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햇포도를 수확하는 첫 주말이면 시인과 일반 관람객을 모아 문화축제를 여는 포도밭이 있다. 포도꽃이 한창인 6월 6일에는 작고 예쁜 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시키기 위해 ‘포도꽃 축제’도 연다. 포도나무에 시가 매달려 있고, 농약이나 제초제 한 번 쓰지 않고 포도를 생산하는 곳.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 잡은 시인 류기봉(43세) 씨의 포도밭이다.">

자연농법으로 포도 키우며 포도밭 축제 여는 시인 류기봉

1년에 한 번, 햇포도를 수확하는 첫 주말이면 시인과 일반 관람객을 모아 문화축제를 여는 포도밭이 있다. 포도꽃이 한창인 6월 6일에는 작고 예쁜 꽃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시키기 위해 ‘포도꽃 축제’도 연다. 포도나무에 시가 매달려 있고, 농약이나 제초제 한 번 쓰지 않고 포도를 생산하는 곳. 경기도 남양주에 자리 잡은 시인 류기봉(43세) 씨의 포도밭이다.
그가 1년 내내 정성스럽게 돌본 포도나무가 마침내 탐스런 열매를 맺었다. 포도를 첫 수확하는 첫 주말, 그는 올해도 변함없이 시인과 일반 관람객을 불러 자신의 포도밭에서 예술제를 열었다.
류씨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17년째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베테랑 농부. 詩作에도 충실해 지난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후 세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을 냈다. 농사지으면서 시도 짓는 그는 자신이 키우는 포도에 예술이라는 옷을 입혔고, 평범한 포도밭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를 만난 지난 8월 31일은 마침 올해로 11번째를 맞는 <포도밭 작은 예술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평소 조용하던 포도밭이 이 날은 축제장을 찾은 외지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그에게도 1년 중 가장 바쁜 날이다.

그가 쓴 글에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 <류기봉 생태 시화전>은 포도밭 예술제를 빛내는 또 하나의 볼거리다.
포도밭은 입구부터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포도밭으로 이어지는 좁은 오솔길 양옆에는 사진작가 김완모 씨가 지난 겨울부터 수시로 이곳을 찾아 찍은 ‘포도밭의 사계’ 사진들이 걸렸고, 포도나무마다 시인들이 직접 시를 쓴 광목천이 나부꼈다. 이문재, 이덕규, 김행숙, 박상순, 고두현, 조정권 등 자신의 작품을 포도나무에 달아 놓은 시인들이 독자들과 함께 포도밭을 거닐며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시 낭송회에 이어 한바탕 펼쳐진 현대무용가 정진이 씨의 흥겨운 춤사위, 한낮인데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싱그러운 소나무 숲에 앉아 듣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은 일품이었다. 행사장을 분주히 오가며 땀을 훔치던 류씨는 “해마다 방문객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올해가 그중 최고인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포도밭으로 이어지는 좁은 오솔길에서 열린 <포도밭의 사계>전. 사진작가 김완모 씨가 꼬박 1년 동안 카메라에 담은 작품들이다.
“벌써 11년이 되었네요. 처음에는 혼자 하느라 많이 힘들었죠. 빚도 많이 졌고요. 입소문이 난 덕분에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축제가 되었고, 그 덕에 올해는 남양주 시청의 지원을 받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었고요. 규모가 커지면서 할 일은 더 많아졌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네요.”

한 관람객이 시와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밭을 산책하고 있다.

故 김춘수 시인의 제안으로 시작된 예술제

그에게 이처럼 색다른 문화축제를 제안한 사람은 지난 2004년 작고한 김춘수 시인. 자신에게 시를 가르쳐 준 김춘수 시인을 그는 아버지처럼 따랐다. 등단할 때도 김춘수 시인의 추천을 받았다. 특히 그는 김 시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13년간 한결같이 1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시를 배우고 극진히 모신 일로 문단에서도 유명하다.

“그때가 1998년 봄이었어요. IMF 외환위기 직후라 경제가 어려웠고 포도농사도 마찬가지였죠.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김춘수 선생님이 제 모습을 보시고는 이런 얘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예전에 프랑스의 작은 시골 포도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포도와 포도주만 파는 게 아니라 그림도 걸어 놓고, 시화전도 하고, 음악회도 열고, 공연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러면서 ‘자네는 시도 쓰고, 포도농사도 지으니 얼마나 좋은 조건이냐, 하겠다고만 하면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포도밭을 따라 걸으면 예술제의 무대가 되는 숲 속으로 이어진다. 포도밭 사잇길에는 류기봉 시인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시화들이 손님을 맞는다.
“농촌 사람에게는 문화적 삶의 질을 높여 주고, 도시 사람에게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그 속에서 예술의 향기를 느끼는 기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스승의 말에 용기를 얻은 그는 곧바로 준비에 들어갔고 그 해 가을 첫 잔치를 열었다.

