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에 빈티지 공간 ‘사보 스페이스’ 만든 일러스트레이터 사보

독일의 생활 가구와 소품을 볼 수 있는 곳

Vintage 공간
알랭 드 보통은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것을 사고 싶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지만, 우리의 진정한 욕망은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기보다는 그것이 구현하는 내적인 특질을 영원히 차지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독일 빈티지 컬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아트디렉터인 ‘사보’에게 꼭 맞는 말이다.
서래마을의 한적한 골목길에 위치한 빈티지 가구 갤러리 ‘스페이스 사보(Space Sabo)’와 아래층에 자리한 빈티지 카페 ‘무터말’은 사보 그 자신이다. 1층은 유럽식 카페이고, 지하 공간은 리빙룸으로 꾸며져 있다.

“대상과 장소를 물리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내적으로 닮는 것, 그것이 바로 감동을 준다”고 한 알랭 드 보통의 말이 실현된 공간이기도 하다. 보면 갖고 싶은 욕망이 스멀거리는 공간.

이탈리아의 도리아 램프(1960년대). 크고 투명한 유리구를 입으로 불어서 그 안에 전구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
사보의 공간에는 덴마크의 건축가 아르네 야콥센, 헤리 베르토리아의 다이아몬드 체어, 베이클라이트(합성수지의 일종으로, 플라스틱의 원조)로 만든 수납박스, 솔직담백한 합리적인 스타일의 바우하우스 가구,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하는 아날로그 방식의 주방 소품 등이 즐비하다. 방송, 잡지에서 그의 독특한 감각을 ‘사보 스타일’이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뜨거운 러브콜을 받는 아트디렉터가 되었다.

그의 이런 스타일은 곧 sbs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일러스트는 ‘베이직하우스’의 콜레보레이션(협업) 티셔츠로 태어나기도 했고, 교과서에도 실렸다.

(좌) 독일 우체국에서 사용하던 벽전화기(1960년대).
(우) 독일의 모자이크 테이블인 티크목 장식장(1960년대)과 플라스틱 다이닝 등(1970년대).
사보는 1995년 독일에 유학하면서부터 생활 속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딘가를 장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쓰기 위해서였다. 1950년대 생산된 지멘스의 세탁기나 보쉬 냉장고 같은 독일의 가전제품, 아르네 야콥슨의 주황색 의자 등 디자이너 가구, 1960년대 오피스 미팅룸에서 사용하던 소파, 평범한 독일 가정집에서 사용하던 찬장, 보겐람페의 스탠드 조명, 도이치포스트의 기계식 전화기, 시골마을에서 사용하던 부티크 장식장, 바겐펠트가 디자인한 화병 등. 7~8시간씩 운전해 옛 동독 지역 등 독일 전역을 다니며 모아 온 물건들은 생활 전반에 걸쳐 있는데, 지금도 카페에서 잘 쓰고 있다. 그는 가구 하나하나에 새겨진 스토리를 다 기억한다.

“벼룩시장에서 구한 것, 폐업할 때 산 것, 때로는 주운 것 등. 물건을 가지러 간 할머니와 친구가 된 적도 있고, 장애인 아저씨와 친구가 된 적도 있어요.”


독일인의 진득한 국민성이 가구에도 배어 있다

“우리가 풍수를 보듯이 가구에도 풍수가 있어요. 아트디렉션은 일종의 가구풍수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통하는 것은 하나예요. 사랑으로 꾸미는 거예요. 어떤 콘셉트나 디자인적인 시각으로 꾸미면 안 돼요. 누구나 그 느낌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어요. 그게 바로 자신만의 에너지죠.”

그는 조화롭지 못한 데커레이션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가령 가구는 몇 천만 원짜리 고가이지만 등은 형광등인 경우가 그 예다.

알리베르트 사의 화장거울(1960~70년대). 타원형 거울 뒤의 불빛이 특징.
“우리나라는 가구를 배치한 후 조명을 생각해요. 사실은 조명을 먼저 생각하고 가구를 들여놓는 게 맞아요. 그래야 불을 켰을 때 아늑한 느낌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는 붙박이 가구가 들어가 있으니 개성이 없어요. 유럽의 아파트는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요. 어떤 이는 붉은 벽지를, 어떤 이는 바다처럼 푸른 벽지를 써요. 그래야 재미있고, 다양한 디자인이 나오거든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워싱턴과 뉴욕에서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다. 독일에서 전시회도 여러 번 열고, 일러스트 화보집 《얼굴》 《게헨바흐에서 온 소식》 등을 내며 다양한 활동을 하다 2005년 귀국해 빈티지 가구갤러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사보’는 독일 유학 당시, 독일 친구들이 그의 이름인 ‘임상봉’의 발음이 어려워 붙여 준 이름. 그는 이 이름을 계속 애칭으로 쓰고 있다.

“독일인은 친구가 되기 어렵지만, 한번 친구가 되면 평생 가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걱정해 주고. 이런 국민성이 물건에서도 그대로 배어 나오는 것 같아요.”

독일 부티크의 플라스틱 벽장식장(1960년대). 강렬한 컬러가 특징이다.
모교의 디자인과 교수는 교내에서 그가 컬렉션한 디자인가구를 모아 전시회를 열어 주었다. 일명 ‘사보의 컬렉션’. 이를 통해 그는 교내 스타가 되었고, 빈티지 수집 열풍을 일으켰다.

“빈티지 가구를 모으면서 색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색은 각기 고유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요. 예를 들면 오렌지 톤은 긴장시키면서도 기분 좋게 해주는 에너지가 있죠. 미술을 하면서 ‘컬러를 어떻게 쓸까’ 하는 데 두려움이 있었는데 컬러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어요.”

야콥슨 다이닝 등(1970년대).
그림을 팔아 가구를 수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텐데 그는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을 수 있었을까? 그는 방학 때면 어김없이 지게차 운전을 했다. -당시 독일에서 지게차 운전을 하면 한 달 평균 600만~7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고 한다.- 수집한 물건의 보관도 관건이었다. 그는 주인집 할머니에게 그림을 주고 사용하지 않는 와인 창고를 빌렸다. 독일인들은 작가의 그림을 받는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에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한다.

“매일 사다 쟁여 놨죠. 5년 정도 지났나? 어느 날 ‘꺅’ 소리가 나는 거예요. 할머니가 창고 문을 열다가 물건이 떨어진 거죠. 그 많은 물건들을 보고 할머니가 기절(?)했어요. 귀국할 때 10여 년 동안 모은 가구와 소품들을 친척집에 분산시켜 놓았더니 ‘저 녀석은 공부하라고 유학 보내 놨더니 헌 물건만 잔뜩 싸가지고 왔다’고 험한(?) 소리를 들었죠.”

카페 무터말. 1960~70년대 응접실, 서재, 부엌은 유럽의 가정집을 연상시킨다.
지금은 카페와 작업실로 쓰고 있지만 그는 이 공간에 옛날 디자인 물건들을 모아 뮤지엄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처럼. 그는 2009년 가을 독일에 갔을 때 비트라 관장의 주선으로 주지사를 만났다. 그들은 한국과의 문화교류를 제안했다. 2010년에는 주지사와 처장 등이 한국 영사관을 통해 방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트디렉터를 넘어 문화교류를 위한 일까지, 그는 자신의 꿈을 향해 차분히 걸어가고 있다.

사진 : 김선아
촬영장소 : 스페이스 사보 02-537-1448
  • 201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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