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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동 ‘북어국집’ 대표 진광삼

아버지의 북엇국 맛, 대를 이었어요

점심 시간이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샐러리맨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무교동 뒷골목. 각양각색의 맛집들이 오밀조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이곳에서 ‘북어국집’ 찾기는 흰콩 속에서 검은콩 골라내기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한눈에 대기 손님 줄이 가장 긴 곳을 찾으면 되기 때문. 안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은 지치거나 힘든 기색 없이 상냥하고 친절하기 이를 데 없다. 밥이나 국물 추가는 무료이니 얼마든지 더 주문하라는 여유까지 부린다.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이 이 집의 북엇국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다. 속 풀이에도 그만이지만 맛이 탁월하다는 것. 하루 세 끼를 이 집 북엇국으로 해결할 때도 있다는 근처 보험회사의 한 직원은 “여기처럼 맛있는 북엇국은 팔도 어디에서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이다. 국물이 담백하고 시원하면서도 고소하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쌀뜨물처럼 희뿌연 국물 맛이 예사롭지 않다. 찬으로 나오는 부추김치와 겉절이, 오이짠지 등도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음식 맛도 좋은데 직원들이 친절하기까지 하니 장사가 잘될 수밖에 없다. 홀에서 서빙하는 직원에 따르면 한 그릇에 5000원 하는 북엇국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600그릇. 추석과 설 연휴만 빼고 연중무휴라고 하니 어림잡아 연 매출이 10여억 원은 될 듯싶다. 사장 포함 총 직원 13명에 66석 규모의 식당으로서는 적지 않은 매출이다.

취재 중 일본인들이 촬영장비를 들고 들어왔다. 관광 가이드 책을 내는 일본 출판사가 개정판을 만들기 위해 왔다고. 북엇국을 먹지 않던 일본인들도 이 집 국물 맛에 반해 한국관광 가이드 책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한다.

맛의 비밀과 성공 노하우가 궁금해 사장을 만났다. 제법 지긋한 나이의 주인을 상상했는데, 뜻밖에도 30대 중반의 젊은 사장이 기자를 맞았다. 그것도 직원들 속에 섞여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저희는 사장 직원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한식구라는 생각으로 똑같이 일합니다. 아버님 때부터 그렇게 해왔어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올해로 13년째 식당을 지키고 있다는 진광삼 사장(37세).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대기업에 다니던 그는 1995년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식당을 맡았다고 한다.

“요리사였던 아버님이 1968년부터 꾸려 온 식당이에요. 아버지의 인생이 담겨 있는 곳이라 형제 중 누군가가 물려받아야 할 것 같아 제가 나섰죠.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아 다니던 직장을 별 고민 없이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3남1녀 중 막내였지만 하루 3시간씩 자고 일하시던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봤기에 처음부터 고생할 각오를 단단히 했다. 사장 아들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주방 보조로 들어가 설거지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워 나갔다. 이 무렵에는 그도 하루 4시간씩밖에 자지 못했다.

“1년 8개월 동안 주방장 눈치 보며 주방 일을 익혔어요. 저희 집 국물 맛의 비밀인 육수 만드는 법도 전수 받았죠. 육수는 연탄 화덕이 가스 화덕으로 바뀌었을 뿐 아버님이 하시던 방식 그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주방 고친 후 달라진 맛 되찾느라 고생

점심 시간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
이 집 북엇국의 육수는 하루 전 사골을 12시간 뭉근한 불에 끓였다 찬물에 식혀 섭씨 5℃에 보관하며 12시간의 숙성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중간중간 사골 특유의 잡 냄새를 없애기 위해 불린 멥쌀을 갈아 넣고, 무를 썰어 넣는다. 그의 아버지 진인범 씨(69세)는 불 조절을 하기 위해 매일 밤 연탄 화덕 앞을 지키다 부뚜막에서 잠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느라 간장 해독에 좋다는 북엇국을 팔면서 정작 본인의 간은 돌보지 못해 병을 얻었다.

“간에 가장 나쁜 것은 술보다 과로예요. 때문에 간이 나쁜 분들은 북엇국 해장보다 우선 푹 쉬는 게 중요합니다. 저희 아버님처럼 쓰러지시기 전에요.”

