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 분원초교 안준철 교장

졸업생들에게 초상조각 선물하는 교장 선생님

각급 학교가 졸업식으로 분주하던 지난 2월 14일.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 자리 잡은 분원초등학교에서는 아주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올해 졸업을 맞은 16명의 졸업생 전원이 자신의 초상조각을 선물로 받은 것.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준비한 사람은 바로 이 학교 안준철(57세) 교장이었다. 이 작업을 하느라 그는 지난 일 년간 방학은 물론 주말이며 평일 자투리 시간에도 구슬땀을 쏟았다.

작품전시회처럼 졸업식 당일 학교 현관을 장식했던 16개의 초상조각은 졸업식이 끝나자 저마다 주인을 찾아갔다. 자신을 꼭 닮은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아이들의 입가엔 환한 미소가 번졌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안 교장이 졸업생들에게 초상조각을 선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분원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첫 해 시작한 일이니, 벌써 3년째. “졸업생들에게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는 그는 대학원 시절 조소를 전공한 실력을 살려 그 해 가을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난생처음 모델이 된 아이들은 교장선생님과 마주 앉은 첫날, 쑥스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생활이며 앞으로의 꿈, 집안 형편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점차 속내를 털어놓았다.

“주로 진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시골이라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아이들이 자기가 가진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조언들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집안 얘기도 나오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도 하게 되고. 이 작업을 하면서 아이들과 많이 가까워졌어요.”

그는 “그 과정이 더 즐겁고 보람 있었다”며, 자신의 작품을 소중하게 안고 떠나는 졸업생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목표를 향해 가다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이 작품을 만들며 함께 나눈 이야기가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그가 초상조각 뒤에 아이들에게 들은 ‘장래 희망’을 꼭 새겨 주는 이유다.

올해로 교직생활 34년째를 맞은 그는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이 지역에서만 20년 이상 교편을 잡았다. 분원초등학교는 그의 첫 교장 부임지. 농촌 인구 감소, 출산율 저하 등의 사회문제와 맞물려 폐교 위기까지 가는 시골 학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그는 부임하자마자 학교의 변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제가 왔을 때 분원초등학교 전체 학생 수가 90명이었어요. 그런데 이 지역이 팔당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공장 같은 시설이 없거든요. 외지 사람이 들어올 만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 수가 줄면 줄었지, 더 늘어날 여지가 없었지요. 그래서 우선 ‘아이들이 오고 싶은 학교’, ‘학부모가 참여하는 학교’, ‘지역사회와 유대가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다양했다. 시골 학교를 후원하는 민간기업의 프로젝트에 지원, 학교 도서관을 도시의 어린이도서관 못지않은 모습으로 변화시켰고, 분원리가 궁중도예의 산실이었던 점에 착안해 도자특성화학교로도 지정받았다. 도예공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전기 가마까지 갖추고 있어 도예의 전 과정을 실습할 수 있는 것은 분원초등학교의 큰 자랑. 인근에 폐교한 학교 두 곳을 그냥 방치하지 않고 교통체험학습장과 미술체험학습장으로 꾸민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최신식으로 꾸민 도예공방과 도서관 같은 학교 시설물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평생교육시설로 개방했다. 논술, 가야금, 플루트, 단소, 도예 등 방과 후 프로그램을 강화해 학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골 학교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도 주력했다.

그의 이런 헌신적인 노력은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이끌어 내 남종면 이장협의회는 해마다 받는 1800만~2000여만 원의 한강수계 지원금을 분원초등학교의 방과 후 교육활동비로 선뜻 내놓았다.


도시 아이들이 전학 오는 시골 학교

한 학년 단일 학급으로, 한 반이 20명을 넘지 않는 ‘미니 학교’의 장점을 살려 담임교사와 학생, 학부모간의 돈독한 유대관계에도 신경을 썼다. 한 달에 한 번씩 담임교사들이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도록 했는가 하면, 학교 행사 때도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분원 한마당 축제, 분원가족 등반대회, 작품전시회, 학예회 등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정기적인 행사만도 일 년에 서너 차례. 졸업식이나 운동회는 아예 ‘동네잔치’로 치러진다. 특히 졸업식 날, 식을 마친 후 마을 사람들이 학교 급식실에 모여 다같이 떡국을 나누어 먹는 것은 이제 연례행사가 되었다.

“규모가 작다는 것이 오히려 우리 학교의 강점”이라는 그는 “요즘은 외지에서 전학 오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며 즐거워한다. 부임 첫 해 90명이던 전교생이 3년 새 무려 37명이 늘어난 것. 학부모의 직업도 변호사, 사진기자, 사업가 등으로 다양해졌다.

“학생 수가 더 이상 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인데, 해마다 늘고 있어서 저도 좀 놀랍습니다. 요즘은 학부모들로부터 ‘이제 아이들을 그만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 섞인 압력(?)을 받을 정도예요. 올해도 졸업생 수보다 신입생이 많아 남종면 장학회에서까지 걱정 하더라고요. 남종면 장학회에서는 이 지역 아이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은 상태로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진학할 경우 장학금을 주고 있거든요. 많은 금액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정된 재원으로 운용하다 보니 지원대상이 많으면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겠죠. 물론, 즐거운 고민이지만요.”

“30년 이상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이제야 교육이 뭔지 조금 알 것 같다”는 그는 “교육은 확실히 이론이 아닌 경험”이라며 웃었다. “열정만 많았지, 경험이 부족했던 초보 교사 시절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교장 임기가 5년이기 때문에 분원초등학교에서는 앞으로 2년밖에 안 남았습니다. 정년도 다가오고 있고요. 하지만 교단을 떠나는 날까지 아이들과 학교를 위해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그게 제 의무이기도 하고요.”

“예나 지금이나 교단에 처음 섰을 때의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안준철 교장. 작은 시골 학교를, 도시 학교에서는 찾기 힘든 따뜻한 감성과 현대적인 시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행복한 학교’로 만든 그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본다. 앞으로 더 많은 학교에서 더 많은 ‘안준철 교장’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 학교 도서관.
사진 : 이창주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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