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에 뮤직 하우스 ‘아내뜨’ 만든 윤석영 박정림 부부

유럽의 마을 음악회를 강원도 산골로 옮겼어요

강원도 홍천군 내면 방내리.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44번 국도에서 56번 국도를 갈아타고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닿는 곳. 해발 600여m, 4월까지는 눈이 녹지 않아 온통 하얀 세상인 강원도 산속 깊숙이 뮤직하우스 ‘아내뜨’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가조차 드문 산길을 지나 ‘아내뜨’에 도착하기까지 여러 번 전화로 길을 물어야 했다. 그 길은 지루하지 않았다. 아담한 산을 덮고 있는 자작나무 숲, 하얀 눈밭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 등 강원도의 속살을 엿볼 수 있었으니.

오솔길을 헤치고 들어가자 별천지같이 유럽식으로 지은 집들이 나타났다. 산으로 둘러싸인 채 계곡을 품고 있는 포근한 지형, 강원도 산간마을인데도 겨울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쪼여 춥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본채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유럽의 작은 마을에서나 봄직한 레스토랑이 나타났다. ‘아내뜨’를 함께 일군 윤석영 박정림 씨 부부와 2008년 봄부터 합류한 박정림 씨 조카 부부가 이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아내뜨’는 200석짜리 큰 음악홀과 50석짜리 작은 음악홀, 야외 음악당까지 갖춘 뮤직 하우스. 50~60명이 묵을 수 있는 객실까지 갖추고 있어 음악인들 사이에 며칠씩 파묻혀 음악 레슨을 할 수 있는 ‘음악캠프’ 장소로 유명하다. 여름이면 여기저기에서 연주 소리가 들리고,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작은 음악회가 수시로 열린다.

스스로 ‘마당쇠’ ‘곤죽이 된 공주’라고 말하는 윤석영, 박정림 씨.
윤석영 박정림 씨는 왜 이 산속에 뮤직 하우스를 만들었을까? 영문학을 전공한 후 10년 동안 증권회사에 다녔던 윤석영 씨.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윤씨는 30대 후반까지 전형적인 한국 남성으로 살았다고 한다. 음주가무에 능했고, 골프는 70대를 칠 정도여서 프로로 전향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아내인 박정림씨는 자녀교육에 열성인 ‘강남 아줌마’였고, 아이들도 엄마의 열의에 부응했다. 세 살, 다섯 살 때부터 음악공부를 했던 두 딸 여영, 여림은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를 전공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과정에 들어갔다.

이 가족에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은 큰딸 때문이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선생님인 독일 뤼베크 음대의 자카르 브론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큰딸 여영을 보고 “독일로 데려가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열한 살짜리 딸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가족 모두 독일로 가기로 결정했다. 1996년, 독일 뤼베크에 정착한 후 윤씨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서울에서는 밤이 이슥해야 집으로 돌아오던 그가 아이들 뒷바라지에 정신없는 아내를 대신해 밥을 하고 살림을 전담했다.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살게 됐다. 아이들이 음악 캠프나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할 때면 온 가족이 함께 떠나 유럽 곳곳을 돌았다. 6년 후 아이들이 웬만큼 성장해 귀국을 준비하던 2002년, 그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꿈꾸었다.

“술 마시고 노는 것은 할 만큼 해 봤는데,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이젠 다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붕붕 떠 있는 것 같던 제 삶의 방식이 독일에서 사는 동안 차분히 제자리를 찾는 것을 느꼈거든요.”

그때 떠오른 게 독일이나 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음악회였다. 세계적인 음악가와 학생들은 음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작은 마을을 찾아 음악캠프를 했는데, 캠프가 끝날 때쯤 그곳 성당이나 교회를 빌려 음악회를 열었다.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치장하고 와서 듣는 음악회. 음악이 사람들 사이 잔잔한 파동을 전하던, 그런 곳을 한국에도 만들고 싶었다.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 음악과 삶이 하나가 되는 생활을 경험하고 보니 우리나라에도 음악 좋아하는 분들의 보금자리, 메카 같은 곳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유럽에 온 듯한 느낌이 드는 레스토랑과 객실 내부.

200석 규모의 큰 음악홀과 작은 음악홀, 야외 음악당까지 갖춰

귀국하기 전부터 매물로 나온 부동산을 인터넷으로 뒤지다 한국에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땅을 찾아 다녔다. 부부가 땅을 찾는 기준은 까다로웠다. 사람의 건강에 가장 좋다는 해발 600m 정도에 있으면서 진입로가 마을을 통과하지 않을 정도로 마을과 동떨어져 있을 것, 물 맑은 계곡을 끼고 있을 것 등이었다. 200여 군데를 리스트에 올려놓고 양평, 가평 등 서울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차례 둘러보던 이들이 화전민이 화전을 일구고 살던 이곳을 찾았을 때 똑같이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고 한다.

“우리가 찾던 바로 그 땅이었어요. 이 땅에 들어서는 순간, 눈물이 핑 돌 정도였지요. ‘주인 마음이 변해 땅을 안 팔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부터 했으니까요.”

첫 주인에게 5000평을 사들인 후 차츰차츰 넓혀 부지 2만평을 확보하고, 집도 한 채 한 채 지어 나갔다. 집의 디자인도 직접 했다는 부부에게 “어떤 양식을 본떠 만들었느냐?”고 묻자 독일 남부에서 샀다는 집 그림이 그려진 접시를 가리키며 “저걸 기준으로 지었다”고 한다. 마감이 잘된 집 구석구석에서 집 주인의 완벽주의 취향이 읽혔다. 흙과 돌, 나무 등 자연 소재로 만든 집에 음식 쓰레기는 퇴비로 만들고, 미생물을 이용한 정화조를 설치하는 등 철저히 친환경적인 집이다. 얼마 전에는 황토 흙과 육송만으로 황토 집도 지었다.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자연을 훼손시키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였다.

