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초콜릿 카페 ‘몹시’ 김나윤・이강현 부부

게으르게 만든 초콜릿 케이크가 그렇게 맛있나요?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초콜릿〉을 보셨는지. 이 영화에서 초콜릿은 평생 금욕적인 생활을 해 온 마을 주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찾아 주는 마력으로 등장한다. 영화 〈제8요일〉 〈바베트의 만찬〉 등을 더불어 거론하지 않더라도 초콜릿이 지닌 영혼의 치유력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넓다. 달짝지근한 초콜릿이 혀에서 살살 녹아 들어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갈 때의 그 아찔한 쾌감이란….
바로 구운 초콜릿 케이크 하나로 초콜릿 마니아들을 사로잡은 초콜릿 카페가 있다. 홍대 앞에 있는 초콜릿 카페 ‘몹시’. 테이블 다섯 개짜리 이 작은 카페는 문을 연 지 1년도 안 돼 초콜릿 마니아들에게는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떠올랐다. 매일 오후 2시에 문을 여는데,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문 열기를 기다리다 전체 18석을 순식간에 채워 버린다. 주말이면 스무 명 넘게 대기하면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린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 초콜릿 케이크 하나를 맛보기 위해 긴 기다림을 감내하는 것일까. 순전히 구전 마케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곳을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친 1월 중순 찾았다. 카페 문을 열기 한 시간 전인 오후 1시에 인터뷰 약속을 했다.

이 카페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블로거 사이에는 추측이 난무한다. 올 때마다 카페지기가 바뀌고, 다들 주인 같은 태도로 일하기 때문. ‘몹시’의 진짜 주인은 희고 투명한 피부가 인상적인 김나윤씨다. 남편 이강현 씨가 공동대표로 있고, 남편 친구들이 수시로 와서 몸 사리지 않고 도와준다. 두 사람은 9년 연애 끝에 지난해 결혼했다. 형식과 겉치레를 싫어하는 부부는 양가 지인들 모시고 식사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했다 한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주방에서 젊은 부부가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마치 소꿉놀이하는 것 같다.

남편 이강현 대표는 최근 개봉한 영화 〈마린보이〉 현장 편집을 담당했고, 틈나는 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그에게 ‘몹시’는 시나리오가 안 풀릴 때 쉬었다 가는 안식처 같은 공간이자 제2의 집이다.

‘몹시’는 ‘몹시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와 몹시 큰 잔에 커피가 나오는 카페’다. 먼저 이곳의 대표 메뉴인 ‘바로 구운 초콜릿 케이크’와 ‘몹시 커피’를 주문했다. 케이크는 주문하자마자 굽기 시작해 10~15분 후 커피와 함께 나왔다. 슈거 파우더가 솔솔 뿌려진 컵케이크 가운데를 푹 찌르자 진득한 초콜릿 원액이 드러났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확 올라왔다. 입에 한 숟가락 떠 넣었다. 초콜릿 특유의 향은 강하게 살아 있으면서 별로 달지 않았다. 원재료에 충실한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진짜 맛있네요”라고 말했다. 김나윤 씨는 이 초콜릿 케이크를 ‘게으름에서 나온 맛’이라고 소개한다.


겉은 익었지만 속은 진득한 초콜릿이 남아 있게 굽는 게 포인트

“저는 사실 게으르거든요. 귀찮아서 다른 첨가물을 안 넣었어요. 풍미를 좋게 하기 위해서 넣는 것들이 많은데 자꾸 잊어버렸죠. 그러다 보니 맛이 더 베이식해지면서 재료 고유의 맛이 살아나더라고요.”

‘바로 구운 초콜릿 케이크’에 들어가는 재료는 간단하다. 초콜릿과 밀가루, 달걀 등 다른 케이크 재료와 비슷하다. 다만 초콜릿 함량을 50% 이상 확 늘리고 밀가루 함량을 줄인 게 비법이다. 굽는 시간이 포인트. 10~15분 정도만 구워 겉은 익었지만 속은 진득한 초콜릿 반죽이 그대로 남아 있게 하는 게 몹시 케이크만의 특징이다.

‘몹시 커피’는 쓴맛 대신 신맛이 강하다. 초콜릿 케이크와 함께 먹으면 입 안이 개운해지면서 느끼함이 싹 가신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원두 한 가지만 써서 만드는 이 커피는 원두 자체를 덜 볶기 때문에 쓴맛이 안 나고 색이 연하다. 핸드 드립으로 잘 내리면 고구마 향이 풍긴다.

이 카페가 문을 연 건 2008년 3월. 김나윤 씨는 ‘파리의 100년 된 노천카페처럼 만들고 싶다’는 콘셉트로 준비했다고 한다. 유럽 여행을 다닐 때마다 골동품 느낌의 주전자며 찻잔을 사다 나르고, 프랑스에서 한식요리연구가로 있는 고모 김희진 씨가 쓰던 집기를 물려받았다. 벽면은 남편이 여행 다니며 찍은 사진으로 꽉 채웠고, 주문 제작한 6인용 테이블에는 타일을 붙여 독특한 분위기를 냈다. 이 카페는 외관이며 내부가 모두 민트 그린색이다. 페인트공은 칠하는 내내 “횟집할 거냐?”, “정말 이 색으로 칠해도 되겠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고.


‘몹시’는 효율적인 일, 재미있는 일을 찾아 끊임없이 기웃거린 김나윤 씨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숙명여대에서 교육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한때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수업보다 행정 업무에 짓눌려 사는 친구들을 보고 그 길을 포기하고 학원 강사로 일했다.

“학원 강사 생활도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심심한데 공부나 더할까 하고 영상원에 들어갔죠. 거기에서 이 분(남편)을 만났어요. 영상원에서는 생각외로 이론 공부가 많았어요. 저는 비효율적인 걸 참지 못하거든요. 어려운 전문용어 투성이인 수업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또 때려치우고 프랑스로 갔죠. 고모가 프랑스에 계시니 최소한 굶어 죽진 않겠구나 싶었어요.”

프랑스로 날아간 김나윤 씨는 파리의 리츠 호텔에서 운영하는 요리 학교 ‘리츠 에스코피에’에서 제과 제빵을 배웠고, 귀국해서는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와인바에서 현장감을 익혔다.


유명세를 타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체인점 제의도 들어오고, 유명 백화점들에서 입점 제안도 들어온다. 하지만 부부는 단호히 거절한다. 이강현씨는 “아직 1년도 안 됐잖아요. 이 작은 공간, 이 분위기가 좋아서 오시는 손님들이 많아요. 그분들을 위해 당분간 여기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에요”라고 말했다.

오후 1시 40분이 되자 손님이 하나 둘 문 앞에 몰려들었다. 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손님도 있었다. 2시 정각, 창문을 가리고 있던 천을 걷어 내고 문을 여는 게 하나의 의식처럼 보인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왔고, 금세 네 개의 테이블이 다 찼다. 20대 남자 둘이 온 팀도 있었다. 대부분 ‘바로 구운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첫 숟가락을 맛 본 손님들은 눈이 동그래지며 이렇게들 말했다.

“장난 아니다”, “진짜 맛있다”, “어떡해.”

따끈한 초콜릿 케이크가 이들의 몸 구석구석에 퍼지면서 행복 에너지로 바뀌고 있는 듯했다.

사진 : 김진구
  • 200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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