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헌 ‘외갓집 체험마을’ 촌장

“우리 마을을 도시인들의 외갓집으로 만들었죠”

양평과 홍천의 경계지역인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 1리. 총 35가구가 사는 이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외갓집 체험마을’에 지난 한 해 다녀간 사람이 6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대학생 MT는 사절하는 등 방문객을 가려 받는데도 예약이 넘치는 ‘최고의 체험마을’로 꼽힌다. 이곳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처음 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는 선뜻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사방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지형에 마을을 가로질러 하천이 흐르는 게 눈에 띄는 정도? 그렇다고 경치가 대단한 것도, 시설이 잘 갖춰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린이집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너무나 즐거워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황토로 벽돌을 만들어 담을 쌓거나 황토물이 가득 찬 머드탕에서 뒹굴며 놀다 하천에서 대나무로 만든 뗏목을 탔다. 자고로 흙놀이, 물놀이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또 있던가. 그런데 어른들도 아이들과 똑같이 신이 났다.

이곳에는 먹을 것도 흔전만전이다. 그런데 재료를 직접 채취해 만들어 먹어야 한다. 냇가에서 송어를 잡아 회를 뜨고, 감자밭에서 감자를 캔 후 갈아서 감자전을 부친다. 감자전은 숯불에 솥뚜껑을 뒤집어 올려놓고 부치는 옛날식 그대로다. 찹쌀을 쪄서 인절미를 해먹고, 산에서 난 도토리로 만든 가루로 도토리묵도 쑨다. 계절에 따라 고구마를 캐거나 옥수수를 따서 가마솥에 쪄먹고, 산에서 나물을 캐다 산나물 비빔밥을 해먹기도 한다. 토종닭들이 품고 있는 알을 뺏어 오거나 수박을 몰래 따오는 ‘알서리’ ‘수박서리’도 있다. 그 모든 게 놀이다. ‘수박서리’를 하다 들키면 산으로 도망가는 사람까지 있다고 한다.

모내기, 감자나 고구마 캐기 등 농사일을 엔터테인먼트 ‘체험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외갓집 체험마을’의 김주헌 촌장(37세). 그는 스스로 ‘봉이 김선달’을 자처한다. 농촌의 일상을 도시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으로 만들었으니 맞는 표현 같다. 그는 “친구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면서 노인들만 사는 마을로 변해 갔지만, 나는 이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전쟁 통에 월남한 할아버지가 식솔을 이끌고 자리 잡은 곳이 이 마을.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기반을 마련한 아버지는 장손인 그가 공무원이나 교사 같은 안정된 직장을 얻기 바랐다. 그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자 “공부해서 대학 가라”고 반대했다. 그러자 그는 “이대로 놀죠” 하고는 밤에 횃불을 들고 나가 고기를 잡아 매운탕 수제비를 끓여 먹는 등 신나게 놀았다. 결국 아버지가 후퇴, 버섯 농사를 짓게 해줬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경동시장에 버섯을 내다 팔았는데, 그는 가락시장 경매에 물건을 넣겠다고 했다. 상황을 파악하니 버섯이 많이 나오는 때와 적게 나오는 때의 가격차가 컸다. 비가 부슬부슬 올 때 버섯이 잘되는데, 그는 그때 일부러 버섯을 키우지 않았다. 대신 남들이 안 할 때 버섯을 내놓아 비싼 값에 팔았다. 농사를 지어도 한 해 5000만 원은 벌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아버지가 누에를 키우던 잠실에 송어 횟집을 차렸다. 대로에서 떨어진 곳이지만, 음식이 좋으면 일부러라도 찾아온다는 신념에서였다. 횟집은 한 시간씩 기다려야 자리가 나고, 연말에는 예약을 잡기 위해 로비를 하는 손님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주변에서 기르는 채소를 직접 따오게 했더니 손님들이 좋아했다. ‘농촌체험’이 상품이 되겠다는 감이 왔다. 1994년과 2001년 일본의 농촌마을을 방문한 것도 도움이 됐다. 일본 농촌마을에서는 민박할 때 기모노를 입은 채 무릎 꿇고 앉아 전통밥상을 대접했다. 옛것을 지키고 있는 농촌의 일상이 도시인들에게는 휴식이자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일도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2003년 ‘외갓집 체험마을’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마을 어른들의 협조를 얻기도 쉽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숙박비를 받고 서울 사람들에게 방을 내주자니 괜히 신경만 쓰이고 번거롭다고 했다. 마을을 꾸민다며 집에 유실수를 심으라는 등 일일이 간섭하는 것도 싫어했다. 그러나 입소문이 나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점차 태도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꾸준히 손님이 들어오면 농촌으로서는 큰 돈을 만지는 거니까요. 요즘은 화장실을 고친다, 새로 도배를 한다 하면서 집을 꾸미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외갓집 체험마을 안에서는 돈이 오가지 않는다. 숙박을 하지 않는 당일 프로그램은 1인당 3만 원, 1박 2일은 5만 원에 모든 체험과 먹을거리가 제공되는데 현장이 아닌 마을에 들어오기 전이나 후에 결제하게 한다는 것. 돈이 오가면 외갓집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그곳에 있는 동안 먹을거리는 지천이었다. 금방 밭에서 캐내 간 감자로 만든 감자전이 고소한 냄새를 피우고, 콩고물을 입힌 인절미가 졸깃했다. 양평 도축장에서 가져왔다는 돼지고기는 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우니 맛이 그만이었다. 곁들여진 막걸리는 누룽지 냄새가 진했다. 곁에 있던 김 촌장이 “맛있지요? 선배가 하는 양조장에서 가져온 거예요. 평범한 것은 안 드립니다” 하면서 자랑한다. 체험마을 식당에서는 솜씨 좋은 마을 어머니들이 양평에서 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드는데, 연봉 3000만 원 이상인 분들도 많다고 한다. 마을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바로 식당에서 소비하는 데다, 마을 어른들에게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생긴 셈이다. 그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신이 나 있었다. 물속에 들어가 아이들이 뗏목 타는 것을 도와주고, 토마토와 고추가 어떻게 자라는지도 설명한다. 그에게는 마을 곳곳이 도시인에게 줄 ‘체험거리’로 그득했다.