알음알음으로 시인들을 모았고, 맨발로 포도밭 걷기, 포도 따기, 포도로 염색하기, 포도음식 만들기 같은 가족 단위 체험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기꺼이 작품을 내놓고 축제장까지 걸음을 해 행사에 도움을 준 시인들에게는 거마비 대신 포도나무를 분양해 주었다. 김춘수나무를 시작으로 정현종나무, 이문재나무, 이덕규나무, 김행숙나무 등 그의 포도밭에 20여 그루의 ‘시인 포도나무’들이 자라게 된 사연이다.

“이 나무가 김춘수 선생님 나무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시던 해인 2004년, 전에 없이 무성하게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더니 돌아가신 다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거예요. 포도도 두세 송이씩밖에 안 달리고. 그러더니 지금은 이렇게 바짝 말라서 거의 고사 직전이에요. 참 신기하죠?”

시낭송회, 연주회, 춤 공연 등이 펼쳐진 숲 속 무대.

자연농법으로 키우는 건강한 포도

성서대학교 외국어학과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에만 뜻을 둔 문학청년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아버지의 포도농사를 도운 것도 시를 쓰기 위해서였다. 등단하면 곧 취직하겠다는 것이 당시 그가 아버지와 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등단이라는 큰 꿈을 이루었는데 취직도 뜻대로 되지 않고, 그렇다고 농사도 제대로 짓지 않는 어정쩡한 상태로 몇 년을 보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포도밭에 제초제를 뿌리는데, 불현듯 풀들이 신음 소리를 내는 것같이 들렸어요. 그 순간 내가 지금 풀만 죽이는 게 아니라 흙과 그 안에 살고 있는 미생물, 나아가 자연을 죽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자신의 시 앞에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덕규 시인. 그 역시 경기도 화성에서 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의 쌀농사를 지으며 시를 짓는 ‘농부시인’이다.
이후 그는 자연농업학교에 입학해 자연농법을 배웠다. 제초제나 화학비료, 농약 같은 화학 성분은 일절 쓰지 않는 대신 한의원에서 얻어 온 한약재 찌꺼기와 풀을 썩힌 퇴비를 밭에 뿌렸다. 흙이 건강해야 나무도 건강하고, 그렇게 열린 포도라야 사람 몸에도 이로울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그러다 보니 돈과는 멀어졌다. 그가 실천한 완전한 자연농법은 흙을 살리고, 포도의 맛과 향을 월등히 높였지만 소출은 적었다. 유기농으로 전환한 첫 해에는 1만3223㎡(4000평) 포도밭에서 겨우 2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올해도 작황이 좋지 않아 상품성이 있는 포도는 전체 포도나무의 절반도 안 된다.

“처음에 같이 유기농법을 시작했던 친구들은 진즉에 다 그만뒀어요. 지금은 억대 농부가 된 그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솔직히 흔들릴 때도 있지요. 하지만 포도밭에 나와 이 나무들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요. 애인 같은 내 나무들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고, 제초제를 뿌려 땅을 죽이는 일은 차마 할 수 없으니까요.”

“자연농법으로 포도농사를 짓는 일도, 시를 쓰는 일도 모두 돈이 안 된다”는 류기봉 시인.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아내와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섰다. 이씨는 현재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자연농법에 주력하는 동안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사람은 아내 이명신(42세) 씨였다. “포도농사 못 짓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꿈쩍도 안 해 이제는 내가 포기했다”며 웃는 이씨.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부동산을 운영하는 아내 덕분에 큰 짐을 덜었다”며 그 역시 함께 웃었다.

행사 중 잠깐 짬을 낸 그를 너무 오래 붙잡아 둔 것일까, 인터뷰를 마칠 즈음 그를 찾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왔다. 양해를 구하며 허둥지둥 인사를 건넨 그가 산비탈 행사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예술제를 계속 이어가 더 많은 시인나무를 만들고, 언젠가 이곳에 포도나무 문학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남기며.●

사진 : 김선아
  •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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