은 버스가 하루에 두 번밖에 들어오지 않는 시골이다. 진교 버스정류장에서 그의 집까지는 택시로 5분 거리지만, 걸으면 30여 분 걸린다. 그 길을 그는 곧잘 걸어 다닌다고 한다. 차 마시는 사람, 도자기 굽는 사람, 책 만드는 사람, 조각보 배우려는 사람들이 수시로 이 시골길을 지나 그를 찾아온다.
그가 작업실로 쓰고 있는 거실의 넓은 창문 너머로 햇볕이 잘 드는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는 이 마당에 꽃을 심어 가꾸고, 천연 염색에 필요한 식물을 길러 거둔다. 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의 소박한 한 칸 다실은 부러움의 대상이고, 그가 가꾼 소박한 마당은 ‘한국의 미의식’을 잘 살린 공간으로 KBS1 TV 〈아름다운 정원〉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명숙 씨가 조각보 작가가 된 지 11년째. 바느질을 좋아하던 평범한 주부가 조각보 작가로 인정받기까지는 고통과 시련이라는 담금질의 시간이 있었다. 크게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이마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얼굴의 상처 때문에 외출할 때마다 두건을 쓰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그때 그를 고통에서 건져낸 것이 바느질이었다.

“가장 힘든 때 조각보를 만났어요. 친구가 ‘시어머니가 만든 것’이라며 모시 조각보를 선물했는데, 너무 예뻐서 통유리에 붙여놓고 보았죠. 그 선과 색감에 반했어요. 저도 광목으로 만들어보았는데, 친구들이 모두 예쁘다고 감탄했어요. 제가 만든 조각보들이 이리저리 팔려 나가면서 어느새 조각보 작가가 되었습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은 뭐든 좋아해 염색·도자기·동양자수 등을 배워뒀는데, 그게 조각보를 만드는 데 모두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바느질은 그에게 사색과 명상의 도구가 됐고, 고통을 견디는 힘이 됐다. 조각보는 그와 옛 여인들의 삶을 잇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조각보를 이야기할 때 면과 면의 분할, 색의 조합 등 미적인 아름다움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렇다고 조각보가 단순히 아름다움만 좇는 것은 아닙니다. 조각보는 복을 싼다는 의미도 있지요. 또 이 세상에는 허투루 버릴 것이 없다는 생활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옛 어머니들은 바느질을 하면서 옆에 있는 딸한테 자투리 천을 주고 연습하라고 했지요. 조각보를 만들 때는 홈질, 시침질, 공그르기 등 갖가지 바느질 기법을 다 활용해야 하거든요. 자투리 천과 자투리 천을 이으면서 바느질을 익히고 조형미와 색의 조화 등 미감(美感)도 발달합니다. 조각보를 만들면서 옛 여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되는 거지요.”

그는 모시·안동포·광목·명주 등 자연 소재에 쪽염·감염 등 천연 염색한 것을 쓴다. 제일 좋아하는 소재는 가늘고 고운 베인 안동포라고 한다. 직접 염색해서 쓰기도 하고, 진주 중앙시장의 한복집에서 원단을 끊어 오기도 하지만, 그가 정말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수십 년 혹은 100년이 넘은 ‘옛날 천’이다.

“안동에 일흔 평생 자수를 해오신 할머니가 한 분 계세요. 그분이 제가 옛날 천을 찾으러 골동품 가게까지 드나든다는 소리를 듣고 ‘이모가 주셨다’며 오래된 천을 주셨어요. 그 이모는 시어머니한테 받은 것인데, 아까워서 못 쓰고 간직하셨다면서. 100년이 넘은 천이지요.”


바느질하고 마당 가꾸는 ‘한국의 타샤 튜더’

그의 벽장은 이렇게 지인들이 보내준 귀한 천들로 가득하다. 평생 조각보를 지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충분하다고 한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2년씩 걸리기도 해요. 삼베는 1년 정도 묵혔다 쓰는 경우도 많고,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다 보니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정성이 들어가지요.”

그의 조각보는 무념무상을 떠올리는 간결한 선에 자연스러운 색감이 특징이다. 광목으로 감물을 들여 소박한 느낌이 드는 ‘가슴속에 묻어둔 고향’, 옥사에 자연 염색한 ‘진정한 봄’, 안동포로 만든 ‘바람의 길’ 등을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옥사는 둘 이상의 누에가 모여 하나의 고치로 만든 것에서 뽑은 실로 직조한 원단으로, 굵고 가는 실이 함께 어우러져 거친 듯한 느낌이 든다. 안동포는 안동지역에서 나는 마 직물로, 신라 선덕여왕 때 베 짜기 대회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서 조선시대까지 진상품으로 쓰이던 질 좋은 천. 그는 기교를 부리기보다 원단이 가진 자연미를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저는 사람의 기운을 믿는 사람이에요. 낡디낡은 볼품없는 보자기에서도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심성이 느껴져 옛날 물건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조각보 바느질할 때 항상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100년이 지난 후 이 조각보를 누군가 본다고 상상하면서요.”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 그는 바느질을 하지 않고 마당으로 나간다. 꽃과 나무를 가꾸면서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요즘 그는 올가을 일본 교토 소무시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 준비로 열심히 바늘을 놀리고 있다. 2007년 우리나라의 조각보 작가 세 명이 함께 초대받아 전시했던 곳인데, 올해는 그 혼자 초대받아 개인전을 연다. 요즘 일본 주부들이 가장 배우고 싶어하는 것 중 하나가 ‘조선의 조각보’라고 한다. 조각보로 만든 보자기는 우리 생활문화에서 필수품이었다. 부잣집에서는 수백 장씩 갖춰두고 용도에 맞게 사용했는데, 회초리를 싸는 회초리보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한다. 그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특강, 시연 등을 하면서 우리의 조각보를 전파하고 있다.

“교토에서 전시할 때였어요. 한 일본인 관람객이 제 작품 ‘바람의 길’을 보고, 왜 한 방향으로 바느질했느냐고 묻더군요. ‘물고기의 비늘이 한 방향이듯이 자연의 순리를 따른 것’이라고 대답했죠. 일본에 가면 한국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질문들을 해 흥미롭습니다.”


그는 우리 조각보에 이런 철학이 깃들어 있기에 일본인이 더 열광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일본 전시 외에도 하동의 매암차문화박물관에서 열었던 전시와 진주의 진주문고에서 도자기 장인, 소목장과 함께했던 <전통공예 3인전>이 특별히 인상 깊었다고 그는 말한다. 평생 안동에서 살아온 그가 배골에 둥지를 튼 지는 올해로 4년째. 이곳에서 바느질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글을 쓰는 그를 보고 18세기의 생활양식 그대로 살았던 미국의 자연주의 동화작가 타샤 튜더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손수 지은 한복인 배자를 입고 있는 그에게 “타샤 튜더가 떠오른다”고 하자 그가 수줍은 웃음을 짓는다.

“바느질하다 문득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이런 게 행복이구나’ 하고요.”

이제 완연한 봄을 앞두고 있는 남도. 그의 머릿속은 온통 마당에 꽃씨 뿌리는 일로 가득하다. 그가 거둔 식물들은 천연 염색을 통해 그의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올 것이다.

사진 : 정익환
  • 2010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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