“보세요. 이게 뽕잎이거든요. 이걸로 뽕잎차를 만들거나 수제비를 만들고, 깻잎처럼 뽕잎김치도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열매인 오디는 술을 담그죠.”

뽕잎 하나 가지고 체험 프로그램을 수두룩이 만들어 낼 것 같다. 뽕잎에 대해 설명해 주고, 뽕잎을 따서 음식을 만들고 술을 담그고 하면서…. 일단 해본 후 반응이 좋은 프로그램은 계속 살아남고, 아니면 금방 없앤다고 한다. 그 가운데 프로그램이 다양화하면서 발전해 왔다. 주부들에게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 줄기를 거두게 했더니(농사일 중 하나인) “요즘 이건 시장에서 구하기도 어렵다”며 좋아하더라고 한다. 김장철에는 이 마을에서 키운 유기농 배추로 김장을 담그면서 편육과 인절미도 해먹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프로그램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삼촌’ ‘이모’들이다. 농촌에서 자란 대학생들이 ‘삼촌’ ‘이모’를 맡아 농사나 농촌생활을 소개하며 이곳에 온 사람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러면서 밝고 활기차게 분위기를 돋워 세계적인 리조트 체인인 클럽메드의 GO(gentle organizer)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진짜 외갓집처럼 여러 번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 계절마다 체험거리가 바뀌기 때문. 겨울에는 얼어붙은 강에서 얼음 썰매를 타고 지게 지고 겨울 산으로 들어가 해온 나무로 장작불을 피워 삼겹살과 밤,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박쥐들이 겨울잠을 자는 동굴 탐험에 나서기도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대학 가라고 권할 때는 딴전을 피우던 김 촌장은 요즘 뒤늦게 상지대 관광학부에 입학해 촌장과 농부, 학생의 역할을 모두 소화하고 있다. 우렁이를 이용한 유기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데, 그게 또 체험 장소가 되고 있다. ‘외갓집 체험마을’은 비수기가 따로 없고 몇 개월 전부터 예약이 찰 정도로 성황. 이제는 양보다 질을 어떻게 더 높일까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농촌에 남아 그 속에서 ‘보물’을 캐낸 김주헌 촌장. 어릴 적 놀이를 도시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상품으로 만들어 낸 그에게서 “잘 노는 게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것도 ‘즐겨라’다.

사진 : 김선아
  • 2007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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