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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문 화랑 ‘김영섭 화랑’ 김영섭 대표

우리 사진작가들을 세계무대에 알리려 달리고 달릴 것입니다

“순박한 꽃 찔레꽃… 밤새워 울었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날아갔지….”

장사익의 이 노래‘찔레꽃’을 들을 때마다 ‘찔레꽃처럼 우는 한 남자’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 울음은 좌절이 아니라, 처절한 열정에서 나오는 것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진전문 화랑 ‘김영섭 화랑’의 김영섭 관장을 만났을 때 문득 그 상상 속의 남자와 퍽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바스티앙 살가도, 브랏사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빌 브란트, 로베르 두아노, 안드레 케르테츠, 로버트 프랭크, 게리 위노그란드 등 세계 사진사의 주요 인물들의 작품을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김영섭 관장 덕분이다. 사진작가, 전시기획자에서 사진전문 화랑 대표까지, 그를 여기까지 밀고 온 힘은 바로 ‘찔레꽃처럼 춤추는’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1980년 5월 18일, 그는 광주에 있었다. 5월 25일 형의 결혼식을 앞두고 일가친척들이 모일 때였다. 어른들이 “6?5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는 피로 얼룩진 현장. 그의 눈은 카메라 렌즈가 되어 현장을 기록하면서 ‘지금 만약 내게 카메라가 있다면’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그는 그날 이후 사진부에 들어갔고, 대학 사진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때 다른 지역 출신 친구들과 광주에 내려와 사진을 함께 찍은 적이 있었어요. 그 친구들은 깃발이라든지 묘지를 찍는데, 저는 그냥 사람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했습니다. 그 시절을 견디는 사람들의 불안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담고 싶었어요. 그들의 마음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브라질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인 살가도를 존경하는 이유 역시‘그의 사진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안쓰러움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어서’다. “현장 속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하나가 될 때 피사체가 제대로 보인다”는 살가도의 사진론은 김영섭 관장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6년 그는 비행기값과 한 학기 등록금만 들고 일본 오사카로 향했다. 미국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오사카 예술대학에 등록했는데, 학비를 빼면 무일푼이었어요. 당시 오사카 근교도시인 고베에는 건설 붐이 한창 일고 있었어요. 새벽 5시면 일어나 건축 공사장에서 일을 했는데 땀이 어찌나 쏟아지던지 소금 한 줌 먹고, 물 한 모금 마시고를 반복해야 했어요.”

그렇게 모은 돈을 들고 도쿄로 향했다. 오사카에 온 지 3개월 만이었다. 사진 공부를 하려면 아무래도 도쿄로 가는 게 나을 것이라는 선배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쿄공예대학 사진학과에 입학한다. 그 후로도 그릇 닦기, 슬롯머신 아르바이트, 술집 웨이터 등 갖가지 일을 하면서 공부해야 했다.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온갖 고난을 헤쳐 나온 그는 다시 사진전시기획자, 화랑 대표로 방향을 전환했다.


‘작가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환경 만들자’

“화순 운주사에 갔을 때 누워 있는 석불들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어요. 이래저래 부침이 많은 저를 보는 듯했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는 석가처럼 깨달음에 이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창 누드사진에 빠져 있던 그는 머리를 삭발하고 옷을 벗은 후 운주사의 석불들과 함께 풀밭에 누웠다. 그 모습을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삼성포토갤러리(1996년)에서 ‘해탈’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했다. 그 후 광주 남도미술관에서 순회전시를 하려는데, 불교계에서 난리가 났다. ‘김영섭을 때려 죽여야 한다’는 격한 말까지 나오고, 경찰이 그의 신변보호를 위해 형사를 붙여 줄 정도였다. 그의 나이 34세 때의 일이다. 스님들이 압수해 간 사진은 지금도 행방이 묘연하다.

〈아트 베이징 2007〉에서.
“화순경찰서로 압송돼 재판까지 받았어요. 결국 전시를 해도 좋다는 협상을 받아 냈지만 그때는 이미 시달릴 대로 시달린 때라 정신이 황폐해졌죠. 한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게 무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를 계기로 작가의 길을 포기하는 대신 작가들이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자는 쪽으로 길을 정했죠.”

세계 사진사에 기록된 작가들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컬렉션하는 등 준비기간을 거쳐 2003년 사진전문 화랑을 연 그는 이후 굵직굵직한 사진전을 열어 우리나라에 사진문화를 소개해왔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만 레이 특별전 및 세계사진 역사전>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

그의 관심은 우리나라에 외국의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해 세계무대에 올리는 게 그의 주된 관심사다. 이를 위해서라면 그동안 간직해 온 세계적인 작가들의 값비싼 오리지널 프린트도 경매시장에 내놓을 생각이다. 지난 9월 그는 베이징의 아트 페어인 <아트 베이징 2007>에 한국 작가들과 함께 갔다. 이 아트 페어에 갯벌사진으로 유명한 양양금, 자작나무를 통해 한국적 한을 표현하는 채상복, 작고한 작가 백남준을 지속적으로 촬영해 온 임영균, 현대판 산수유람기라 평가받고 있는 임택, 안개와 소나무 숲으로 한국인의 삶을 표현한 구주환 씨가 참여한 것. 베이징 아트 페어가 끝나면 뉴욕의 로 건너갈 예정이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을 다니며 세계 사진시장의 트렌드를 읽어 왔다는 그는 “지금 세계 미술시장은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특히 세계인의 눈이 몰리고 있다는 것. 그는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려면 작가들을 키우는 폭넓은 컬렉터층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서울 관훈동에 사진전문 화랑을 만들어 성공시킨 그의 꿈은 강원도 평창에 ‘사진미술관’을 짓는 것이다. 그곳에 살가도 작품의 상설 전시관도 만들 생각.

“프랑스 아를르 사진축제의 경우 그 지역문화와 잘 연계되어 있어요. 아비뇽 축제가 열리는 아비뇽이 바로 가까이에 있지요. 평창도 봉평의 이효석 생가나 허브마을, 용평스키장, 펜션 같은 숙박시설까지 갖춰져 있어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그가 생각하는 벤치마킹 모델은 도쿄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기요사또 포토뮤지엄이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열정적으로 컬렉션해 전시하는 이 미술관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지만 항상 사람들로 넘쳐 난다. 근처의 온천과 호텔 등 관광 인프라가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진가 살가도의 전시회를 개최하면서‘절망에서 희망으로’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제목은 바로 그의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스스로에 대해 그는 “마라톤 선수로 치자면 저는 42.195km를 달려 결승점에 도달하고도 계속 달리는 이봉주 선수에 가깝습니다. 저도 계속 달려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언제나 꿈을 꾸는 그는 때로는 넘어지면서도 달리고 또 달린다. 한국의 사진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계속 달릴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진 : 장성용
  •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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