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중진국 되는 거지 뭐.”

5~6년 된 일인데, 유명한 해외의 신흥시장 투자 전문가와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다. 그는 남북통일을 한국 경제의 큰 변수로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는데, 그 뒤에 한 말이 있다.

“그런데 다시 중진국 되면 사람들도, 투자자도 아마 엄청 좋아질 거야. 옛날 같은 고성장이 가능해지거든.”">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통일이 된다면?

“다시 중진국 되는 거지 뭐.”

5~6년 된 일인데, 유명한 해외의 신흥시장 투자 전문가와 인터뷰를 한 일이 있었다. 그는 남북통일을 한국 경제의 큰 변수로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는데, 그 뒤에 한 말이 있다.

“그런데 다시 중진국 되면 사람들도, 투자자도 아마 엄청 좋아질 거야. 옛날 같은 고성장이 가능해지거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이제는 다시 한번 ‘통일비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왔다고 한다. 체제가 붕괴되는 차원을 떠나서 아무래도 새로운 수뇌부가 들어서면 전임자(그게 아버지라고 하더라도)와는 다른 정책과 다른 시도를 하면서 차별성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이었다면 자기가 세운 정책이기 때문에 물리기 힘든 부분도 후임자(그게 김정은이든 혹시 다른 사람으로 흘러가든)라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예기치 않게(그 형태가 어떻든) 통일이 빨리 올 수도 있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통일비용을 얘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통일분자처럼 여겨졌다. 한데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북한이 점점 힘들어지자, 본격적으로 통일비용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종북세력은 통일 자체가 남한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쪽으로 여겨지기 시작하자 ‘통일하면 비용만 많이 든다’는 식으로 통일보다는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자는 데 주안점을 뒀다. 또 다른 세력은 통일에 따른 불안정성을 두려워하는 차원에서 통일비용 얘기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나 통일비용 얘기는 ‘통일해서 뭐하냐’는 식의 논의였던 셈이다. 그러나 이젠 의도를 떠나서 경제적으로 어떤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통일비용 계산은 말 그대로 중구난방이다. 최소 500억 달러(미국 랜드연구소), 급격한 붕괴 시 2조1400억 달러(KDI), 546조원(2005년 삼성경제연구소) 2275조원(2010년 김유찬 홍익대 교수), 3조5500억 달러(골드만삭스), 30년간 5조 달러(피터 백 스탠퍼드대학 연구원), 2525조원(국가안보전략연구소) 등등. 워낙 달라서 그게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별로 참고도 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전망이 다르면 차라리 전체적인 액수로 계산하는 것보다 어떤 점이 비용으로 들고, 어떤 점이 좋은지를 따져보는 것 정도만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사실 앞서 말한 ‘다시 중진국이 된다’는 통일비용을 가장 압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아주 간단하게 봐서 1인당 국민소득이 다시 1만 달러 언저리로 내려간다. 당연한 것이, 빈곤한 북한 측과 평균을 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만 잘 벌면 문제없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거의 같은 돈을 가지고 남북한에 같은 복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1970~80년대처럼 복지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라면 역설적으로 문제가 덜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차이가 많이 벌어졌기 때문에 자연히 국민 1인당 돌아가는 복지가 줄어든다.

당연히 북한보다 상대적으로 잘사는 남한 측에서 대부분의 세금을 내고 이걸 남북한 전 국민이 나눠 받는다. 북한 주민도 연금을 줘야 할 것이고, 저소득층도 지원해줘야 할 것이다. 도로도 세금으로 깔아줘야 할 것이고, 공공건물도 지어줘야 할 것이다. 자연히 남한 측에선 세금을 더 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저소득층으로 세금을 안 내던 사람도 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북한 주민보다는 많이 벌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이 과정에서 재정도 급격히 나빠질 것이다. 독일의 경우 통일 직후인 1991년 ‘통일연대부과금’을 도입했는데, 1년 기한으로 소득세와 법인세에 각각 7.5%씩 부과했고, 1995년 부활돼 소득세와 법인세에 5.5%를 부과한다. 통일 후 20년간 통일비용으로 3000조원 정도 썼다고 한다.


그럼 이득은 어떤 것일까?

건설을 비롯해서 여러 분야에서 이른바 초호황을 맞을 것이다. 증권가에선 인프라 건설을 할 때 필요하므로 기계·장비, 내수가 커지므로 유통, 북한을 자유롭게 다니게 될 것이므로 여행·운송 산업 등이 수혜산업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싼 임금의 북한 노동자들이 나오면서 물건 가격이 (일시적으로나마) 싸질 수(북한 입장에선 비싸지겠지만) 있다. 또 아직 개발하지 않은 광물자원은 북한 경제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009년 “북한이 보유한 풍부한 광물자원은 2008년 기준 북한 GDP의 140배 수준”이라며 “이에 교육수준 등을 감안하면 2050년에는 남북한 GDP가 프랑스・독일・일본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이 체제를 잘못 만나서 못살 뿐이지 예전부터 강인한 사람들이었던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자본주의에 적응하고, 남북경제가 본격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한데 이런 예측은 그야말로 ‘기본’이다. 비용에도, 이득에도 ‘그다음 스테이지’가 있다. 우선, 통일 과정에서 훨씬 더 비용이 들 수 있다. 전쟁도 없이 갈렸던 동-서독 때보다 훨씬 더 깊은 골이 있다. 예를 들어 통일 후 정치인들이 남과 북이 1등 국민과 2등 국민이 됐다는 식으로 선동할 경우, 사회 치안은 훨씬 불안해질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북한 독립운동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고, 이 과정에서 서울에서 밤낮없이 테러가 일어나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이스라엘같이 전쟁 많은 나라에도 외국인 투자자가 들어간다지만 우리나라는 이스라엘이 아니다. 불안한 시장에서 외국인들이 버텨나지는 못할 것이고, 이 경우 통일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최상의 상황에서 망외의 이득이 나올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통일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지속적으로 쌓인 고질병을 ‘한큐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일단 중진국이 된다는 것은 다시 한번 ‘성장의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1970~80년대의 고성장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많지만, 고성장은 달콤한 것이다. ‘사다리’ 문제를 걱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통일이 돼서 경제에 끊임없이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남이건 북이건 기득권은 무너지고, 새로운 기회를 잡아 벼락출세하는 사람도, 반대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재벌도 나올 것이다. 진취적인 사람이 승리할 것이고, 개천에서 용이 충분히 나오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성장의 여유가 있다는 것은 이리저리 빈틈도 있고 그만큼 꿈꿀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자연스럽게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체적으로 일터에서도 좀더 여유가 생길 것으로 본다. 성장하는 사회에서는 성장에 대비하기 위해 조직의 볼륨이 한발 앞서 커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IMF 직전의 버블의 극치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지금처럼 기업이 투자하지 못하고 청년들은 실업에, 중년들은 업무 부담에 치이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최악의 상황이 될 경우는 그다지 방법이 없다. 다만 실제로 통일이 되고 다시 한번 중진국에서 새 출발하게 될 경우 기회와 위험이 함께하는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릴 것을 기대해보는 것이 개인 입장에선 정신적으로나 실제로나 좋은 일일 것 같다.

그림 : 배진성
  • 201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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