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떠돌며 자연 소재 찾아 옷 만드는 이새(isae)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명욱

이제 의류에도 친환경을 접목할 때입니다

“1770년대 프랑스의 젊은 식물학자는 비밀 업무를 달성하기 위해 멕시코로 건너갔다. 그의 임무는 무엇이었을까? 발각되었다가는 최소한 화형에 처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가 훔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스페니시 레드의 비밀이었다.”
-빅토리아 핀레이 《컬러여행》 중에서
천연 직물과 천연 염료로 옷을 짓는 (주)이새FnC(www.isae.co.kr)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최명욱(34) 씨도 1770년대 프랑스 식물학자와 닮았다. 전 세계 어떤 디자이너도 사용한 적 없는 자연 소재, 자연의 오묘한 색을 찾기 위해 4년여 동안 인도・중국・네팔 등지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이 때문에 그가 디자인한 옷은 무어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오묘한 색에 처음 느껴보는 감촉이 인상적이라는 반응을 얻고 있다.

‘이새’는 여성의 집안일을 일컫는 순 우리말로, 그동안 소박한 면, 기품이 있는 마, 부드러운 모, 우아한 실크 등 천연 직물로 옷을 지어왔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천연 재료로 실을 잣고, 천연 염료로 물들여 베틀에서 옛 수공 방식으로 옷을 만듭니다. 자연 그대로의 질감과 빛깔을 담기 위해서지요.”

㈜이새FnC의 정경아 대표가 세계 곳곳의 오지를 찾아다니며 천연 소재를 찾아내면, 그가 현지로 날아가 옷을 만드는 원단으로 개발할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원단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만 보이면 무조건 모험을 감행한다.

“최근 중요한 트렌드 중 하나가 친환경입니다. 식문화나 주거문화에서는 친환경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만, 옷에 있어서만큼은 관심만 있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이새를 통해 이런 문화를 활성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요.”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한 그는 옷도 식품처럼 자연과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것이 지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아프리카에서 찾아낸 신소재 케나프는 전 세계 패션계에서 처음 시도하는 소재로, 2010년 1월 특허를 내고 이새의 주소재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케나프는 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식물인데, 마와 비슷한 소재예요. 황마나 리넨과 같은 느낌인데 저지물로도 활용 가능해요.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과 실루엣을 소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소재지요.”

네틀(Nettle)이라 불리는, 네팔의 고생지대에서 자생하는 쐐기풀도 원단 개발 중이다.

신소재 원단 개발은 신약 개발과 맞먹는 부가가치를 만드는 상품이다. 지난해 겨울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린 ‘2010 SS서울패션위크’에서 발표했던 중국 항주의 진흙도 그 예다.

“항주의 토양 속에 ‘벨라도라’라고,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이 있어요. 그 식물의 뿌리와 토양이 만나면서 생긴 흙이 가죽 느낌같이 검은 청색을 냅니다. 이것으로 염색하면 원단이 빳빳해지는데, 흙 속의 타닌이라는 성분이 작용해서 그런 겁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가죽 옷 같지요. 여름에 입기 좋은 시원한 소재인데, 가죽 옷같이 보이니 정말 독특하지요.”


중국 항주의 진흙을 숙성시켜 염색한 옷

그는 봄이면 이 진흙 염색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데, 친구들이 자신들 옷도 만들어 달라고 성화라고 한다. 항주의 진흙을 6개월에서 1년 정도 숙성시킨 후 염색해서 만든 옷. 그는 우리나라 전통 염색인 먹물 염색도 활용하는데, 농도에 따라 회색에서 검정까지 다양한 색감을 내면서 화학염료로는 낼 수 없는 깊은 맛을 낸다고 한다.

“이새의 기본 색은 우리의 전통 색인 소색(素色)이에요. 완전히 하얀빛도 아니고 누런빛도 아닌, 우리만의 색깔이지요. 우리 전통 색은 회색도 아이보리가 섞인 따뜻한 회색이고, 갈색도 마찬가지지요.”

그가 옷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그는 스물다섯 살이던 1991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러스트와 만화에 심취해 있던 때라 만화 강국인 일본에서 공부할 생각으로 도쿄에서 어학코스를 밟고 있을 때였다. 같이 일본어를 배우던 친구가 세계적인 패션학교인 ‘도쿄모드’에 입학원서를 내러 간다고 해서 따라 나선 길. 그도 원서를 하나 받아 일본어 공부하는 셈치고 작성했다.

“커리큘럼을 주는데,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가르치는 과정이 있더군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게 배울 기회라는 생각에 진로를 급선회했습니다.”

원단은커녕 기본 바느질조차 할 줄 모르던 그가 이렇게 의상학교 학생이 됐는데,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었다고 한다. 졸업할 때는 학생 대표로 파리에 가서 전시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는 이름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일하며 디자이너로서 길을 닦아갔고, 그때부터 소재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정경아 대표 역시 생활한복 업체를 운영하면서 자연 소재와 전통 염색을 실험해오다 자연주의 의류 브랜드인 ‘이새’를 시작했다. 최명욱 씨가 ‘이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새로운 소재와 색을 찾아내고 개발하기를 4년여. 처음에는 한국의 전통 소재와 천연 염료를 연구하다 세계 곳곳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핸드메이드 소재와 천연 염색이 좋은 줄은 알지만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대량생산하기 어려워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가려고 해요.”


그가 디자이너로서 특별히 매혹된 나라는 인도다.

“세계로 범위를 넓혀 천연 소재를 찾아 나서기 시작할 때 처음 찾은 나라여라서인지 인도에 특히 애정이 깊다”고 말한다. 이번 컬렉션에 발표한 옷들은 모두 핸드메이드 소재다.

“신발 중에서도 수제화의 가치가 높듯이 원단도 핸드메이드 소재의 가치가 높습니다. 인도는 지금도 옛날 베틀로 원단을 짭니다. 사람의 손끝에서 나오는 정성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우리나라에서 핸드메이드 원단으로 만든 옷을 평상복으로 입기는 쉽지 않습니다. 요즘 핸드메이드적인 방법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어려움이 있어요. 수요가 적다 보니 고가이고, 일반인이 쉽게 살 수 없다 보니 하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는 거죠. 하지만 잊혀가는 가치들을 찾아내 잇는 게 우리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연 소재로 만드는 그의 옷은 아방가르드와 로맨틱을 접목한 디자인으로, 한복의 선을 활용하고 풍속화와 산수화를 접목하는 등 한국적인 전통을 재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고 싶어하는 전문직 여성이나 예술가들이 그의 옷을 좋아한다. 그의 꿈은 세계 패션계에 ‘코리안 룩’이라는 용어를 등장시키는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전통을 매우 중시해요. 색감도 그렇고, 패션 교육도 그렇게 하죠. 일본의 ‘기모노 슬리브’라는 패션 용어는 이미 공용어가 되었어요. 현재 재패니스 룩은 있지만 코리안 룩은 아직 없어요. 저도 우리 전통을 살려서 ‘저고리 슬리브’라는 용어를 정착시키고 싶어요. 내가 못 하면 후배들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지…. 그런 전통을 만들고 싶어요.”

옷에 지속가능한 환경 철학을 담고, 코리안 룩을 정립시키고 싶은 그를 보며 ‘한국적인 옷’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게 되었다.

사진 : 김진구
촬영협조 : 이새갤러리
  • 201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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