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정미소를 박물관으로 바꾼 사진작가 김지연

우리 일상 속에 깃든 위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전북 진안군 마령면 계남마을. 전주에서 자동차로 40~50분 거리, 마이산 남쪽자락에 자리 잡은 이 산간마을에 요즘 외지인들이 부쩍 찾아들고 있다. 이곳에 들어선 ‘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를 물어물어 찾아오는 것이다.

산간마을 중에서는 꽤 넓은 논밭을 앞에 둔 이 박물관은 원래 정미소로 쓰이던 곳. 정미소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양철 지붕에 칠을 하고, 내부를 개조해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안으로 들어서자 탈곡기 등 옛 물건들이 남아 있어 동네 정미소라도 찾은 듯 정겹고 편안하다. 전시실에 걸린 것도 대가들의 작품은 아니다. 1999년 용담댐 수몰로 사라지거나 부지를 옮긴 인근 초등학교 여섯 곳의 졸업사진과 자료사진들이 차례차례 전시되어 있다. 진안지역은 다른 곳보다 일찍 학교 형태의 학당이 세워진 곳. 용담댐 수몰로 사라진 용강초등학교는 1908년 설립된 사립초등 교육기관인 용강학교가 모태다. 1912년 용담공립보통학교로 다시 개교한 이 학교는 87년 역사를 뒤로하고 영원히 사라졌다. 구겨지고 빛바랜 1915년 졸업사진이 이 지역에 일찍이 싹튼 교육열을 대변할 뿐이다.


졸업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지역 어르신이나 그 아버지, 할아버지들. 이 지역 보통사람들의 삶이 작품이 되고 역사가 되는 전시다. 사진작가 김지연 씨가 전북도청과 진안군청, 인근 학교들을 샅샅이 뒤져 어렵게 찾아낸 사진들이다. 김지연 씨가 이곳에 박물관을 연 것은 2006년. 전국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라져 가는 정미소를 찾아 카메라 렌즈에 담던 그는 정미소를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켜 마을 공동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미소는 제게 유년의 행복한 기억을 담고 있는 장소예요. 어릴 적 지금은 광주로 편입된 시골에 살았는데, 할머니를 따라 정미소에 들어가면 탈곡되어 나오는 쌀들이 그렇게 풍요로워 보일 수 없었어요. 누구 아들이 결혼한다더라 등 온갖 정보들이 오가는,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지요.”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어려움을 겪은 그에게 정미소는 특별한 추억이 됐다. 그가 정미소를 다시 찾은 것은 쉰 넘어 사진작업을 시작하면서였다. 자기표현 욕구가 강해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지만, 전주로 시집온 후로는 아내, 엄마로서의 삶에 충실했다.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불쑥 솟았지만 틈이 없었다. 그러다 1999년부터 1년 반 동안 서울로 사진을 배우러 다녔다. 3남매 모두 대학을 졸업한 다음이었다. 새벽 6시 차를 타고 올라가 저녁에야 돌아오면서도 행복했다.


마을 사람들의 결혼식 사진으로 박물관 개관전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까?’ 고민하던 그의 마음은 크고 화려한 것으로 향하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작고 사소하고 이름 없는 것들, 사라져 가는 것들에 기울었다. 그것들을 충실하게 기록해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가 처음 찾은 대상은 2000년 문을 닫은 남광주 기차역. 새벽 4시에 통일호 열차를 타고 전주에서 남광주역까지 내려갔다. 집에서 키운 호박이나 상추, 가지, 고추, 옥수수 따위를 싸들고 기차를 타고 와 풀어놓고 파는 시골 아낙 등 앞으로는 볼 수 없게 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정미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00년에 장만한 승용차 마티즈를 타고 전국 곳곳을 누볐다.

“정미소를 내려다보는 산, 정미소로 향하는 길들조차 저는 친밀하게 느껴져요.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연까지 품고 있으니까요.”

이제는 효용성을 잃은데다 마을의 흉물로 변해 사라져 가는 정미소들이 그의 렌즈를 통하자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났다. 소박한 조형미와 색의 조화가 현대미술을 연상시킨다. 사진에 있어서 피사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될 정도. 정미소의 아름다움이 가장 잘 부각되는 각도를 찾기 위해 근처 산을 오르고, 날씨가 흐릴 때 건물의 디테일이 잘 살아나기에 구름이 오기를 무작정 기다린 노력의 결과다. 그가 사진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정미소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갔다.

그의 눈에 계남마을의 정미소가 들어온 것은 2005년. 계남마을 입구에 있는 폐업한 지 1년 된 정미소로, 점차 흉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이 정미소를 사들여 박물관으로 개조하는 그를 박물관에 가 본 적 없는 마을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김지연 씨는 2006년 5월, 박물관 문을 열면서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계남마을 사람들’로 첫 전시를 했다. 박물관을 마을 사람들과 동떨어진 공간이 아닌,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30여 호 되는 집집마다 다니며 결혼사진 등 옛날 사진을 모아 전시를 준비했다. 16년째 이 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장진권 씨(62세). 15세 때 이 마을로 이사와 25세 때 박경순 씨와 결혼, 1남 1녀를 둔 그의 결혼식 사진이 전시장에 걸렸다. 사모관대 차림으로 전통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다. 증조부 때부터 이 마을에서 살아온 전동규 씨(65세)의 결혼사진도 나왔다. 박물관을 찾은 마을 어르신들은 신기해하면서 “이런 것도 전시회를 하느냐?” 하고, “아니, 저 사람은 지금 딸 모습하고 똑같네”라며 즐거워했다. 문화니 예술이라는 게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평범한 삶도 의미를 부여하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계기였다.


김지연 씨는 2001년 ‘남광주’를 주제로 사진전을 연 이래 ‘정미소’(2002년) ‘나는 이발소에 간다’(2004년) ‘묏동’(2007년) 등 묻히고, 잊히고, 사라져 가는 것들을 포착한 작품들로 전시회를 열고 사진집을 내 왔다. ‘나는 이발소에 간다’는 사라져 가는 시골 이발소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한 작품들이다. 그는 수십 년 동안 한자리에서 시골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어 온 이발사들을 정면으로 찍었다. 그들의 장인정신과 성실함에 바치는 헌사였다. 요즘 그는 마을 이장님들을 쫓아다닌다. 2007년 봄부터 해 온 작업으로, 올해 11월 말 ‘이장님’ 전시회를 열기 위해서다.


“행정기관과 농민들의 다리 역할을 하는 이장님들은 너무 바빠 대통령 만나기만큼이나 힘들어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정말 많은 일들을 해내는 분들이죠.”

평범함 속에 깃든 위대함을 찾아 드러내는 일. 뒤늦게 사진작가의 길에 뛰어든 그가 계속해서 하고 싶은 작업이다.●

사진 : 문지민
  •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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