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억 원씩 23년간 장학금 내기로 약정한 한승무 경희대 교수

기부란 마음을 나누는 일

그는 기부란 꼭 돈으로 하는 것만은 아니라며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격려라도 한마디 건넨다면 그것도 기부”라고 덧붙인다.
지난 연말 경희대학교에서는 세밑 추위를 녹일 만큼 따뜻한 미담이 흘러 나왔다. 이 대학에 재직 중인 의료공학과 한승무(44세) 교수가 매 년 1억 원씩, 앞으로 23년간 제자들을 위해 장학금을 내놓겠다고 학교 측과 약정을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교수가 되기까지 가난과 싸우며 어렵게 공부했고, 아직도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선행은 더욱 화제가 되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경희대 국제캠퍼스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한 교수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큰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성직자에게조차 욕심 없이 사는 일은 끝없는 수행의 길일 터. 평범한 사람이, 그것도 부인과 여섯 살, 네 살 아들을 둔 가장이 무소유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학을 준비하던 무렵이었어요. 어떻게든 비행기표라도 마련해야겠기에 돈을 좀 빌려 보려고 백방으로 뛰어 다녔지요. 그런데 돈 얘기만 나오면 한결같이 외면하더라고요. 그때 상처를 참 많이 받았어요. 돈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면서 돈에 대한 욕심을 그때 모두 버렸습니다.”

그는 또 “돈이 없어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며 “다만 한 번에 목돈을 내놓을 재력은 안 되니 나누어서 내는 것뿐”이라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23년이라고 한정한 것은 그가 교수 정년을 맞는 만 65세까지의 기간. 물론 그 후에도 기부는 계속할 작정이다. 대대적으로 알려진 것이 이번이 처음일 뿐, 사실 그는 그동안 꾸준히 기부활동을 해왔다. 형편이 어려운 친인척들의 학비를 도맡았고, 제자 중에서도 등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있으면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기부를 생활화하며 살고 있기는 가족도 마찬가지. 그가 이번 일을 결정하게 된 것은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동의한 부인 김정희 씨 덕분이었다. 여섯 살짜리 아들 역시 어려운 이웃을 소개하며 시청자들의 후원을 요청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어김없이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ARS 번호를 꾹꾹 누른다.

“매년 1억 원씩을 어떻게 마련해서 낼 것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학교에서 받는 교수 연봉과 의료기기 개발과 관련한 특허 수수료를 합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웃음)”

의료공학과 교수인 그는 의료용 장비 개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어 현재 1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지만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기기의 개발이 완료되면 더 큰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의료공학은 쉽게 말해 CT나 MRI 같은 장비를 개발하는 분야입니다. 제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풍, 치매, 뇌출혈, 뇌경색 등 뇌질환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진단 검사기술입니다. 우리나라가 뇌졸중 사망률이 OECD 국가 중에서 헝가리 다음으로 높은데도 뇌질환을 예방 차원에서 저렴하게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누구나 부담 없이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해 전 세계에 보급하면 이 병들로 인해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50대 중반 한창 나이에 뇌출혈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미국 유학 중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했지만 이미 돌아가신 뒤라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는 그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많이 격려해 주신 분이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만큼 그는 교수가 되기까지 참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경북 영천의 시골 마을에서 2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경북기계공고, 영남대 기계공학과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미국 유학, 경희대 교수로 이어지는 삶의 여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소작농으로 여섯 식구가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 밥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없었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짐을 덜어 드리기 위해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공고를 택해야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기숙사 완공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자취를 하게 되어 어린 나이에 학교를 다니며 생활비까지 벌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해부용 시신 닦는 아르바이트하며 미국 유학

그 와중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그는 고 3 무렵,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너희 형편에 무슨 대학이냐?’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도 받았지만 그 시선들을 모두 무시하고 그는 영남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겨울이면 길에서 군밤이나 귤을 팔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공부에 대한 열정은 더 강해졌다. 이제 어지간한 어려움쯤은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그는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겨우 마련한 한 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가 당시 그가 들고 떠난 돈의 전부였다.

“미국에서 7년을 지냈는데 그때가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유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많지 않아 의대생들의 해부용으로 기증된 시신 닦는 일을 했어요. 그 일을 하는 동안은 자다가도 깜짝 놀라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고기를 잘 못 먹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희망의 끈만큼은 절대 놓지 않았다”고 한다. 사방이 다 막혀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때가 많았지만 잘될 것이라는 희망과 열정, 믿음을 가지고 견디니 마침내 길이 열리더라는 것. 요즘 학생들의 나약함을 걱정하는 그는 강단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주 들려준다. 학생들에게 권위적인 교수이기보다 인생의 선배로서 길잡이가 되고 싶어하는 그는 학생들과도 격의 없이 어울린다. 수시로 막걸리잔을 기울이는가 하면, 함께 밥을 먹고, 지금은 대학 캠퍼스에서 사라진 ‘종강파티’도 꼬박꼬박 챙긴다. 덕분에 그의 연구실에 진로, 이성, 취업 문제 등을 상담하기 위해 찾아오는 학생들이 많다. 그가 그동안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때 수세미를 판 적이 있어요. 밤에 담장 안으로 편지와 수세미를 같이 던져 놓고 다음날 아침 일찍 걷으러 다니면서 돈을 받았죠. 물론 대부분 그냥 돌려주었지만 몇몇 분들은 돈을 꼭 쥐어 주면서 열심히 살라는 말을 해주더라고요. 그게 얼마나 고맙던지, 나중에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힘이 되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정말 힘들 때는 말 한마디 없이 어깨만 두들겨 주어도 눈물이 나는 법이거든요.”

교수실을 찾은 제자들과.
그는 기부란 꼭 돈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며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격려라도 한마디 건넨다면 그것도 기부”라고 덧붙인다.

“제 과거(?)가 알려진 뒤로 ‘교수님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이메일이 많이 와요. 처음에는 자랑스럽지도 않은 옛날 얘기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해야 하나, 하는 부담이 있었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저를 거울 삼아 도전정신을 기르고, 희망과 열정을 품는다면 그건 장학금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기부들이 모이면 세상은 훨씬 더 따뜻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요?”

사진 : 신규철
  • 200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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