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만화동아리 서영화, 강효정, 이현지

소외된 아이들에게 게임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왼쪽부터 강효정, 이현지, 서영화.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 중국음식점의 새로운 메뉴인가 했더니 전혀 아니다. 서울대 만화동아리 선후배 사이인 서영화(25・서울대 대학원 조선학), 강효정(24・서울대 간호학과 졸), 이현지(19・서울대 인문대) 씨가 만든 온라인 무료 영어교육용 게임 사이트가 바로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www.hijk.co.kr)’이다. 우리말을 채 익히기도 전 영어교육 세례를 받는 요즘 아이들.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은 우리 사회의 영어 열풍 가운데에서도 영어를 가까이 할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쉽고 재미있게 영어를 배우게 하자는 세 사람의 열정으로 탄생했다. 게임은 간단하다. 컴퓨터 화면 왼쪽에는 그림, 오른쪽에는 그림을 설명하는 간단한 문장이 나타나는데, 이 문장의 주어・동사・목적어 등의 문장 성분을 찾으면 주인공인 여우 캐릭터가 돼지・고양이 등 상대 캐릭터를 공격해 경험치를 쌓고, 애완동물을 얻는다. 틀리면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영어공부와 놀이를 절묘하게 조합한 것이다.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을 만들어 낸 서영화, 강효정, 이현지 씨를 그들의 아지트 서울대 만화 동아리방에서 만났다. 왜 사이트 이름을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으로 했느냐고 묻자, 세 사람은 “하하하” 웃더니 서영화 씨가 입을 연다.

“굳이 의미를 말하자면 친구들끼리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 탕수육을 같이 시키면 열에 아홉은 가장 먼저 탕수육으로 젓가락이 가잖아요. 돈 없는 학생 입장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는 탕수육부터 먹고 자장면이든 짬뽕이든 먹잖아요? 영어도 마찬가지예요. 영어 초보자 입장에서 주체를 나타내는 주어와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 그리고 목적어를 먼저 찾으면 문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영어가 중국집이라면, 주어・동사・목적어는 탕수육을 이루는 고기, 야채, 탕수육 소스 같은 거죠. 가장 중요한 성분부터 골라내 보자는 의미예요.”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의 구상은 올 2월, 영화 씨가 한 미혼모와 저소득층 10대 소년을 가르치면서 시작됐다.

“뉴스를 보다 탈선 청소년들이 많이 모인다는 메신저 이름을 알게 됐지요. 오지랖이 넓어서인지 ‘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메신저에 가입해 ‘혹 공부에 뜻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메모를 남겼죠. 그 메모를 보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던 10대 미혼모가 연락을 해 왔어요. 워낙 빡빡하게 사느라 따로 시간 내기 어려운 그 친구에게 메신저로 영어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메신저만으로는 언어의 미묘한 부분을 설명하기 어렵더군요. 그 아이도 지쳐서인지 몇 달 만에 흐지부지 돼버렸죠.”

물을 한 모금 마신 그가 다시 입을 연다.

“얼마 후 알고 지내던 한 신부님이 ‘너도 배울만큼 배웠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돌보면서 살라’며 학생 한 명을 소개하더니 ‘네가 맡아라’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만난 중2짜리 아이가 ‘I’나 ‘You’도 모르는 거예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이나 영어 교재를 가까이해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방치되었던 거지요. 영어에 흥미를 갖게 하면서 기초부터 가르치려고 영어 그림책과 게임을 준비했고, 또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며 주변 물건들을 영어로 설명했지요.”

아이가 점점 영어에 흥미를 붙이며 기뻐하는 것을 보고 덩달아 즐거웠던 영화 씨는 좀 더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저도 학생이라 1대 1로 많은 아이들을 가르칠 시간을 내기는 어려웠어요. 그때 온라인을 생각했죠. 돈 많고, 똑똑한 아이들을 위한 온라인 사이트는 많은데 돈 없고, 기초도 없는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사이트는 없더라고요. 그래서 5월부터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게임을 만들기 위해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플래시며 PHP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파고들었다. “원래 컴퓨터관련 전공이 아니라… 아직 많이 엉성하죠”라며 영화 씨가 웃는다.


제가 어렵게 공부해서인지 소외된 아이들에게 눈길이 가요

“아무리 콘텐츠가 좋아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재미를 주는 요소가 없다면 사이트를 성공시키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는 효정 씨와 현지 씨를 치켜세운다. 강효정, 이현지 씨는 영화 씨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선뜻 도움을 준 후배들로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색을 만들어 냈다. 효정 씨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쉬는 날이면 동아리방에 와서 만화를 그리는데, 쫓아내지 않고 받아주니 이 정도 일은 당연히 해야죠(하하하)”라는 그녀. 영화 씨가 부탁하자 당장 캐릭터부터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만화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데, 저한테 일까지 주니 감사하게 일했죠(하하하). 오빠가 자신이 가르치던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데,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더 정성스럽게 그리게 됐죠.”


막내 현지 씨는 이 사이트의 색을 맡았다.

“오빠나 언니에 비해 한 일이 없다”며 수줍어하는 열아홉 현지 씨. 그녀 역시 만화 그리는 게, 또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게 좋아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에 합류했단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해보자’라고 제안 받았을 때 망설이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것을 듭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이 일을 해보니 사람들 말처럼 원래 내 시간을 손해 보는 것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무의미하게 보냈던, 어차피 쓰지 않던 시간을 개발하는 거더라고요.”

영화 씨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어 하는 것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결식아 지원용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워야 할 만큼 가난했던 중・고 시절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씨가 “중1 때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갔다가 제 실수로 아버지와 동생을 잃었다”며 어렵게 입을 연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지만, 어머니는 제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셨지요. 그런데도 철이 안 들었는지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어머니를 떠나 홀로 생활하게 된 그는 그때부터 자신의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는 사람도 없고, 챙겨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마땅히 뭐 할 게 없어서 공부란 걸 하게 됐죠. 성적은 여전히 바닥권이었어요. 그래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비록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게 뭔가를 열심히 하려는 제가 기특했는지 학교 신부님이 기숙사 방을 내주셨어요.”

고3 때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수능 끝날 때까지 몰랐어요. 어머니가 제 공부에 방해된다고 이모와 선생님들께 절대 당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유언하셨다고 해요.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저는 서울대에 입학했죠.”

담담하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영화 씨. 자신의 평탄치 않았던 삶 때문에 소외된 아이들에게 특별히 눈길이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출발한 지 두 달여인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 그들의 활동에 공감한 한 출판사가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해 준 덕에 영어 콘텐츠 걱정은 덜었다고 한다.

“우리 사이트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피드백도 받고 싶고, 캐릭터나 프로그램에 능한 멤버도 보충해 더 재미있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는 효정 씨. “서버 용량을 늘리고, 수능 외국어 영역 기출문제도 아이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영화 씨. 가진 것 없는 학생과 사회 초년병이 꾸려 가는 사이트로는 이마저도 쉽지 않은 꿈이라고 한다. 영화 씨가 다시 입을 연다.

“물론 쉽지는 않죠. 돈 되는 일에는 모두 달려들지만, 이 일은 아무도 하지 않기에 제가 시작했습니다. 이 일로 누군가 새롭게 꿈을 꿀 수 있다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이 순수 청춘들을 만나는 내내 가슴이 따뜻해 오는 것을 느꼈다.

사진 : 김진구
일러스트레이션 : 탕수육, 자장면과 탕자면
  • 2009년 10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7

201907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7

event
event 신청하기
영월에서 한달살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