200석 규모의 큰 음악홀과 50석 규모의 작은 음악홀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가 된다.
음악홀은 농가 창고를 개조한 유럽 시골마을의 음악홀을 떠올리며 만들었다.

“음향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어려워 저희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홀을 만들었는데, 이곳에서 연주한 음악가들이 ‘음향이 너무 좋다’고 해요. 뾰족지붕으로 천장을 높여 소리를 모아주면서 그 밑에는 나무 보들을 설치해 적절히 소리를 분산시키고, 창가 정도 높이에는 흡음재를 붙여 소리를 흡수했는데, 그게 훌륭한 음향장치가 된 모양입니다.” 이곳은 독일 유학을 다녀온 음악인들 사이에서 먼저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부부가 독일 뤼베크와 쾰른에서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던 시절, 숱하게 드나들며 밥을 얻어먹었던 음대생들이 한국에 돌아온 후 대학교수나 강사로 자리 잡았던 것. 이들이 제자들을 데리고 찾아와 며칠씩 머물며 음악 레슨을 하느라 여름방학 때면 방을 잡기 어려울 정도다. 간간이 열리는 음악회도 이들 힘이 컸다. “밥값해야지” 라는 전화 한 통에 기꺼이 초청에 응하는 음악인들이 많아 음악가 섭외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지난 2008년 12월 24일, 큰 홀에서 열린 송년 음악회에는 쾰른 음대와 뤼베크 음대에서 공부하는 두 딸까지 합류했다. 저녁 7시에 시작한 음악회가 끝난 후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어우러져 먹고 마시며 산골의 밤을 즐겼다. 이제 이들의 꿈은 클래식뿐 아니라 국악, 재즈까지 장르를 넓혀 조금 더 자주 음악회를 여는 것. 여름 시즌뿐 아니라 주말마다 음악과 그 음악을 들으려는 관객들로 술렁이는 뮤직 하우스를 만드는 것이다. 청정환경에 조용히 묻혀있다 가고 싶은 사람들도 환영이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음악회로 만들겠다’는 원래 꿈은 음악회를 구경도 못해 본 산골학교 아이들과 면사무소, 경찰서의 공무원들,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초청해 ‘음악적 경험’을 안겨 주면서 조금씩 실현하고 있다. 서울 강남의 집을 팔아 강원도 깊은 산골로 들어온 부부. 그들은 지금의 삶에 얼마나 만족할까?

“서울 도곡동에 타워 팰리스가 생길 때 그곳으로 들어간 친구들이 많아요. 유리벽으로 차단된 초고층 건물에 사는 그들을 보고 ‘거저 줘도 안 산다’고 했지만, 그곳 가격이 치솟을 때는 ‘내가 잘못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 안 해요. 사람이 가장 많이 접하는 게 공기, 물 아닌가요? 그런 면에서 저희는 최상의 삶을 사는 거지요. 최고의 공기와 물, 먹을거리, 거기에 음악이라는 정신적 호사까지. 육체적·정신적으로 최고의 호사를 누리고 있는 셈이니까요.”

산속 마을 ‘아내뜨’의 사계.
그 호사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박정림 씨는 “육체의 한계를 느낄 만큼 노동을 해야 얻어지는 호사”라고 한다. 그래서 윤씨의 별명은 ‘마당쇠’, 박씨의 별명은 “공주가 곤죽이 됐다”고 해서 ‘곤주’가 됐다. 처음에는 재배하는 식물마다 뻣뻣해서 먹지 못했던 척박한 땅. 2~3년 정성을 들이다 보니 땅이 비옥해져 온갖 채소를 무농약으로 재배해 먹는다. 직접 재배한 콩과 산골의 청정한 물로 두부와 된장, 고추장, 간장, 청국장까지 만들고, 산에 지천으로 널린 도토리를 주워 와 도토리묵을 쑨다. 주위 산은 온갖 것을 품고 있는 보고(寶庫). 산에서 해온 나물을 큰 가마솥에 삶아 말려 두면 사시사철 나물 반찬을 낼 수 있고, 산당귀, 땅두릅, 겨우살이, 산작약, 산칡, 오갈피 등 온갖 약초들로 차를 끓인다. ‘아내뜨’를 찾았던 날에도 산채나물에 비지찌개, 도토리묵, 샐러드 등 이들이 직접 기르거나 거둔 재료들로 만든 ‘최고의 음식’으로 점심을 먹은 후, 향긋하고 달큼한 약초차로 입가심할 수 있었다.

“처음 동네 사람들을 따라 나물하러 갔을 때는 아무리 ‘요렇게 생긴 것을 캐면 된다’고 해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오늘은 그냥 배우고만 가야겠다’고 마음을 비우니 나물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멧돼지들이 맛있는 나물을 좋아해요. 멧돼지 발자국이 보이면 틀림없이 주변에 나물 밭이 있어요.”

음악회가 없는 날에도 ‘아내뜨’에서는 음악이 퍼져 나온다. 딸들이 처음 음악을 할 때만 해도 “시끄럽다”며 클래식 음악을 싫어했던 아버지 윤석영씨가 독일 생활 후 한시도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클래식 마니아가 된 것. “CD보다는 LP 음반에서 나오는 소리가 훨씬 따뜻하다”는 그가 틀어 놓는 음악 소리를 언제나 들을 수 있다.

사진 : 김선아
아내뜨 홈페이지 http://www.anette.co.kr
  • 200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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