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마을 폐교에 한옥학교 연 한옥전문가 가족, 신영훈 선생과 딸 지용 씨, 사위 김도경 교수(강원대 건축학과)

“현대인의 생활문화에 맞는 21세기형 한옥 지어야”

우리나라 고건축의 대가인 신영훈 선생이 그의 딸 지용(건축사 전공) 씨, 사위 김도경 교수(강원대 건축학과)와 함께 강원도 홍천 산골마을에 한옥학교를 열었다. ‘21세기형 한옥’을 화두로 의기투합한 이 ‘한옥 가족’은 앞으로 한옥학교를 통해 현대인의 생활문화에 맞는 새로운 한옥문화를 선보일 계획이다.
‘친환경’, ‘웰빙’ 바람은 건축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 몇 년간 한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대중적인 주거공간 자리를 빌라・아파트 등에 내준 지 근 반세기 만의 일이다.

이 변화를 누구보다 반기는 사람은 신영훈 선생. 평생을 한옥 연구에 바친 그는 “집이라는 게 원래 다 자기 몸뚱이에 맞게 지어야 하는 법”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을 수 없듯이, 집도 마찬가지예요.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심성에 따라, 개성에 따라 다 달리 짓고 살아야 하는데 아파트가 어디 그래요? 네모반듯한 모양이 어딜 가나 다 똑같고, 창문 꽉꽉 다 닫고 살아야 하는 구조에서는 도무지 창의성이라는 게 나올 수 없어요. 또 아파트는 구수하고 능청스러운 구석이 없잖아. 이제는 좀 사람답게 살아 보는 집을 생각해 볼 때가 되었어.”

그 대안이 한옥인지 묻자 그는 “그냥 한옥이 아닌, 21세기형 한옥”이라고 고쳐 주었다.

“집이라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을 반영하는 것인데, 조선시대 집을 그대로 본떠 지어 놓고 요즘 사람들에게 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 그는 “기능적으로 편리하면서 주변 환경과도 잘 어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창의성과 개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맞춤집”을 현대적인 한옥으로 정의했다. 몇 해 전,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의뢰로 강화에 지은 ‘학사재’가 대표적인 모델이다.

강화도에 지은 ‘학사재’.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현대적인 한옥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 안타까움에 그는 오래전부터 한옥학교 설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대학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는 한옥을, 더 늦기 전에 자신이라도 나서서 후학을 양성하자는 일종의 사명감이기도 했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과열 양상을 빚으면서 ‘무늬만 한옥’인 날림집들이 적지 않게 생겨나는 것도 그가 한옥학교 설립을 서두른 또 다른 이유다. 아무렇게나 지은 집들이 한옥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어져 겨우 되살아나고 있는 한옥 바람을 잠재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사학을, 대학원에서 고건축을 공부하며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던 딸 지용 씨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준비 작업에 나섰다. 대학 시절, 젊은 건축학도로는 드물게 한옥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고건축 연구의 길에 들어선 남편 김도경 교수(강원대 건축학과)도 뜻을 같이했다.


때마침 김 교수가 강원도 홍천의 산골마을인 구만리로 답사를 나왔다가 폐교된 초등학교를 발견하면서 한옥학교 설립은 급물살을 탔고, 2009년 9월 문을 열었다. 학교 이름은 지용 씨의 이름을 따 지용학교로 지었고, 교장은 신영훈 선생이 맡았다. 지용 씨는 학교 운영 전반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커리큘럼을 만들고 강사진을 구성하는 것은 김도경 교수의 몫이다.

지용한옥학교의 정식 개교는 2010년 3월이지만, 이미 한옥에 관심 많은 일반인을 위한 단기 워크숍이나 관련 학과 학생들의 세미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앞으로 1년 과정의 전문가 양성반과 3개월 과정의 주말반・취미반 등을 개설하고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한국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한옥 대중화를 위한 연구와 한옥 건축 컨설팅도 진행한다.



한옥학교 통해 한옥의 대중화•세계화 꿈 이루고 싶어

신영훈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고건축 전문가로 중앙고 재학 시절, 당시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 선생(작고)의 강의에 매료돼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박물관 학예사로 일하며 숭례문 중건 공사에 참여해 고건축과 첫 인연을 맺었다.

문화재 수리 보수 분야에서 당대 최고로 손꼽히던 이광규 선생이 그의 스승. 엄격한 가르침을 통해 작은 나무 하나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 장인의 자세를 배운 그는 그동안 송광사 대웅보전, 보탑사 3층 목탑, 운문사 대웅보전, 미륵사 용화전 등 많은 절집과 3000여 채의 살림집을 지었다.

대영박물관에 한국식 사랑채를 선보였고, 파리 이응로 화백의 집에 고암서방을 지어 한옥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공사 현장을 따라 전국 각지를 떠돌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일이며 3남매를 도맡았던 어머니를 보며 지용 씨는 절대 건축을 공부하지도,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과 결혼하지도 않겠다고 각오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가지 결심은 모두 다 지켜지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문화유적지, 고건축 답사 등에 동행했던 기억은 그를 자연스럽게 역사학도의 길로 이끌었고, 대학원에서는 건축사를 공부하며 아버지의 한옥 연구를 도왔다.


남편인 김도경 교수는 한옥에 관심 많은 대학원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스터디 모임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지용 씨가 “평소 존경하던 신영훈 선생님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신영훈 선생의 사위가 된 후 김 교수는 장인과 함께 현장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는 행운을 얻었다. 한옥 전문학자가 드문 국내 건축학계에서, 그는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실력파로 정평이 나 있다. 흐뭇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신영훈 선생은 “참 욕심나는 학생이었는데 사위가 되었으니 내가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며 웃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옥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안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는 세 사람. 이제 이들은 한옥학교를 통해 한옥의 대중화・세계화 작업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이들의 연구로 멋진 한옥들이 탄생해 우리의 주거문화도 다양성을 갖기를, 신영훈 선생의 말처럼 “우리 몸과 땅에 맞는 21세기형 한옥”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 : 김진구
사진제공 : 김도경 교수
  • 2010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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