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사진전 연 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과 오선희 씨 부부

들꽃에서 새로운 삶을 발견했어요

남자는 정신없이 바빴다. 밤늦게 돌아와 새벽이면 집을 나섰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여자는 결혼 초부터 그 남자의 등만 보고 살아야 했다. 허전하고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여자는 마당을 가꾸었다. 모두들 살기 편하다는 아파트를 탐낸 적이 없는 것은 마당 있는 집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두 사람 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때, 여자가 가꾼 마당의 꽃들이 비로소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꽃에 사진기를 들이대며 촬영하던 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고 꽃을 찾아 전국 곳곳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두 번째 부부 사진전을 연 한송과 솔체의 이야기다. 한송(寒松)은 조용경 포스코건설 부사장, 솔체는 그의 아내 오선희 씨의 호. 한송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독야청청한 소나무가 좋아서, 솔체는 몽고에서 본 보라색 꽃이 예뻐서 붙인 호다. 이번 전시회에 한송은 36점, 솔체는 24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새치름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는 오대산의 흰금강초롱꽃, 강원도 매봉산의 솔나리, 강원도 홍천의 깽깽이풀, 선운사의 꽃무릇, 한라산의 노란제비꽃, 태백산의 참기생꽃, 함백산의 투구꽃…. 우리나라 자연 곳곳에 숨어 있는 들꽃을 찾아내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포착해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해가 떠오른 지 몇 시간 후나 해가 지기 전 빛이 고루 퍼질 때가 꽃들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때. 이를 위해 새벽부터 산을 오르기도 하고, 몇 시간씩 한자리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한 꽃을 100장, 150장씩 찍어 그중 최고의 컷을 뽑아 낸다. 솔체의 눈은 나무에 깃드는 새에게도 미쳤다. 흔히 ‘뱁새’로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나뭇잎 밑에 숨어 까만 눈동자를 빛내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덕소에서 촬영한 오색 딱따구리의 색도 곱다. “돌아보지 않아 그렇지 우리 주변에 예쁜 새들이 많다”고 한다.

솔체가 한송을 야생화의 세계로 안내했다면, 사진에 먼저 입문한 것은 한송이였다.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머물 때 6개월 동안 사진 아카데미를 수강했습니다. 주로 실기 수업이었는데, 학교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베니스 비치에 가서 망원렌즈로 사람을 촬영하곤 했죠.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촬영한 사진이 학교 캘린더에 실려 작품료로 25달러를 받았습니다.”

‘박태준 사단’이라는 이유로 포항제철을 떠나야 했던 때, 착잡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잡았다. “사진은 빛과 그림자의 예술”이라며 “그림자가 가장 짙다는 것은 빛이 가장 가까이 있다는 증거”라는 교수의 말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시 바빠진 생활에 멀어졌던 카메라를 다시 잡은 것은 2002년 일본 출장길에 아들 선물로 디지털 카메라를 사오면서였다. 사진 한 장을 손에 쥐기까지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필름 카메라와 달리 디지털카메라는 마음껏 촬영한 후 컴퓨터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어른 장난감’이라고 할 만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가꾼 정원의 꽃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접사렌즈로 촬영해 컴퓨터 화면에 확대해서 보니 눈으로는 안 보이던 게 보였다. 직경 10cm에 달하는 꽃이나 2~3mm인 작은 꽃이나 갖춰야 할 것은 모두 갖추고 있는 게 신기했다.



들꽃의 매력을 살리려면 눈높이를 맞춰 촬영해야

들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들꽃마을(www.flover-vill.net)’에 가입한 다음 부부는 주말마다 우리 들꽃을 찾아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좋아하던 골프는 포기했다. ‘들꽃마을’ 회원들의 철칙은 “절대 채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들꽃을 감상하고 사진으로 남길 뿐, 그들이 사는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 조심한다. 솔체는 “들꽃을 만나러 다니면서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더욱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날이 맑은지 흐린지, 빛의 방향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따라 카메라에 포착되는 들꽃의 모습은 달라진다. 한송은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들꽃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으면 명함사진처럼 밋밋하고 매력 없이 되고 만다고. 땅에 낮게 피어 있는 들꽃을 촬영하기 위해 땅을 파서 카메라를 묻은 채 바짝 엎드리기도 하고, 물속에 들어가기도 한다. 역광을 받아 꽃잎이 투명하게 빛나거나, 비스듬히 들어오는 빛으로 반짝 매혹적인 모습을 드러낼 때면 “아, 나를 위해 이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희열이 인다.


초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올라가 고도 1400m에서 기생꽃을 찾았는데, 솔체는 “왜 기생꽃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알겠더라”고 말한다. 흰색 꽃의 꽃잎에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펄이 들어 있는 꽃. 그늘에 사는 꽃에 빛이 비치면 반짝반짝 펄이 화사하게 빛났다.

“남정네 마음을 흔들 정도로 고와요. 펄이 보였다 말았다 하는 게 마음을 안타깝게 하면서 매혹적이죠. 한송 님도 감격스러워하면서 흔들리는 것 같더라고요.”

한송은 강원도 정선 석회암 지대의 동강할미꽃이나 바닷가 바위틈에 피는 해국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흙 한줌 안 되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꽃을 피우는 동강할미꽃이나 절절 끓는 바위 위에서 염분과 비바람에 시달리며 꿋꿋하게 견디는 해국을 보면 감동스럽지요. 왜 나만 힘들다고 불평해 왔는지 반성이 됩니다.”

그러면서 도종환의 시 〈흔들리면서 피는 꽃〉을 읊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한송은 건설업계에 종사하다 보면 괜한 오해를 사거나 지치고 서글퍼질 때가 많은데 주말마다 들꽃 촬영을 나가면서 그동안의 스트레스는 잊고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고. 새로 한 주가 시작될 때는 “그래, 열심히 살자” 하며 용기가 솟는다. 평생을 홀로 있게 했던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큰 수확이다. 미대 출신인 솔체가 전체 구도를 잡는 감각이 뛰어나다면 한송은 카메라 조작에 더 익숙한 편. 한송은 들꽃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클로즈업해 보여주려는 반면, 솔체는 주변 환경과 꽃의 조화를 중시한다. 그런데 “요즘은 작품이 서로 자꾸 비슷해진다”고 말한다. 현장에서는 각자 촬영에 몰두하느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지만, 이심전심 통하는 게 많아졌다고 한다.


한송에게 “일을 하다 보면 골프약속도 필요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솔체가 “저 때문에 많이 포기했지요”라며 고마워한다.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그는 대신 지인들에게 자신이 촬영한 야생화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기도 한다. “이 꽃 보시고 이번 한 주를 행복하게 보내세요”라면서. 요즘은 “당신이 왜 골프를 안 치는지 이해하겠다. 부럽다”고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전시한 작품을 팔아 얻은 수익금은 인천의 중증장애우 요양시설인 명심원에 전액 기탁할 예정. 포스코건설이 회사차원에서 지원하던 명심원을 찾아 목욕봉사를 하고 온 후, 그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월급 이외에 들어오는 원고료나 강의료 같은 수입을 기부해 오던 터였다. 2006년 첫 전시회를 연 후 두 번째 전시회를 연 이들은 앞으로도 2년에 한 번씩 부부 전시회를 열겠다고 한다. 이들은 들꽃이 전해 준 아름다움을 세상에 퍼뜨리고 있었다.

사진 : 김선아
  • 2008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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