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최초 경비함 부함장 고유미 경감

동경하던 바다의 수호자가 되다

“해경 역사상 최초의 20대 경감이자 여성 최초의 부함장이라는 것,
거기에 저 스스로 함정근무를 지원한 것.
이 모두가 저를 믿고,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끔 도와주신 분들에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갑판사라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던 5년 전과
배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지금은 비교할 수 없죠.”
부산역에서 택시로 15분쯤 달려 도착한 부산 영도의 끝자락. 오륙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이곳에 부산해양경찰서가 있다. 해양경찰서 앞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가로지르는 길이 300m 부두의 끝머리. 흰색 선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길이 약 100m, 높이 30m쯤 되는 부산 해경의 1500톤급 경비 구난함 ‘제민3호’다. 간이 탑승다리를 통해 헬리콥터 착륙장이 마련되어 있는 배 후미로 올라섰다. 바다에 내려진 작업용 보트를 인양하는 해경과 전경들로 떠들썩하다. 그 틈을 비집고 짙은 남색 바지에 하늘색 셔츠를 단정하게 받쳐 입은 여성 한 명이 다가왔다.

55년 해양경찰 역사상 첫 20대 여성 경감이자 해양경찰 보유 선박 최초의 여성 부함장인 고유미 경감(29세)이다. 고 경감에게는 유독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2003년 해경이 창설된 지 50년 만에 처음으로 경비함에 승선해 남성과 동일하게 근무한 여성이자, 2005년 20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경위로 승진했다. 심하게 흔들리는 제민3호의 배 안, 고 경감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은 헬리콥터 착륙장보다 한결 울렁임이 덜했다.

그녀에게 왜 해경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바다, 그리고 인생의 블루오션을 찾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릴 때 제가 살던 집이 영도 부산해양경찰서 맞은편 언덕에 있었습니다. 공부하다 답답해 방 창문을 열면 시원하게 탁 트인 바다와 배들이 한눈에 들어왔지요. 특히 해뜰 무렵의 바다는 제게 무한한 동경을 심어 줬어요. 해양경찰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해경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한국해양대학 해양경찰학과에 수석 입학한 그녀는 해경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새롭게 이루어 낼 것이 많다’고 생각했고, “내 인생의 블루오션을 찾은 것 같았다”고 말한다.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그녀에 대해 부모님은 믿음 반, 걱정 반이었다고 한다. “이번에 경감으로 승진하면서 이제 완전히 저를 믿으시는 것 같다”며 “부모님께 당당한 제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 제일 기쁘다”고 한다.

경감으로 승진하자 그녀는 편한 자리를 마다하고 경비함 승선 근무를 자원했다. 그 이유에 대해 “기본부터 차곡차곡 쌓아 가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함정은 해경의 모든 것입니다. 그러니 함정 근무를 원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요? 현장을 알아야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조직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 경감은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곤 두툼한 종이 뭉치를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여기 있는 내용들이 해경이 하고 있는 일”이라며 말을 이었다.

“함정 하나는 저기 뭍에 보이는 (해양)경찰서 하나와 같습니다. 해상경비, 해난구조, 해상범죄 단속, 해양오염 감시와 방제, 그리고 EEZ(배타적 경제수역) 경비까지 이 배 안에서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해상 근무를 하고 싶다고 한다. 고 경감은 제민3호의 부함장이 된 지 9일 만인(3월 31일 부함장 발령) 지난 4월 8일 첫 항해를 떠나 일주일 동안 배에서 근무하고 4월 14일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첫 항해를 마친 느낌을 물었다.

“제민3호는 5년 전 처음 인연을 맺은 배입니다. 제가 해경 경비함의 첫 여성 승무원으로 선발됐을 때 갑판사로 탔던 배가 바로 제민3호죠. 이 배는 정말 저와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나 봐요. 그래선지 이번이 부함장으로서 첫 항해였지만 처음이라는 감흥보다는 고향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해경 역사상 최초의 20대 경감이자 여성 최초의 부함장이라는 것, 거기에 저 스스로 함정근무를 지원한 것. 이 모두가 저를 믿고,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끔 도와주신 분들에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갑판사라는 역할에만 충실하면 됐던 5년 전과 배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에 책임을 져야 하는 지금은 비교할 수 없죠.”

고 경감은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출항했기에 잘해야겠다는 생각뿐 다른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고 했다.


뱃멀미도 정신력으로 이겨내죠

제민3호
고 경감은 해경들 사이에서 타고난 해경으로 불린다. 고 경감에게 왜 해경들이 이런 말을 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면서 의외의 대답을 한다.

“아마… 제가 멀미를 안 해서 그럴 거예요.”(웃음)

-멀미요?

“해경들이 처음 배를 타면 가장 고생하는 것이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족한 체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멀미 때문입니다. 멀미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근데 저는 배를 탄 이후 단 한 번도 멀미를 한 적이 없어요. 이번에도 풍랑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배가 심하게 흔들려 모두 힘들어했는데 저는 멀쩡하더라고요.”

옆에 있던 고 경감의 대학 후배인 부산해경 홍보팀의 김진희 경사가 “정말! 그러고 보니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고 경감님 멀미하는 걸 한번도 못 봤네요”라며 거들었다. 어떻게 멀미를 안 하느냐고 물으니 그녀는 정신력으로 이겨내는 것이라고 했다.

“‘멀미하면 안 돼…멀미하면 안 돼…’라고 속으로 되뇌죠. 몸이 아픈 동료나 어린 전경들을 챙기고 다독여야 하는 입장에서 제가 멀미를 하면 배가 어떻게 되겠어요. 아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멀미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아직 미혼인 고유미 경감. 그녀는 무엇을 하든 최대한 열정을 쏟아야 한다고 한다. 그녀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웃으며 “절대 독신주의자 아니에요”라며 “앞으로 태어날 제 아기에게 아직은 최고의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저는 가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일 때문에 가정을 등한시한다면 말이 안 되죠. 가정도 제대로 못 돌보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런 면에서 아직은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일과 가족 모두에게 최고가 되기에는 제가 갖추고,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친구들 아이를 보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하하하…)

결혼 이야기에 연신 웃으며 “요 얘긴 안 쓰면 안 되나요” 하며 쑥스러워하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서 인간미가 느껴진다. ‘여자가 배를 타면 부정 탄다’는 뱃사람들 사이의 금기를 깨버린 그녀. 그는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었던 바다를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고 있다.

사진 : 문지민
  • 200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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