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감별하는 품명가 손성구

500g에 1억원짜리 차도 있어요

서울 양재동 주택가.‘중국차 즐기기’란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인 상호 아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수백 종의 중국차와 다기들 그리고 차 특유의 맑은 향이 단박에 눈과 코를 사로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건넸다. 중국 광둥성 조주지방의 봉황산에서 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혀끝에 단맛이 느껴지다 뱃속으로 전해졌다. 떫지 않고 향긋하니 차 맛이 그만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드셔도 됩니다. 흔히 다도(茶道)를 엄격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일본의 영향입니다. 다반사(茶飯事)라는 말 아시죠? 밥 먹고 차 마시듯이 수시로 빈번하게라는 뜻입니다. 편안하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즐기는 게 우리식 다도죠. 무엇보다 일단 차를 즐겨야 합니다. 그러려면 차가 맛있어야 하구요. 맛있는 차는 무엇보다 자연에 가까운 차입니다.”

이곳의 주인 손성구(45세) 씨는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품명가다. 품명(品茗)이란 차(茶)의 맛을 시음하고 감별하는 것을 말한다. 와인을 감별하는 사람이 소믈리에라면 차를 감별하는 사람은 품명가라 부른다. 품명의 첫 단계는 차에 비료와 농약이 들어갔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최근 들어 차를 대량생산하면서 비료와 농약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료가 들어간 차는 색깔이 투명하고 맛이 텁텁하거나 미끄덩거린다”고 설명한다. 농약이 들어가면 목이 따끔거리거나 아리아리하다는 것. 품명가는 이 밖에도 차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됐는지, 해발 몇 미터 높이에서 자랐는지, 차를 수확하던 해에 비가 얼마나 왔는지,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자란 잎인지, 차를 익힐 때 적당하게 덖었는지, 전문가가 덖었는지 아마추어가 덖었는지 등등을 차 한 모금 삼킨 순간에 간파해야 한다. 차 한 잔에 그 차의 출신성분과 족보 그리고 장단점까지 꿰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품명은 가히 예술적인 경지라 할 만하다. 품명가라면 미세한 맛의 차이를 감별해 내는 데 방해가 되는 술, 담배를 멀리해야 함은 물론이다. 손 씨는 술, 담배는 물론 짜고 매운 음식도 먹지 않는다. 조미료가 들어가기 쉬운 식당 밥도 피하고 주로 유기농 잡곡과 야채 샐러드로 식사를 한다. 그는 “중학교 때 신경성 위장병을 앓은 후 담백한 음식만 먹다보니 몸이 더 예민해졌다”고 웃는다.

“떫다고 다 나쁜 맛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잘 만든 차는 떫은맛이 없습니다. 혀가 예민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좋은 차를 쉽게 구분하는 방법 중 하나가 차를 식혀서 마셔보는 겁니다. 혀끝에 있는 미뢰라는 감각기관이 뜨거울 때는 맛을 잘 못 느끼거든요. 국도 뜨거울 때는 짠지 싱거운지 모르잖아요? 좋은 차는 식어도 맛이 흩어지지 않습니다.”

고려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한 그는 대학 1학년 때인 1982년 처음 차와 인연을 맺었다. 대만에 유학 중이던 선배들이 선물로 가져온 중국차를 마시곤 그 맛에 반했다. 하루에 두세 주전자씩 차를 마실 정도였다. 5년간 이렇게 차를 마시다가, 그다음 10년은 적극적으로 차를 쫓아다녔다. 좋은 차가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어디든 갔고, 차차 몸의 경락이 열리면서 차가 가진 독특한 기운이 감지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차에 대한 이론 공부도 했다. 전문가의 책을 보면서 몸으로 느낀 것을 이론적으로 점검해 갔다.


중국은 현재 품명가를 등급별로 나누어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최근 4년제 대학에 차 관련 학과가 하나 둘 생기는 추세다.

“중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북경 외국어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를 했지만 공부가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귀국해서 아내와 함께 양수리에서 카페를 했는데, 그게 논문 쓰기보다 더 어려웠어요. ‘앞으로는 마니아의 시대다. 내가 끝까지 할 수 있는 한 분야를 정하자’ 생각했죠.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게 뭘까’고민한 끝에 찾은 답이 바로 ‘차’였어요.”


명품 차 브랜드 ‘방외지차(方外之茶) 만들 것

손 씨는 2002년 겨울 중국차 즐기기 사이트를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티와 차를 소개하겠다는 뜻에서 사이트 주소를 티앤차(www.tean- cha.com)로 정했다.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회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홈페이지 공식회원만 2천 명. 하루 평균 접속자가 100명이 넘는다. 1년에 네다섯 차례 기초반 강의를 여는데 해외에서 일부러 찾아와 강의를 듣고 가는 회원까지 있다. 회원들의 성화로 지난해 가을 오프라인 숍도 열었다. 요즘 그의 꿈은 명품 차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다.

“제가 만든 차에 방외지차(方外之茶)라는 이름을 붙일 생각입니다. 사람이 사는 틀을 방(方)이라고 합니다. 흔히 일반적인 틀을 벗어나서 사는 사람을 일컬어 방외지사(方外之士)라고 하죠. 제 차 역시 일반적인 차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요즘 대부분 차가 비료, 농약에 착향 처리까지 하는데, 제 차는 그것에서 벗어난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차라는 것이지요.”

그는 차를 생산하더라도 차 밭을 사지는 않을 생각이다. 명품 차는 무엇보다 선별이 중요하기 때문. 작황이 좋은 해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해도 있는데 자기 소유의 차 밭이 있으면 품질 고하를 떠나 모두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차 500g이 우리나라 돈으로 3000원부터 1억 원까지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시중에서 거래되는 고가품은 수백만 원대.

“중국 사람들은 처음부터 극상품을 내놓지 않아요. 품질이 낮은 상품을 내놓고 상대의 반응을 살핍니다. 차 맛을 제대로 아는지 시험하는 것이지요. 하수라고 판단되면 적당한 선에서 거래를 하고, 좀 아는 것 같으면 차츰 좋은 상품을 보여 주다가 마지막에 극상품을 내놓습니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거래되니 극상품이 시장에 나오는 일은 별로 없지요.”

그는 3개월 전 극상품의 보이차를 구해 달라는 지인의 부탁을 받고 수차례 중국에 가서 뒤졌지만 아직도 구하지 못했다고 귀띔한다. 그는 자신이 알아주는 품명가가 되기까지 아내의 내조가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남자가 돈 안 벌고 차만 마시러 돌아다니고 골동품 보고 도자기 보러 다니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저보다도 아내가 어려운 시기를 이겨 내느라 힘들었습니다.”

대학에서 한문학을 전공한 그의 아내는 다행히 그와 취미가 같다. 손 씨가 품명가의 길을 가는 것을 말리기보다 오히려 응원을 보냈다니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바로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사진 : 이규열
  • 2007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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