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달 특집] 홍대 앞에 와플 가게 연 벨기에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녹여 만든 와플

와플은 벨기에에서 우리나라 붕어빵 같은 대중적인 간식이다. 벨기에 거리 곳곳에서는 와플의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넘실거린다. 서유럽에서 탄생한 와플. 그중 벨기에 와플은 1964년 뉴욕 세계 음식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후 세계적인 메뉴로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와플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요즘, 실제 벨기에인이 굽는 와플집이 화제다.
홍대 앞 ‘디디스 고프레’는 벨기에인 남편 디디와 한국인 아내 박세미 씨 부부가 운영하는 와플 가게다. 취재하기 전 먼저 이곳을 찾아 와플을 맛봤다. 벨기에에서 공수해 왔다는 ‘펄 슈거(pearl sugar)’를 뿌린 리에주 와플. 한입 베어 물자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설탕이 별사탕처럼 톡톡 터지며 사각사각 씹힌다. 브뤼셀 와플도 맛봤다. 겉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폭신했다. 담백한 브뤼셀 와플을 생크림이나 메이플 시럽에 찍어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이런 와플은 처음 먹어 본다고 하자, 와플 요리사인 디디 씨가 “이게 진짜 벨기에에서 먹는 와플”이라며 활짝 웃는다. 원래 벨기에 와플이란 말은 없고, 졸깃하고 달콤한 리에주 와플과 가볍고 바삭바삭한 질감의 브뤼셀 와플 두 종류로 나뉜다고 설명한다. 가게 입구에는 디디씨가 벨기에에서 사 온 100년 된 와플 팬이 걸려 있다.

가게 이름 ‘디디스 고프레(didi’s gaufres)’는 디디의 와플이란 뜻이다. 고프레(gaufres)는 불어로 와플의 복수형이다. 박세미 씨가 와플 메뉴를 하나하나 소개했다. 바나나와 초콜릿 시럽 등이 들어간 와플 ‘미카도(Mikado)’는 디디 씨가 어릴 적 즐겨 먹던 벨기에식 디저트 이름에서 따왔고, 메이플 시럽을 곁들인 ‘캐나디안(Canadian)’ 와플은 메이플(단풍)이 들어간 캐나다 국기를 생각하며 이름 지었다. 과일을 잔뜩 올린 와플은 ‘프루츠 러버스(Fruits Lovers)’. 아내 곁으로 다가온 디디 씨가 “이름 어때요? 재미있지 않나요?”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박세미 씨는 남편의 이런 모습에 반했다며 까르르 웃는다. 벨기에인 디디 씨는 어떻게 한국인 아내와 와플 인생을 시작했을까?

손님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100년 된 와플 팬.
두 사람이 만난 것은 2006년 1월, 지인들의 모임에서였다. 당시 디디 씨는 영어 선생님이었고, 박세미 씨는 주얼리 숍을 운영하고 있었다. 박세미 씨는 “이 사람이 너무 코믹하고 재미있더라고요”라면서 먼저 반했다고 한다.

“저는 뭐든 심각하게 고민하는 성격인데, 남편은 낙천적이고 참 밝아요. 결혼하기 전, 아내에게 숨기는 게 있으면 안 된다면서 이제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눈물까지 글썽이며 하나하나 하더라고요. 정말 순수한 사람이에요.”

디디 씨는 세미 씨가 예쁘고(beautiful), 친절하고(kind), 단아해서(classic) 끌렸다고 한다. 두 사람은 그 해 12월 한국과 벨기에를 오가며 결혼식을 올렸는데, 양쪽 부모 모두 “너희가 행복하면 우리도 행복하다”며 결혼에 적극 찬성했다. 어릴 때부터 디디 씨의 꿈은 와플 가게를 여는 것이었다. 유년 시절 가장 좋아한 음식이 와플이었는데, 열일곱 살 때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와플 가게를 방문한 후 그 꿈은 더 확고해졌다. 밀가루, 달걀, 우유를 섞어서 만든 반죽의 질감, 버터와 설탕의 고소하고 달콤한 향, 와플 굽는 모습 모두 감수성 풍부한 디디 씨를 매료시켰다. 와플을 나눠 먹으며 행복감에 젖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것보다 좋은 게 없었다.

