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지난 1월 경상적자를 본 데 이어 일본도 1월에 사상 최대의 경상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적자를 봐도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던 일본마저 경상적자를 기록한 배경은 ‘유가’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유가는 사실 그만큼 중요한 변수다. 물론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기름값 올라가는 것 외에는 실감나지 않을 수 있지만, 유가가 오르면 우리 경제 입장에선 방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다시 부담되는 유가(油價)

한국이 지난 1월 경상적자를 본 데 이어 일본도 1월에 사상 최대의 경상적자를 기록했다. 무역적자를 봐도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던 일본마저 경상적자를 기록한 배경은 ‘유가’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유가는 사실 그만큼 중요한 변수다. 물론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기름값 올라가는 것 외에는 실감나지 않을 수 있지만, 유가가 오르면 우리 경제 입장에선 방어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사태로 전 세계가 금융공황에 빠졌을 때, 사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좋은 기회가 될 만했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IMF쇼크 여파로 10년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왔을 뿐 아니라, 리먼이 문제가 된 금융파생상품의 피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한데 당시 우리나라는 오히려 ‘국가부도’ 위험이 있다는 의심을 받았고 결국 위기에 몰려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라는 비상수단을 썼어야 했다. 그럼 도대체 왜 우리나라는 갑자기 위기에 몰렸을까? 그 중요한 해답 중 하나가 바로 유가였다.

당시 외국 언론이나 투자자들이 가장 문제 삼은 것이 우리나라가 경상수지 적자를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2007년 말부터 경상수지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2008년 들어와서는 매달 적자를 보다시피 했다. 특히 리먼 사태로 전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던 9월 시점에선 7월, 8월이 연속 적자였고, 9월에도 적자를 봤다. 이런 적자의 이유가 바로 고유가였다. 국제유가는 2007년 말부터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기 시작했고, 국제적인 버블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 여름엔 140달러를 넘어 150달러에 육박했다. 당연히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에선 기름값이 올라가니 수입액수가 늘었고, 이 때문에 경상적자가 나고 ‘부도위험’설이 나돈 것이다. 사실상 우리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은 바로 기름이다.

당시 우리 경제는 비록 한미 통화스와프가 성공했더라도 또다시 위기를 겪을 수 있었다. 계속 경상적자를 봤다면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가 해외 금융기관 관계자들에게 설명회를 하자 대부분의 투자자가 “이달에 경상수지 흑자를 볼 수 있느냐”며 “흑자로 돌아선다면 우리도 돈을 안 빼가겠다”고 한 일이 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10월에 바로 경상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는데, 결국 이것도 유가의 힘이 컸다. 전 세계에 위기가 오자 금융기관이나 투기성 펀드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이때 원유 투자 펀드에서도 자금이 빠져나갔다. 지탱해오던 ‘돈’이 빠져나가자 유가는 10월에 접어들면서 배럴당 60달러 수준까지 반 토막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상황이 아니더라도 유가는 경제에서 중요한 요소다.

세계에서 거래되는 유종은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미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WTI(서부텍사스산 원유), 유럽에서 주로 사용하는 브렌트유, 아시아에서 주로 사용하는 두바이유다. 이 세 가지 원유 가격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개 비슷하게 움직이는데, 이른바 ‘외신’들이 대체로 미국 언론들이기 때문에 미국의 WTI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전 세계가 떠들썩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두바이유를 사용하기 때문에 WTI보다는 두바이유 가격이 중요하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두바이유가 150달러까지 오를 경우 소비자 물가가 0.5%포인트 상승하고 경제성장률은 0.5%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한다. 산유국이라 할지라도 아예 석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아니면 높은 유가는 부담이라고 한다. 석유가 나는 미국의 경우도 유가가 10달러 정도 상승하면 첫 해에 GDP의 0.2%포인트 정도가 감소하고 두 번째 해에는 0.5%포인트 정도 감소한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조금 특이하다. 지난 2008년의 경우 원유가격은 세 가지가 비슷하게 올랐다. 2007년까지는 이른바 ‘골디락스(물가상승 없는 성장)’의 초호황기였다. 호황기다 보니 투자도 많아지고, 투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본 투기자금도 모였다. 호황이었기 때문에 유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이 과거처럼 호황기인지는 의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을 제외하면 경기 좋다는 얘기가 안 나오는 상황에서 유가가 오르고 있는 것은 상당히 정치적인 문제 때문이다.

일단 브렌트유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른 것은 리비아의 영향이 크다.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산유국이었는데 장기 집권했던 무아마르 카다피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석유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했다. 유럽은 브렌트유가 주로 거래되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아프리카에서도 석유를 조달했는데, 리비아로부터 석유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자 석유가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뛴 것이다.

두바이유가 올라가는 이유는 이란 때문이다. 미국이 핵문제로 이란을 제재하면서 이란의 석유를 수입하지 말 것을 종용했는데, 이란은 전 세계 하루 원유 공급량의 5% 정도를 생산하는 나라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원유가격은 이에 앞서 뛰고 있다. 이 때문에 세 종류의 대표적인 원유가격이 이젠 차이가 좀 난다. 3월 중순 기준으로 정치적 위험을 안은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는 배럴당 120달러를 오가고 그렇지 않은 WTI는 100달러 정도다.

지난 2008년과 같은 위기가 또 올 수 있을까? 한국 입장에서는 이제 정책 당국의 실력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007~2008년의 경우 우리나라가 경상수지 적자를 본 또 하나의 큰 원인은 환율이다. 이젠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2007년만 해도 일본 물가가 우리보다 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엔화는 저평가, 원화는 고평가였다. 2008년에는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00원 아래에서 오갔고 한때 900원이 깨질 위기였다. 자연히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경상수지에 바로 영향이 올 상황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럴 경우 고환율(원화 평가절하) 정책으로 경상수지를 적자가 안 되도록 해야 하는데, 당시 경제정책이 정치적으로 변질되면서 이른바 ‘재벌만 좋은 고환율 정책을 폐기하라’는 얘기가 나왔다. 물론 고환율 정책을 편다고 환율이 맘대로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다(그런 과정에서 외환보유액은 쌓일 수 있겠다). 또 유가가 높이 올라가는 상황이 되니 고환율 정책을 쓰려야 쓸 수가 없게 됐다. 고환율은 같은 물건을 해외에서 수입할 때 돈을 더 줘야 한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바로 물가에 영향을 주게 된다.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은 국민 생활에 막대한 피해를 주게 된다. 현재 유가가 많이 올라갔는데도 우리나라가 지난 1월을 제외하면 그래도 경상수지가 흑자를 보는 이유는 그나마 환율이 예전보다는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계속해서 유가가 올라갈 경우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앞으로도 유가가 얼마나 더 올라갈지 여부는 이란문제에 달렸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나마 원유 수요가 많지 않고, 유가 상승이 계속될 경우 지난 2008년과는 달리 세계경제 자체 불안요인이 되면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경우 유가보다는 경제침체를 더 걱정해야겠지만 말이다. 수십 년 전이었다면 ‘석유를 아끼자’는 캠페인이 나올 상황인데, 그렇게 해결할 수도 없는 시대라 당분간은 이란에 신경을 쓰는 편이 낫겠다.

그림 : 배진성
  • 201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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