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프로젝트 ‘열두 폭 병풍’으로 전시회 여는 이아립

당신은 누구인가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요

이아립. 록밴드 ‘스웨터’의 보컬, ‘열두 폭 병풍’이라는 이름의 솔로 프로젝트 앨범을 내고 있는 가수, 그래픽 디자이너, 격월간지 〈싱클레어〉의 아트 디렉터. 별개의 영역들이 그에게서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홍대 앞 한 카페, 보라색 스타킹에 납작한 흰 구두를 신고 나타난 그와 마주 앉았다. 투명하면서 깊은 눈, 머리가 양 볼을 감싼 얼굴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였다. 목소리는 낮고 허스키했다. 노래할 때 그의 목소리에 대해서 “아련하면서도 담백하다”, “한없이 친밀하다”,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알싸한 짝사랑의 느낌” 등 해석이 다양하다. 고음으로 갈수록 코맹맹이 소리가 섞인다. 그 목소리로 잔잔하게 파고든다. “사람은 저마다 하나의 우주예요. 우주의 창조자는 바로 당신이에요. 거울 속의 날 항상 믿어요”(‘we are the universe’)라고.

그의 솔로 프로젝트는 2005년 시작됐다. 첫 앨범으로 ‘반도의 끝’, 2007년 두 번째 앨범으로 ‘누군가 피워 놓은 모닥불’을 내놓았다. 마음을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음악. 그런데 앨범은 무척 불편하다. 홈페이지와 매장 한 군데에서만 판매하고, CD가 일반적인 케이스가 아닌 종이 케이스 안에 실로 고정돼 있어 보관이 어렵다. 홈페이지에서는 카드 결제도 안 된다. 작곡, 작사와 노래, 앨범 디자인과 제작, 판매까지 모두 혼자 하는 그야말로 ‘솔로 프로젝트’. 접근 경로를 이렇게 좁고 어렵게 만들어 놓았는데도 찾아와 듣는 이아립의 팬들에게는 그래서 ‘광팬’이란 이름이 따라 붙는다. 스타급 가수도 앨범을 팔기 어려운 요즘, 그의 앨범은 매번 매진된다.


‘누군가 피워 놓은 모닥불’ 앨범에는 그가 디자인한 미니 포스터, 흑백사진이 인쇄된 8장의 엽서, 미니 북이 들어 있다. 미니 북에는 페이지마다 ‘사이와 그 간격’, ‘그리고 타이밍’, ‘점을 찍다’ 등 알쏭달쏭한 글들이 씌어 있고 나머지는 여백, 각자 채우라는 뜻이란다. 앨범을 산 사람 중 “이게 뭐냐?”라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고. 그 수수께끼는 오는 4월 1일부터 한 달간 서울 성북동 ‘테이크아웃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풀어 놓는다.

“내가 살아온 궤적을 점으로 찍어 연결했더니 캥거루가 되더군요. 그걸 보고 ‘캥거루야 움직여’ 소리쳤죠.”

목이 마른 캥거루는 여러 장애를 넘어 샘을 찾아가는데, 전시회에 온 관객들에게 캥거루를 움직여 달라고 할 작정이다. 솔로 프로젝트에 ‘열두 폭 병풍’이란 이름을 붙인 것에 대해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노래를 듣고 글을 쓰는 공간에 병풍을 쳐주고 싶었다”고 한다. 자수가였던 할머니가 까만 비단 천에 비단실로 꽃과 새, 나무를 한 땀 한 땀 수놓아 자수병풍을 만들던 어릴 적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그. 개개의 공간에 그런 병풍을 쳐주고 싶었단다. 열두 폭으로 완성될 병풍에는 음악뿐 아니라 글, 이미지가 자유롭게 들어간다.


록밴드 보컬, 그래픽 디자이너, 잡지 아트 디렉터

|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앨범 재킷을 직접 디자인하는 이아립의 모습들.


어릴 적 그는 예민한 아이였다. 소설가가 된 오빠(이치은)와만 소통이 가능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북적이는 학교에서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는 아이였다. 그때부터 시를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대학 때는 ‘내 몸을 성실히 움직이는 대로 결실을 거두는’ 어부나 농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디자인학원에서 그래픽 툴을 배웠는데, 좋아하는 이미지와 글을 이리저리 배치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광고회사에 다닐 때는 일 잘한다고 “너한테 일을 맡기면 보험이야, 보험”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요즘도 그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여성영화제’ 공간 그래픽 디자인을 맡아 진행하고 있고, 2005년 한국이 주빈 국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참가할 때 디자인을 맡았다. 북 디자인도 한다. 2000년에는 친구와 함께 격월간지 〈싱클레어〉를 창간해 디자인을 해오고 있다. “당신에게 공간을 줄 테니 글이든 이미지든 마음대로 채워 보라”는 취지에서 일반인의 투고를 받아 만든다. 〈싱클레어〉 역시 틀이 없는 잡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자’는 의미에서 헤르만 헤세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인물 싱클레어를 잡지 제목으로 삼았다. 정기구독으로만 판매하던 이 잡지는 요즘 서점에서도 볼 수 있다. 그동안 그가 디자인해 온 〈싱클레어〉 표지는 홍대 앞 편집 숍 ‘I think So’에서 3월부터 전시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자신이 쓴 곡을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그는 1999년부터 록밴드 ‘스웨터’의 멤버로 활동한다. 은근히 스며드는 따뜻함, 스웨터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각자 활동하느라 한동안 뜸하던 ‘스웨터’도 올봄 새로 앨범을 내놓을 예정. “처음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어색하고 부끄러워 견디기 힘들었는데, 자주 하다 보니 익숙해지네요.”



“전자음향이 감싸는 밴드 공연과 달리 어쿠스틱 기타 하나 들고 혼자 노래를 부를 때는 무대 공포증에 사시나무 떨듯 떨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친구들 앞이나 공원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며 복잡다단한 일들을 해내는 그. 그는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음악도 여백을 추구한다. 늦게 일어나면 하루를 놓치는 것 같아 새벽 대여섯 시까지 작업을 하고도 오전 9~10시면 눈을 뜬다는 그. 그러면서도 하루 생활 중 여백을 많이 둔다. 한강 고수부지를 걷거나 공원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그 가운데 노래가 만들어진다.

나 자신에 대해 감성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이죠.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질 때도 몇 개의 단어와 문장으로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정말 정리가 돼요. 내 마음속이 되게 퍽퍽하고 메말라서 감성적인 것을 추구했구나, 싶어요.”

그는 아직도 자신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랑이라고 한다. 사람은 저마다 하나의 우주인데, 그 우주와 깊이 연결되는 느낌이라고. 항상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는 그는 “나의 연인에게 친구이자 오빠, 부모, 동생의 역할을 준다”고 한다. 성숙한 사랑을 하려면 내가 먼저 성숙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난 사람에게는 상처만 줄 뿐이었다. 그는 요리도 좋아한다. 만난 날 아침도 브로콜리와 양배추, 새우가 들어간 리조토를 만들어 먹고 왔다며 “향긋한 냄새와 함께 정말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가 꿈꾸는 미래에는 ‘사랑이 넘치는 부엌’도 있다.

“커다란 키친에서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거예요. 사람들은 둥그런 식탁에 앉아서 먹고요.”

사진 : 이창주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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