그러나 그 꿈은 ‘언젠가’로 미뤄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캐나다에 유학해 대학을 마쳤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영어교사 자격증을 얻은 후 밴쿠버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어느 날, 한 친구가 한국 이야기를 했다. ‘축구를 잘하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에 끌렸고, 한국으로 건너와 영어 교사가 됐다.


한국인 아내와 와플 가게 순례하다 유럽 정통 와플집 열기로 결심

홍익대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5분 정도 내려가면 가게가 나온다. 갓 구운 와플들은 입구 옆 투명한 진열대에 놓여 지나가는 이의 시선을 끈다.
학생들을 만나는 일도 의미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와플’에 대한 꿈이 꿈틀댔다. 세미 씨와 데이트할 때도 와플 이야기를 자주 했다. 세미 씨는 그를 이름난 와플집으로 안내했는데, 아이스크림과 생크림, 과일 등을 잔뜩 올려놓은 와플을 먹고 디디 씨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토핑 맛으로 먹는 와플은 진정한 와플이 아니에요. 와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는, 벨기에에서 먹던 와플을 선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두 사람은 와플 가게를 열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렇다고 금방 가게를 차린 것은 아니었다. 디디 씨는 벨기에를 오가며 그곳의 유명 와플 가게에서 요리법을 익히고, 와플 굽는 기계와 재료까지 벨기에에서 들여왔다. 부부는 “벨기에에서 만드는 정통 와플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모든 조건을 꼼꼼히 따진다”고 말한다.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반죽이나 굽는 온도, 시간이 다 다르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 ‘디디스 고프레’를 열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규모도 작고 특별한 홍보도 하지 않아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한 달 정도 지나자 손님들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지난 2월 박세미 씨는 그동안 운영해 온 주얼리숍을 접고 남편을 도와 와플 가게에 전념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해 온 주얼리 숍을 접으면서 손해를 많이 봤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남편이 와플 만드는 것을 곁에서 거들기만 하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손님들이 맛있게 먹고 즐거워하니 하루 종일 서 있어도 힘든 줄을 모르죠. 오래도록 와플 가게를 하고 싶어요.”


세미 씨는 주얼리 숍 운영도 안정적이었지만, 와플 가게를 하면서 더욱 재미와 활기를 느낀다고 말한다. 곁에서 듣던 디디 씨는 “선생님을 하다 와플 가게를 한다고 하면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손님 의자 10개가 조르르 놓인 테이블,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공간. 가게는 크지 않지만 주인 부부의 와플에 대한 열정과 이곳 와플의 인기는 공간의 협소함을 뛰어넘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와플 가게를 연 친구가 있는데, 그걸 보고 외국에서 와플을 만드는 것도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지요. 한국은 제게 특별한 나라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고, 어릴 때부터의 꿈도 이곳에서 이뤘으니까요. 와플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본토인 벨기에나 캐나다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요. ‘맛있다’고 즉각 말씀해 주시고,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며 칭찬도 아끼지 않고요. 와플을 만드는 게 정말 신나죠.”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는 ‘디디스 고프레’는 이 와플을 찾는 손님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토요일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 부부가 꼼짝 없이 12시간 이상 서서 일하기도 한다. 부부는 “이 가게에 있으면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느낍니다. 와플을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거든요”라고 입을 모은다. 두 사람의 다음 꿈은 무엇일까?

“아담한 건물을 하나 구해 1층에는 와플 가게를 하고, 위층에는 우리 부부가 사는 게 꿈이랍니다.”

부부는 인터뷰 내내 와플 때문에 정말 행복하다고 거듭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영어와 한국어로 진행됐다. 와플 이야기를 할 때는 프랑스 용어도 나왔다. ‘빠뜨린 내용이 있으면 어떡하지’, ‘외국어를 잘못 해석해 오보를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기자는 바짝 긴장했다. 취재가 끝난 후 늦은 저녁으로 먹은 와플의 맛은 그런 긴장을 탁 풀어줄 정도로 국경을 초월했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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