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토란테 에오’의 셰프 어윤권

테이블 네 개지만 최고의 식당

크고 화려한, 저마다 최고를 자랑하는 것들이 빼곡히 들어찬 서울 청담동 거리. 그중 맛과 실력은 최고로 꼽히지만,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는 곳이 있다. 한참을 찾아야 눈에 띌 만큼 작은 까만 간판에 하얀색 펜으로 ‘리스토란테 에오(Ristorante Eo)’라고 날려 써놓은 곳. 테이블이 달랑 네 개, 하루 손님이래야 20여 명을 넘지 않는 작은 이탈리아 식당이다. 그러면서도 미식가들 사이에 최고로 꼽히는데다, 최근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 《혀》를 출간한 소설가 조경란 씨가 “요리를 배운다면 어윤권 셰프에게 배우고 싶다”고 했던 바로 그 어윤권 씨(38세)가 셰프 겸 오너인 식당이다. 어윤권 씨의 첫인상은 한동네 아는 형 같았다. 순둥이같이 생긴 얼굴이 첫 만남인데도 친근하고 푸근했다.

“제 이름을 걸고 뭔가 해보고 싶은 데다 멋있는 이름이 생각나지도 않고. 그래서 나온 이름이 ‘리스토란테 에오’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할 때 그곳 사람들이 제 성인 ‘어’를 잘 발음하지 못해 ‘에오’라고 불렀거든요. ‘어씨네 식당’을 이탈리아어로 바꾼 게 ‘리스토란테 에오’인 셈이지요.”

‘어씨네 식당’이란 이름처럼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싶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의 요리가 테이블 위에 올랐다. 샐러드 위에 올린 생선과 미디엄으로 구운 후 소스를 얹은 쇠고기 안심. 먹기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같이 예뻤다. 한입 베어 물자 말 그대로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음식. 그의 요리가 입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가 왜 최고로 꼽히는지 알았다. 그는 요리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교를 12년이나 다니는 동안 내가 커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남들 다 다니니까 학교를 다녔지, 공부도 잘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시쳇말로 개념 없이 살았습니다. 1989년이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버지 친구 분을 따라갔던 한 호텔 주방에서 제 인생 처음으로 피가 끓었습니다. ‘토닥토닥’ 식칼로 도마 두드리는 소리, ‘지글지글’ 팬 위의 고기 익는 소리, 이거다 싶었습니다. 정말 요리가 좋았습니다.”

이후 바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의 요리인생은 순탄했다. 이제까지 숨어 있던 그의 요리 재능은 사람들로부터 금방 인정을 받았다. 유학파 요리사들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유명 호텔들에서 그를 찾았고, 서울의 힐튼 호텔에 둥지를 틀었다.


자존심 회복 위해 이탈리아 유학

소위 잘나가는 요리사로 촉망받던 그는 1997년, 갑자기 이탈리아로 떠났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후 자신감을 되찾고 싶어 이탈리아행을 선택했지요. 그때 ‘서울국제요리대회’가 열렸는데, 국제대회라곤 하지만 실상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는 아니었죠. 한국인 요리사들은 한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외국에서 온 요리사들은 흔히 말하는 2군 요리사였습니다. 근데 그들이 만들어 낸 요리들은 한국인 요리사가 만든 것과는 비교가 안 됐습니다. 물론 제 요리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마치 ‘포르셰’와 ‘티코’가 한자리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주최 측에서는 마케팅 때문이었는지 한국인 요리사들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제게도 상을 주더군요.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고, 그동안 제 요리를 맛있게 먹어 주던 손님들에게 미안하고. 제대로 된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이탈리아로 떠난 후 라치오 주립학교에서 공부하고, 이탈리아어가 자유로워지자 밀라노의 포시즌 호텔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이곳에서 이탈리아 요리계의 거장 세르지오 메니를 만난다. 세르지오 메니와의 만남은 어윤권의 요리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포시즌 호텔에서 3년 동안 그와 함께 일했습니다. 그에게 배운 건 요리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휴머니즘과 정성, 그리고 스타일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손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음식은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먹는 것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것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다가가야 명품 요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2004년 한국으로 돌아온 어윤권 씨는 곧장 식당 문을 열지 않고 2년 동안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기획하는 연구겙낱傷?몰두했다. 그리고 2006년, 그의 이름을 딴 식당 ‘리스토란테 에오’를 열었다. 그가 말하는 가장 훌륭한 요리는 ‘정직한 요리’다.

좌 | 도미 요리. 우 | 아티초크와 푸아그라 구이.
“요리는 원래 전쟁터에서 발달해 왔습니다. 인간이 먹기 어려운 재료를 가지고 허기를 달랠 수 있게 한 데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선한 재료로 사람 몸에 가장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요리, 창의적인 요리, 뛰어난 테크닉으로 만든 요리도 훌륭한 요리라 평할 수 있지만 이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것은 정직한 요리입니다. 정직한 요리는 손님을 감동시킵니다. 요리사 자신을 기쁘게 만듭니다. 정직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연의 향기와 질감, 그리고 미감을 있는 그대로 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인공적인 게 들어가지 않습니다. 도시 속에 꽉 막혀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 그대로를 전해 주는 것이 요리입니다. 이런 요리가 손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정직한 요리’를 손님에게 내기 위해 가장 신선한 요리 재료를 찾아 새벽시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건 ‘리스토란테 에오’에 테이블을 단 네 개만 놓았다.

“테이블을 네 개만 둔 것은 20인 분을 넘으면 제가 요리에 집중해 최고의 정성을 기울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든 음식이지만 저 스스로 요리의 질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요리사가 자기 요리를 자랑스럽게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요리가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저는 요리사가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 내는 기계가 되는 거지요.”

그는 앞으로도 하루 스무 명 이상의 요리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손님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이자 요리사로서의 자존심을 찾고 싶었던, 이탈리아로 떠날 때 자신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어윤권 씨는 ‘리스토란테 에오’를 음식만을 파는 곳이 아닌 하나의 문화 공간이라고 했다. 그에게 식당은 때로 요리라는 그림을 내는 갤러리가 될 수 있고, 자기만의 생각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예약이 필수. 점심에는 3만 원대, 저녁에는 6만 원, 10만 원대 코스 요리가 있다.

사진 : 장성용
  • 2008년 04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0

201910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0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