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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부부가 산골에서 부치는 편지 (11) | 나뭇잎, 나뭇잎

글 : 이상희 

그림 : 원재길
산골짜기엔 나날이 단풍 빛이 짙어 가고 뜰에는 국화 향기가 그득합니다. 산길 오르내리고 뜰 서성일 때마다 터질 듯 벅찬 마음이 외마디 감탄을 토하곤 하지요. 이따금 우리 집 개들이 먼산바라기를 한 채 띄엄띄엄 짖는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자연이 아니고서는 이토록 막대한 아름다움을 이처럼 한순간에 펼쳐 보일 수 없겠지요. 나무가 이토록 고운 잎새를 떨어뜨리는 것도, 떨어진 나뭇잎이 이런저런 모양으로 땅 위에 놓인 것도, 몇 가지 꽃이 하필 찬 서리 속에 피어나 그윽이 향기 뿜는 것도, 풀이란 풀이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시들어 누운 것도, 모두 자연의 뜻 깊은 처사겠지요. 그런저런 생각이, 이 일도 고달프다 저 일도 힘겹다, 아우성치던 나를 어느새 두 손 모아 잡게 하고 수굿이 마음 숙이게 합니다. 저만치서 따로따로 떨어져 말없이 거닐고 있는 남편도 딸아이도 비슷한 마음일 게 틀림없습니다. 산골짜기의 가을은 경배하고 또 경배하는 중세적 삶을 살게 하니까요.


지난 주말에는 떨어진 단풍 나뭇잎들을 곰곰 들여다보았습니다. 그건 햇빛과 바람과 시간이 한 장 한 장 다 다르게 빚어 낸 예술품이었지요. 창의성과 자기 존재에 대한 표현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예술을 주창하고 실천하는 슈타이너 학교에서 나뭇잎 하나로 일 년을 공부한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새삼 고개 끄덕였습니다. 아직 나뭇 가지에 매달려 살고 있는 나뭇잎이며, 지금 막 떨어지는 나뭇잎이며, 떨어져서 뒹구는 나뭇잎이며, 고르고 고른 자리인 듯 맞춤하게 붙박인 나뭇잎을 일일이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저 목줄을 풀고 뛰어다니고만 싶은 강아지 호돌이가 나의 무위(無爲)를 짖어 댔습니다. 호돌이도 산골짜기의 가을을 좀 더 살고 나면 형과 어미 개들처럼 띄엄띄엄, 묵언 같은 쉼표를 부르짖게 되겠지요.

산골짜기의 가을은 말도 줄이고 글도 줄이라 합니다. 어느 때보다 간절히 시를 찾게도 하지요. 슈타이너 학교에서 아침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교사와 학생이 함께 암송한다는 시를 찾아 부칩니다.

나는 세상을 바라본다
그 안에는 태양이 비치고
그 안에는 별들이 빛나며
그 안에는 돌들이 놓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식물들이 생기롭게 자라고
동물들이 사이좋게 거닐고
그리고 바로 그 안에
생명을 지닌 인간이 살고 있다


나는 영혼을 바라본다
그 안에는 빛나는 신의 정신,
신의 정신은
태양과 영혼의 빛 속에서
세상 공간에서
저기 저 바깥에서
그리고 우리 영혼의 깊은 내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러한 신의 정신에
나를 향할 수 있기를,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힘과 축복이
나의 깊은 내부에서 자라나기를
원재길ㆍ이상희씨 부부는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 산골에서 고등학생 딸 새록과 살면서 시와 그림책을 씁니다.
  •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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