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슬기로운 퇴사생활 (2)

불안이라는 이름의 손님

글 : 이슬기 

액션건축가의 말
불안의 실체를 알면, 막연한 두려움에서 해결 가능한 문제로 변한다.
퇴사를 앞둔 5년 차 회사원에게 로망이 있었다. 길고양이조차 보이지 않는 한산한 길거리를 하릴없이 걷기. 카페 주인도 하품을 참을 수 없는 한가로운 시간에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아이스커피 유리잔에 맺힌 이슬방울을 가만히 바라보기. 이글거리는 태양이 퇴근 준비를 하고, 달이 출근 준비를 시작하는 시간의 어느 사이 즈음, 한강이 보이는 도로 위를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로 달리기. 이때 BGM은 우쿨렐레의 하와이안 감성과 IZ의 달달한 보컬이 녹아있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로.

퇴사 후 처음 한 달은 어린아이처럼 보냈다. 평일에는 회사원, 주말에는 개인 프로젝트를 하며 보낸 무리한 생활의 보상이었다. 퇴사를 할 즈음에는, 연료가 한 방울도 남지 않은 기계를 억지로 돌리고 있다고 몸에서 적신호를 보내올 만큼 지쳐있었기에 휴식은 꿀보다 더 달콤했다.

퇴사 D+53일째.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카페를 찾았지만, 편안하지 않았다. 얼음 잔에 비친 불안함에 겁이 질려 손이 떨렸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뚝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날부터 이따금 마음을 두드리던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쑥불쑥 예고 없이 튀어 오르더니, 이내 생활의 모든 곳을 점령했다. 더는 길거리를 걸어도, 카페를 찾아도, 한강 변을 달려도 예전처럼 즐길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불안했을까. 셰어하우스 사업을 준비하고 퇴사한 덕분에 가장 큰 불안요소라고 생각하던 ‘꾸준히 들어오던 월급이 단절’되는 사건도 없을 때였다.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말 그대로 ‘놀며’ 보냈다. 옷이 흠뻑 젖을 때까지 물총 싸움을 하거나, 먹이를 나르는 개미 군단을 구경하거나, 풀밭에 쪼그리고 앉아 네 잎 클로버를 몇 시간이고 찾곤 했다. 주머니에 동전이라도 생기는 날이면, 100원으로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위해 오락실이나 만화방으로 뛰어갔다. 그때 나는 매 순간 신이 났고 진지했으며 저녁이 되면 내일의 모험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교복 입는 학생이 되면서 즐거운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시험 등수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가면서 모든 순간이 불안해졌다. 친구들과 노는 순간에도 공부하지 않는 내 모습이 불안했고, 영어를 공부하면서 수학 성적을 걱정했으며, 시험을 치는 순간조차 아직 나오지도 않은 등수를 두려워했다. 그렇게 모든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하면서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초조함에 견딜 수 없는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불안이 말을 건다

“너, 지금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겠어? 모두 조금이라도 앞서가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텐데. 루저가 되고 싶은 거야? 기억 안 나? 고3 때 아침마다 복창한 급훈도 무한경쟁시대였잖아.”

그가 하는 말에 늘 순종적이기만 했던 나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나는 할 만큼 해봤어. 죽도록 열심히 달려봤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작 하고 싶은 많은 것을 포기해왔어. 그래서 무엇이 남았지?”

고개를 들어 두려움, 그를 똑바로 마주했다.

“잠시 쉬고 있는 시간조차,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의 추억조차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너는 정말로 나를 위해 충고하고 있는 거 맞니? 나를 그냥 내버려 둬.”

그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인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은 마음이 약해질 때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나는 그를 반가운 손님을 대하듯 맞이한다.

“그래, 오늘은 어떤 대화를 나눠볼까?”

나는 더는 불안이 두렵지 않다.

글쓴이 이슬기는 한때 회사원이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이후, 숱한 실험을 통해 평생 하고 싶은 것 두 가지를 찾았다.
하나는 글쓰기, 또 하나는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돕는 일이다. 내일이 궁금한 삶을 살며, 직장인 퍼스널 브랜딩 연구소 ‘액션 랩’을 운영 중이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걱정 없이》, 《댄싱 위드 파파》를 썼다.
  • 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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