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 중매쟁이 자처하는 대학생 모임 ‘마중물’

힘든 고비 넘게 도와주면 우리 사회의 큰 힘으로 돌아올 겁니다

시골 외할머니댁 마당에는 재미있는 물건이 하나 있다. 땅속 깊숙이 박힌 까만 무쇠 코끼리를 닮은 수동펌프. 호기심에 손잡이를 올렸다 내리기를 수없이 반복하지만 그놈의 코에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외할머니가 다가와 이놈의 머리 위로 물 한 바가지를 붓는다. 이어 두세 번 펌프질을 하면, 코에서 맑고 시원한 물이 쏟아진다. 펌프에 생명을 준 한 바가지의 물. 이 물을 순우리말로 ‘마중물’이라 부른다.

학자를 꿈꾸는 서울대생 A씨, 그는 이번 학기부터 학교를 그만둬야 할 처지였다. 부모님이 꾸리던 지방의 작은 가게가 폐업 위기에 몰렸고, 설상가상 아버지까지 실명하셨다. 절박한 형편인 그에게 공부는 사치로 느껴졌다. 그에게 ‘마중물’ 한 바가지가 전해졌다. 장학금을 주겠다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A씨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사회적 기업에 대해 연구하는 서울대 학생모임 ‘WISH’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마중물’ 덕분이었다. ‘WISH’ 멤버 여섯 명에 연세대생 한 명이 합류해 ‘마중물’이 만들어졌다.

‘마중물’은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과 기부자 사이 중매쟁이를 자처한다. 열정 가득한 일곱 청춘, 도현명, 김세정(서울대 경영대학원), 박상식(서울대 국제대학원), 박수민, 허재영(서울대 경영학부), 배영지(서울대 경제학부), 신재정(연세대 경영학부) 씨를 만나 그들의 꿈이 녹아 있는 ‘마중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도현명 씨가 먼저 말문을 연다.

“사회적 기업 연구에 필(feel)이 꽂혀 만나는 친구들이다 보니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는 게 세미나의 주제이자 술자리 이야기였어요. 지난 2월에는 우리 주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중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의 학비를 돕는 방법’에 마음이 합해졌죠.”

박상식 씨가 현명 씨의 말을 이었다.

“사립대 등록금 연간 1000만 원 시대, 대학 등록금에 어깨가 짓눌리는 친구들이 많아요. 등록금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좌절하는 친구들 이야기가 끊이지 않잖아요.”

상식 씨는 “한 통계를 보면 등록금 때문에 대출하는 학생이 무려 41.7%에 이른다”며 “기업이나 각종 재단들이 주는 장학금은 있지만, 그게 꼭 필요한 학생에게 전달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장학금을 주는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정작 꼭 필요한 학생에게는 돌아가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장학금 사각지대가 생기는 거죠. 이 사각지대를 조금이나마 줄여 보겠다는 꿈으로 뭉친 거지요.”

힘든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열정과 노력을 다하는 친구들에게 장학금이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그들. 그래서 그들은 학점도, 연고지도, 부모 상황도 묻지 않는 장학금을 만들기로 했다.

신재정 씨는 “장학금은 그걸 받은 사람이 사회에 나간 후 더 많은 사람에게 베풀며 살라는 의미여서 일종의 ‘사회적 투자’”라고 말한다. 지난 7월, 이들은 7명의 학생들에게 졸업까지 등록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하며 ‘마중물’의 첫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어떻게 장학금을 마련했는지 묻자 “순전히 발로 뛰었죠”라며 빙그레 웃는 김세정 씨. 그녀가 “이번엔 파일럿(시범사업)이었다”며 입을 연다.

“장학금을 낼 만한 기업과 재단, 개인의 리스트를 만들어 시간 날 때마다 찾아다니며 설명했습니다. 우리 발바닥이 불붙을수록 더 많은 이들이 웃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뛰었습니다.”

그 열정에 한 재단이 1억 원을 기꺼이 내놓았다. ‘마중물’의 뜻에 동참하면서도 세금 문제가 장애가 되기도 했다.

“비영리법인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 기부금을 받는 데 한계가 있더군요. 우리를 통해 학생에게 기부하면 양도로 간주돼 양도세를 내야 한대요. 법률상 우리가 기부 영수증을 끊어 드릴 방법이 없어 기부에 동참하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과 기부자를 맺어 주는 사이트 준비

현명 씨는 “내년 초 ‘마중물’을 비영리법인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들의 고민은 ‘웹(web) 기반의 장학금 중매’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낳았다. ‘마중물’ 홈페이지에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들이 자신의 현재 상황과 미래 꿈, 학업 계획 등을 소개하면, 이를 본 기부자가 후원하는 형식이다. 기부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기부 조건을 제시하면 ‘마중물’이 이에 맞는 학생을 찾아 주기도 한다. 상식 씨가 말을 잇는다.

“개인, 소규모 기업, 중소재단의 관계자 중 ‘우리 기부금이 누구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몰라 답답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웹을 통한 장학금 중매는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만큼의 기부금이 가는지 쉽고 투명하게 알 수 있어 이런 고민을 해소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되는 이 방식은 3년 전 미국의 ‘키바(Kiva)’가 처음 시작한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며 현명 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전 세계 빈국(貧國)과 오지(奧地)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나 국제기구, NGO 요원들이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에 무엇이, 얼마만큼 필요한지를 ‘키바’에 공개적으로 요청하지요. 이 내용을 보고 전 세계의 기부자 그룹들이 자신들의 형편에 맞게 기부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부지만 엄연히 투자란 거예요. 기부금을 받은 수혜자들이 그 돈을 이용해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활동을 하고, 이렇게 얻어진 수익의 일부분을 ‘키바’에 돌려주어야 합니다. ‘키바’는 그렇게 돌려받은 수익을 다시 다른 빈국과 오지 사람들에게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마중물’은 이 방식을 장학금에 차용한 거예요.”


장학금 중계 사이트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 선보인다고 한다. ‘마중물’이 장학금을 주고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만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시작점이라고 말한다.

“기부자와 수혜자만이 아닌 삶의 멘토와 멘티로 발전할 수 있게 연을 맺어 줄 거예요. 그게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성장해 사회로 나온 후 기부와 봉사로 되돌려 주는 토대가 될 것이라 믿어요. 마중물이 베풂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도록 물꼬를 트는 거지요.”

지금 이 일이 삶이 힘겨운 이들에게 희망의 마중물이 되기를 꿈꾼다는 세정 씨. WISH와 마중물의 산파 역할을 했던 현명 씨도 세정 씨의 말을 이었다.

“사실 경험도, 능력도 없는데 ‘여기서 그만두는 게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도 많이 했어요. ‘좋은 일이긴 한데 너한테는 무슨 도움이 되느냐’ ‘그 시간에 차라리 영어공부나 해서 더 좋은 회사에 취직해 돈 많이 벌어서 네가 도와줘’라는 말도 들었어요. 중요한 건 지금 제 가슴이 뛰는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게 또 누군가의 가슴을 뛰게 한다면 그만큼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없을 거예요. 마중물에 모인 이들은 그 즐거움을 아는 친구들입니다.”

상식 씨가 “도와주세요”라고 하자 모두 웃는다. 배영지 씨도 거든다. “저희는 모든 게 부족해요. 웹에 능통하신 분, 의미있는 일을 하시고 싶은 분이면 망설이지 말고 연락 주세요.”

사진 : 김종연
  • 200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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