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비보이 배틀 우승한 ‘갬블러 크루’

춤만 추고 싶던 소년들, 세계 최고가 되다

배틀(battle)이란?
1970년대 말 뉴욕, 뒷골목 흑인들이 히스패닉계와 세력다툼을 하기 위해 브레이크댄스로 승부를 겨룬 데서 배틀(battl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때 더 고난도의 춤 기술을 선보이며 승패를 가른 것이 현재는 비보이들의 배틀로 이어지고 있다.
매년 10월, 독일의 작은 도시 브라운쉬바이크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수만 명의 손님들로 가득 찬다. 세계 18개국 19개 비보이 팀들이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비보이 배틀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 이하 BOTY)>가 열리기 때문이다. 전 세계 비보이들의 축제이자 월드컵인 이 대회에서 2009년 우승을 거머쥔 팀은 한국의 비보이 팀 ‘갬블러 크루(Gambler Crew)’. 1등 수상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10월의 어느날, 이들이 공연하고 있는 서울 시내 한 호텔의 행사 현장을 찾았다.

“2009년의 우승은 큰 의미가 있어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배틀인 BOTY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고 여기서 우리 팀이 2004년에 이어 2연승을 했거든요.”(박지훈)

갬블러 크루는 국내 비보이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 BOTY 출전을 위해 프로젝트로 결성된 팀이기에 더 의미 깊다. 창단 당시 멤버들은 각기 다른 팀에 소속되어 있었고 2002년 세계대회에 ‘딱 한 번’ 힘을 모아 출전하자는 생각으로 뭉친 것이다. 그러나 국내 예선 탈락. 기량은 뛰어난데 프로젝트 팀이라 서로 호흡이 안 맞은 것이 패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함께 연습하는 과정이 재미있어 다음 해 배틀을 계속 준비하기로 했다.

<배틀 오브 더 이어> 한국 예선 배틀 중.
“2003년에는 BOTY 한국 예선에서 우승, 독일대회에서 3위를 했어요. 2004년에 다시 도전해 한국 예선 우승 후 독일대회에서 대망의 우승을 할 수 있었고요. 2005년 대회에서는 3위를 했죠. 그러다 올해 다시 우승한 거예요.”(박지훈)

비보이(B-boy)는 힙합댄스 가운데에서도 특히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춤꾼을 일컫는다. 힙합과 비보이 문화가 서양에서 시작된 만큼 우리의 비보이는 그 역사도 짧고 사회적인 인식이나 환경도 열악하다. 그럼에도 고난도의 동작을 거침없이 구사하는 한국의 비보이들은 각종 세계대회를 석권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외국 비디오를 보며 어렵게 기량을 익힌 이들이 세계 최고가 된 비결은 방대한 연습량 덕분이다.

“외국에서는 비보잉(B-boying)이 오래된 문화여서 자연스럽게 즐기는데, 우리는 강한 의욕과 승부욕으로 새로운 기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게 큰 차이점이에요. 외국 친구들이 하루에 한두 시간 연습할 때 저희는 매일 10시간씩 쉬지 않고 연습했어요. 문화에서 오는 격차를 연습량으로 채운 거예요.”(신규상)

그래서일까. 어느덧 한국의 비보이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광받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비보이가 등장하는 CF와 뮤지컬이 인기를 끌고, 사물놀이와 국악 공연, 태권도와 접목한 공연이 한류에 일조하고 있다. 얼마 전 개봉돼 호평받은 영화 <플래닛 비보이(Planet B-boy)>는 BOTY에 출전한 세계 각국 비보이들의 치열한 인생 도전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로, 라스트 포원(Last for One), 갬블러 크루 등 국내 정상 비보이 팀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배틀 오브 더 이어> 한국 예선 결과 기다리는 모습.
“2005년에 한국계 미국인 감독 벤슨 리(Benson Lee)를 만났어요. 한국 비보이가 실력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관심을 가졌나 봐요. 저희랑 라스트 포원이 독일 배틀에 가는데 따라와서 촬영했고, 뒤늦게 개봉한 거예요.”(박지훈)

영화가 제작될 당시인 2005년, BOTY의 우승자는 한국의 비보이 팀인 라스트 포원이었고, 감독은 한국 비보이의 저력을 ‘고춧가루의 힘’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초점은 대부분 한국 비보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비보이들이 본 자신들의 이야기는 어땠을까.

“정말 재미있고 가슴 벅찼어요. 주변에서는 영화 〈국가대표〉처럼 감동적이라고 말씀들 해 주시고. 우리 팀이 나와서가 아니라 작품으로서 완성도가 높아서 〈워낭소리〉만큼 유명해지면 좋을 것 같은데.”(박지훈)

한강 단체사진.