그의 아버지는 고향 충주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무교동 친구들이 그리워 서울에 올라올 때면 아들이 만든 북엇국을 며칠 분씩 포장해 간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처럼 간이 좋지 않은 분들을 고려해 하루 전 끓인 육수에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한 두부와 달걀을 넣고 다시 1시간 20분쯤 더 끓인다. 북어 손질할 때 따로 떼어 놓은 대가리와 꼬리를 같이 넣고 끓이는 것도 특징. 이걸 넣어야 북어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데, 대가리 부분은 너무 오래 끓일 경우 쓴맛이 나기 때문에 적당한 때에 건져 내야 한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북어 살은 맨 나중에 넣는다.

“북어는 강원도 고성 덕장에서 주문 생산 방식으로 공급받고 있습니다. 요즘은 북어가 부족해 황태도 약간 섞는데, 북엇국에는 바짝 말린 것보다는 조금 덜 말린 게 육질이 좋아 특별히 신경을 쓰고 있죠. 저희가 사용하는 북어는 한우 값보다 비싸요.”

이 집의 북어 소비량은 연 8만~10만 마리 정도. 신선도를 위해 3일분씩 덕장에서 가져와 냉장고에 저장해 놓고 사용한다고 한다. 북어 역시 하루 전에 손질해 놓는데, 손작두로 썰어 손으로 찢는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기계로 썰면 북어가 골병이 들어 맛이 없다는 것. 재료 손질에서부터 맛내기까지 아버지의 레서피를 철저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제가 맡은 후 한 일은 직원들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현대식으로 재건축하고, 주방에 에어컨을 설치한 것뿐이에요. 이 과정에서 ‘주방은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는 업계의 철칙을 어겨 고생했지요.”

북엇국의 달인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는 주방 식구들과 함께.
아버지는 이곳에 있던 작은 식당 요리사로 일을 시작하셨다. 그 후 집주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북엇국집을 열었고, 그 신의를 저버리지 않으려 꼬박꼬박 월세를 내며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한옥을 2층 벽돌 건물로 재건축해 1층은 식당, 2층은 직원 휴게실과 수면실, 샤워실 등 직원 복지 공간으로 만들었다.그런데 주방까지 현대화한 것이 문제였다. 주방의 온도와 환경이 달라지면서 북엇국 맛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식당의 생명인 맛이 달라졌으니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가 정착해 놓은 옛 맛을 살려내기 위해 열흘 동안 밤잠도 설쳐 가며 고민하고 연구했다고 한다.

“국물 맛이 온도에 민감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정도인지는 몰랐어요. 그렇다고 예전처럼 연탄 화덕을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가스 화덕을 고안해 냈습니다. 화덕 속에 돌멩이를 넣어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방식이죠. 나름대로 기계공학을 전공한 덕을 봤습니다.”

아버지도 흡족해할 만큼 맛을 복원한 후에는 직원들 복지에 더 많은 신경을 썼다. 우선 문 여는 시간을 새벽 4시에서 아침 7시로 조정했고, 직원을 더 채용해 근무 시간을 줄였다.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는 경영 이론을 따른 것이다. 예상대로 서비스 질이 더욱 좋아졌다.

“내년부터는 주 5일 근무제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손님이 많은데 2층까지 식당 공간으로 쓰라고 하는 손님도 있지만, 그곳은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니 앞으로도 손댈 생각이 없습니다.”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키워 보라는 이도 적지 않다. 젊은 만큼 그도 욕심이 없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계획이 없다고 한다. 북엇국은 손이 많이 가는 데다 온도에 민감한 음식이라 계량화하기 어렵다는 것. 가맹점을 하고 싶다는 이들에게 맛의 비밀을 모두 공개했지만, 똑같은 맛을 내는 데는 대부분 실패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70여 명의 요리사들이 방문해 북엇국 맛을 내는 비결을 배우고 갔지만 아무도 이를 복원하지 못했다는 것.

그는 현재 형인 진광진 사장(39세)과 공동 대표로 무교동 ‘북어국집’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LG에 근무하던 진광진 사장은 1998년 식당에 합류해 동생과 교대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의 손맛을 이어 가는 젊은 형제의 정성과 열정이 이 집 북엇국을 더욱 맛있게 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사진 : 이창주
  • 200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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