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지신 젊은이들] 힙합 춤추며 농사짓는 김민중 라온팜 대표

창조적인 일 찾다 농사 시작했죠

도시화와 디지털화로 세상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속에서 결여되기 쉬운 따뜻함과 인간미, 예스러움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에서 미래의 희망을 읽어 내고, 옛것을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는 두 젊은이를 만났다.

콧수염에 귀고리, 선글라스, 힙합바지 차림을 한 농부, 라온팜의 김민중 대표. 동석한 20대 농부는 스킨헤드에 검은색 가죽점퍼 차림이다. 라온팜은 ‘다솜추’ 상추를 재배하는 회사 이름이자, 힙합 춤을 추며 노래하는 그룹의 이름. 젊은 농부들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댄서가 된다.
‘다솜추’가 자라고 있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1500여 평의 ‘라온팜’ 하우스를 찾았다. 삽살개 네 마리가 깡충거리며 반기는 이곳은 농장이라기보다 ‘꽃밭이 있는 놀이터’에 가깝다. 연녹색과 적색 다솜추의 배열이 빚어 내는 색감은 화려한 꽃밭 같고, 하우스 한쪽에 자리한 방송국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하우스 한가운데 웬 방송국인가 했더니, 상추들을 위해 음악을 들려주는 곳이란다. 10㎡(3평) 남짓한 방송국에서 젊은 농부들은 상추들을 관객 삼아 힙합 춤도 추고, 라디오를 들려주고, 때론 상추만을 위해 방송도 한다.

“정규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간밤 공기가 꽤 차가웠는데, 밤새 안녕하셨나요?”라며 오프닝 멘트를 하는 김 대표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음악과 춤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상추를 더 잘 자라게 한다고 그는 믿는다. 이렇게 놀면서 언제 농사를 짓나 싶지만, 라온팜은 올해 매출 3억 원을 돌파했다. ‘다솜추’ 상추 한 종으로만 올린 수익이다. 내년엔 매출 5억 원을 예상할 정도로 상추처럼 쑥쑥 자라는 회사다. 다솜추는 수경 재배라 24시간 물이 흐르게 하고, 온도와 습도만 잘 맞춰 주면 되기 때문에 계절을 크게 타지 않고, 손도 많이 가지 않는다고 한다. 1년에 9모작을 한다.

‘사랑의 상추’라는 뜻의 ‘다솜추’는 2004년 김민중 대표가 뉴질랜드에서 들여와 재배하는 연녹색과 적색 상추로,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아삭거리는 식감이 강하고 쌉싸래한 상추 특유의 맛이 특징인 다솜추는 맛도 맛이지만 무농약으로 재배돼 인기가 높다. 주문이 들어오면 물에서 건져 내자마자 두 그루씩 뿌리까지 포장돼 소비자에게 안기는 다솜추는 청결하면서도 먹기 직전까지 신선도가 유지된다. 투명 비닐에 포장되어 있는 상추가 신부 꽃다발처럼 예쁘다. 현재 롯데백화점 6개 매장과 농협 하나로 매장, 라온팜 홈페이지에서만 판매하는데, 공급이 달릴 때가 많다고 한다. 김 대표에게 무농약으로 재배하는 이유를 묻자 “처음부터 그랬어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 같아서요. 제 농심(農心)이에요”라며 멋쩍게 웃는다.

‘즐거운 농장’이라는 뜻의 라온팜은 뜻있는 지인 8명이 투자하여 만든 농업회사다. 김민중 대표를 중심으로 20대 중반부터 50대까지 나이도, 하던 일도 제각각인 이들은 ‘신농촌 건설’이라는 캐치프레이즈 하나로 뭉쳤다. 클럽에서 활동하던 젊은이는 농사가 재미있어서,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 지배인 출신 중년은 도시의 속도감에 현기증을 느껴서, 명예퇴직한 중년신사는 시골의 여유로움이 좋아서 합류했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을 충분히 존중하되, 각자가 맡은 일은 철저히 해낸다. 그런데 어쩌다 이 젊은 힙합 청년은 농부가 됐을까.