밤새우며 연습하는 아들 보고 반대하던 부모도 마음 돌려

비보이들에게 이 영화가 가슴 뭉클한 이유는 그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청춘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어른들은 여전히 ‘노는 아이들’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비보이들은 사실 그 누구보다 춤에 대한 순수와 열정으로 가득 찬 영혼들이다. 팀의 맏형격인 원년 멤버 다섯 명은 20대 중반인데, 이들의 비보잉 경력이 10년 이상인 걸 보면 사춘기 때부터 춤에 몰두해 온 셈이다. 학창시절 부모들의 걱정과 반대도 이들의 열정과 노력 앞에서는 무색했다.

“실력을 더 갖추고 싶어서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지하철이 끊긴 역에서 혼자 춤을 췄어요. 밤마다 집을 나서니까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저를 미행하셨나 봐요. 음악을 틀어 놓고 연습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나타나시더니 음료수랑 간식 꾸러미를 내려놓으셨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니 반대 못 하겠다’ 면서 ‘열심히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죠.”(신규상)

<배틀 오브 더 이어> 독일 2009 본선 우승 사진.
“저도 지하철역과 학교 복도가 연습 장소였어요. 쫓겨나도 계속 연습에 몰두했죠. 주말이면 구마다 있는 청소년 수련관이 장소를 개방해서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모였어요. 두 시간씩밖에 쓸 수 없어서 계속 옮겨 다니면서 연습하고…. ‘커서 뭐가 될 거냐’는 부모님 질문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춤만 출거라고 철없이 대답하곤 했죠.”(박지훈)

활동 초창기엔 출연비 대신 식권을 받기도 했고, 몇 달 동안 라면만 먹으면서 얼마 안 되는 출연비를 모아 국제대회 출전에 필요한 비용을 해결하기도 했다. 그 시절 이들이 흘린 땀방울은 척박하던 국내 비보이의 입지를 바꿔 놓는 데 크게 공헌했다. 이제 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신다고.

“저희가 독일 BOTY에서 우승하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분들이 비보이가 뭔지 몰랐죠. 미국 애들이 추는 춤으로 한국 애들이 세계 배틀에서 우승했다니까 언론들이 앞 다투어 보도했고, 아홉 시 뉴스에 나오니까 보수적인 분들도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봐 주셨어요. 그 덕에 비보이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박지훈)

좋아서 즐긴 일이 성공을 거두면서 갬블러 크루는 독립된 회사로 출범했다. 그들의 양재동 연습실은 사업장이 되어 비보이 활동과 함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비보잉 강습과 연습생 개념의 후배들을 키우는 일까지 겸하고 있다.

“연습실에 나가는 건 우리에게 출퇴근하는 것과 같아요. 멤버들은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연습하고, 팀 스스로를 매니지먼트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작게는 우리의 브랜드를 알리는 티셔츠를 직접 제작하는 등 다양한 사업들을 구상하기도 하죠.”(신규상)


최근 갬블러즈는 춤이라는 도구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는 데 열심이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 주최로 한국에서 열린 세계 배틀 R16에서 우승한 이후 구호기구인 ‘굿네이버스’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란다.

“배틀 상금 중 1000만원을 ‘굿 네이버스’에 기부한 것이 인연이 되어 보육원에서 공연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멤버 다섯 명이 학대 아동들과 놀이동산에 다녀왔어요. 솔직히 가기 전에는 우리가 공연 말고 다른 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애들이랑 잘 놀아줄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너무 즐겁고 보람 있었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어려운 사람들을 더 돕고 싶어요.”(박지훈)

격렬하게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비가 오면 마디마디가 쑤신다는 이들이 가장 우울한 순간은 ‘아파서 무대에 서지 못할 때’. 살아 숨 쉬는 한 언제까지라도 무대에서 춤추고 싶단다.

“어떤 일이나 전성기가 있지만 춤추고자 하는 열의만 있다면 비보이의 정년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래도록 안정된 비보이 문화를 이끌어 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 비보이들이 돈 걱정 안 하고 맘 편히 춤출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싶고요.”(신규상)


갬블러즈가 말하는 비보잉의 매력은 ‘자유로움’이다. 자유롭게 열려 있는 춤이기 때문에 어떤 형식이나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어떤 장소라도 무대가 되고 어떤 동작이라도 춤이 될 수 있다. 뭐든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창의적이고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다.

“배틀이라는 것 자체가 춤으로 승부를 가리는 거잖아요. 우리 팀의 이름을 걸고, 우리나라의 명예를 걸고 ‘한판 붙는’ 거니까 한국인 특유의 긍지와 의지로 열심히 밀어붙여야죠.”(박지훈)

“처음엔 그저 춤이 좋아서 즐긴 것인데 하다 보니 공연해서 돈도 벌고, 인기도 얻고, 연습실도 생겼어요. 이 모든 게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따라온 거예요. 애초에 이런 걸 바라고 시작한 게 아니거든요.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라고 믿어요.”(신규상)

술자리에서 우연히 지었다는 그 이름처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인생을 건 ‘도박사들’, 갬블러 크루. 한국 비보이의 선두 주자인 이들이 거침없이 펼쳐 나갈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사진 : 이창주
  • 200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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