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곤 대원문화재단 이사장

나는 CEO들의 음악 개인교사

피아니스트 김선욱 군이 영국의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본인 못지않게 기뻐한 사람이 있었다. 김일곤 대원주택 회장. 그가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발전을 위해 설립한 대원문화재단에서 첫 번째로 후원한 차세대 음악인이 김선욱 군이었다.

“김선욱 군이 2005년 클라라 하스킬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로 우승한 후, 그의 연주가 녹음된 CD를 들었는데, 깜짝 놀랐어요. 10대 소년이 치는 피아노에서 대가의 터치, 풍모가 느껴졌으니까요.”

김선욱 군은 리즈 콩쿠르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는데, 스승인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대진 교수가 마침 안식년으로 뉴욕에 가있어 지도를 받기 어려웠다. ‘무얼 도와줄까?’ 고민하다 그를 뉴욕으로 보내기로 했다. 항공료와 체재비를 지원, 뉴욕에서 스승의 지도를 받게 한 것. 김대진 교수는 “선욱이가 처음에는 영어 때문에 조금 위축되는 것 같았는데, 금방 적응해 열심히 연주회를 보러 다닌다”고 전했다. 김선욱 군이 뉴욕에서의 시간을 통해 더욱 성숙했고, 그게 리즈 콩쿠르 우승의 밑거름이 됐음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김선욱 군이 우승한 날, 그는 골프장에 있었다. 문화재단 직원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함께 운동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우리 선욱 군이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며 한턱을 냈다. 모두들 박수는 치는데, ‘리즈 콩쿠르’가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피아니스트가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은 한국 팀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라고 설명하면서, ‘사회 지도층에서부터 음악에 대한 인식을 심어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CEO들 사이에 음악 전도사로 유명하다. 한 사람 한 사람 음악에 젖어들게 하는 그의 ‘맞춤 교육’은 정평이 나있다. 영화 <필라델피아>의 DVD를 쥐여주며 “뒷부분에 나오는, 마리아 칼라스가 절규하듯 부르는 노래 ‘어머니는 돌아가시고(La mamma morta)’를 들어보라”고 권하는 식이다. 에이즈로 죽어 가면서도 사회 편견에 맞서는 주인공의 심정이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지오다노의 오페라에 나오는 아리아와 기막히게 오버랩된다고 설명하면서.

함께 골프를 치고 헤어지면서 “차 안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1악장을 들어보라. 2악장은 차량 스피커로는 안 되니, 집에 들어가서 듣고…”라고 숙제를 내기도 한다. 정명훈 씨가 지휘하는 서울 시향 공연이나 외국의 유명 교향악단의 공연에 CEO들을 초청해 함께 보러 다니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그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로부터 ‘교육받은’ 한 CEO가 보내온 거라며 그날 새벽 받았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여준다.

“공항에서 차이코프스키 1번 협주곡 1악장을 듣고 있습니다.”

그들 삶에 음악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하고 있는지 알 듯했다. 정상에 올라 모든 것을 이룬 것 같은 CEO들도 사실은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며 공허와 허탈을 호소할 때가 많다고 한다. 김일곤 회장은 그들이 음악과 친구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재계와 음악계가 만날 때 상상할 수 없었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리라 기대한다. 한 CEO는 주변 사람들을 초청, 문화센터의 1200여 좌석을 모두 빌려 공연을 관람하는 등 눈에 보이는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부터는 삼성경제연구소와 손잡고 ‘글로벌 CEO를 위한 뮤직 앤 컬처 과정’을 열었는데, 그가 음악 강좌 프로그램을 직접 짜고, 연주를 해줄 출연진을 섭외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부터 이렇게 음악 마니아, 후원자가 되었을까? 1944년생인 그는 그 시대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듯 편편치 않은 삶을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고도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걸핏하면 휴학을 해야 했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런 가운데도 음악만은 그에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했다.

그는 “엄마 등에 업혀있을 때부터 풍금 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그게 평생 나를 음악으로 이끈 것 같다”고 한다. 시골의 작은 교회 성가대에서 반주를 했던 어머니는 아버지도 없이 어려운 형편인데도 그의 손을 잡고 연주회를 찾곤 했다. 그의 삶에는 항상 음악이 곁에 있었다. 돈만 생기면 동두천 미군부대에 음반을 구하러 갔고,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밤중에도 책상과 의자 사이에 담요를 쳐놓고 들어가, 청계천에서 구해온 중고 LP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조명실에 쪼그리고 앉아 들은 음악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1964년 런던 심포니의 내한 공연. 당시 촉망받는 차세대 지휘자로 꼽히던 콜린 데이비스가 지휘하기로 되어있어 애호가들을 더욱 들뜨게 했다. 돈을 아끼고 아껴 겨우 티켓 값을 모았다. 연주회 날, 공연장인 시민회관으로 갔는데 표는 매진되고 없었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그곳을 차마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성이는 사람들이 20여 명은 됐다. 그때 시민회관 주변에 있던 ‘어깨’들이 돈을 내고 조명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주선을 했다. 무대는 잘 안 보여도, 천장 가까운 곳이라 소리만은 최고였다.

“꼼짝없이 쪼그리고 앉아 브람스가 20여년에 걸쳐 작곡한 교향곡 1번을 들었어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슈만의 아내 클라라만을 사랑했던 브람스의 비운의 삶이 녹아있는 듯했지요. 비장한 1악장이 자신의 마음을 자학하듯 후벼 파는 것 같다면, 4악장 현악기군이 연주될 때는 마음의 평화를 찾아 구원에 이른 듯한 느낌이었어요. 신앙의 체험에서 나오는 종교적 희열 같은 느낌이랄까? 연주회가 끝난 후에도 가슴이 너무 벅차 시민회관에서 북아현동 하숙집까지 걸어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힘겹고 가난한 삶도 음악으로 인해 빛나고 풍요로워지던 시절이었다. 그는 이후 자수성가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 시대 젊은이들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인가” 고민할 때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이를 이뤘다. 사업이 자리 잡히면 우리 음악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는 결심도 2004년 말 대원문화재단을 설립하면서 실천하고 있다.

대원문화재단은 매년 촉망받는 음악 영재들을 선발해 ‘대원예술인상’을 주면서 그가 음악가로 자리 잡을 때까지 후원한다. 첫 번째 수상자가 김선욱 군. 클래식 음악 발전에 공헌한 음악가에게 수여하는 ‘대원 음악대상’은 상금이 1억 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지휘자 양성 프로그램도 지원한다. 그가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음악을 이해하고, 향유하는 음악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사진 : 이규열
  • 200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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