농업과 엔터테인먼트 접목해 신농촌 건설할 것

“농사하면 <전원일기>가 먼저 떠오르실 거예요. 몸뻬를 입고 허름한 초가집에 사는 농부의 이미지 말이에요. 농사에 대한 이미지를 확 바꿔서 젊은이들이 농업을 선망의 직업군으로 여기게끔 하고 싶었어요. 농업과 엔터테인먼트를 접목하자, 그러다 힙합을 떠올렸죠.”

김민중 대표가 농사의 길로 들어선 건 2001년, 한국농업대학에 입학하면서다. 그전에는 소위 ‘노는 아이’였다. 중학교 3학년이던 16세, 나이트 클럽에서 디제이 보조를 하면서 소위 ‘화류계’에 몸담은 그는 18세부터는 로드 매니저를 했다. KBS 신인가수상을 수상한 김상아 씨의 매니저도 거쳤다고. 무슨 일이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니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았다.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가 택한 다음 행로는 자장면 배달부. 그 다음엔 회사다운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에 학습지 영업사원을 택했다. 한 달에 한 권도 못 파는 영업사원이 수두룩한 가운데, 그는 20일 만에 2700만 원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그는 “공부 빼고 다 잘했다”고 호언장담하며 이렇게 말한다.

“공부도 맘만 먹으면 잘했을 거예요. 뭘 하나 하면 집중해서 파고드는 스타일이거든요. 남들이 다 하는 건 재미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못 하는 걸 해내고자 하는 영웅심리가 있었어요. 제 별명이 ‘아이디어 뱅크’, ‘×도 상상력’이거든요. 이제 제 길을 찾은 것 같아요. 그동안 숱한 경험들이 다 농사를 짓기 위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은퇴하신 후 취미 삼아 짓던 농사를 곁에서 돕던 그는 농사에 매력을 느꼈고, 한국농업대학에 입학해 화훼를 전공했다. 재학 중 뉴질랜드에 가서 실습한 적이 있는데, 이때 다솜추를 눈여겨봤다.

“2003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세상이 텅 빈 것 같았죠. 아버지가 농사를 짓던 텃밭이 폐허가 되어 가는 걸 보니까 더 가슴이 아팠어요. 이 텃밭을 살려 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2004년부터 뉴질랜드에서 다솜추 종자를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수경재배 상추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재배에 필요한 호스나 모판 등의 장비가 없어서 일일이 주문 제작해야 했다. 초기투자비용이 많이 들어 첫해, 이듬해에는 적자를 봤다.

“다솜추는 일단 시스템만 갖춰 놓으면 손이 많이 가지 않는데, 초기투자비용이 많이 들어요. 평당 40만 원이 들어가거든요. 수월해 보이고, 수익성도 있어 보이니까 하고 싶어서 오셨다가 비용 때문에 그냥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아요. 지금도 순익의 절반은 투자비에 쏟아요.”

다솜추의 수경재배 모습. 적색 다솜추는 쌉싸래한 상추 특유의 향이 강하고, 녹색 다솜추는 아삭거리는 식감이 강하다.
상추 농사만 5년, 준비기간까지 따지면 8년째 농부로 살고 있는 그는 농부의 삶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 농부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창조의 세계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농사는 최고의 예술이에요. 농부와 예술가는 닮은 점이 많아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점, 창조의 고통이 따른다는 점,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은 가차 없이 버린다는 점, 또 둘 다 가난하다는 점도 닮았죠. 하하하.”

그가 농촌으로 돌아온 건 전략적인 선택이다. 교사를 하다 정년퇴임한 어머니, 엘리트 코스를 밟은 형과 여동생 틈바구니에서 ‘창조적인 일’, ‘가치 있는 일’을 찾아 고심한 끝에 결정한 행로다.

“농약 한 방울 안 쓰고 농사짓는 일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좀 더 건강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의 순환대로 사는 세상을 꿈꿔요. 농촌을 부흥시키기 위해 할 일이 많아요. 저는 제 자신을 신농촌 건설의 선두주자라고 소개해요. 돈 버는 구조가 아니라서 귀농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그 길을 개척할 거예요.”

사진 : 장성용
  • 200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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