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1일 동유럽의 슬로바키아에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대 안이 부결됐다. 사실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다. 지난 8월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을 둘러싼 혼란은 그리스의 부도 가능성에서 비롯됐다. 그리스가 부도나지 않으려면 유럽 여러 국가들이 추가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추가지원을 위해선 재정안정기금 증액 안이 통과돼야 한다. 문제는 이 증액 안이 유럽 17개국 모두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것. 단 한 나라만 찬성하지 않아도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각국 정치를 봐야 경제가 보인다

지난 10월 11일 동유럽의 슬로바키아에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대 안이 부결됐다. 사실 엄청나게 큰 사건이었다. 지난 8월 이후 전 세계 금융시장을 둘러싼 혼란은 그리스의 부도 가능성에서 비롯됐다. 그리스가 부도나지 않으려면 유럽 여러 국가들이 추가지원을 해줘야 하는데, 추가지원을 위해선 재정안정기금 증액 안이 통과돼야 한다. 문제는 이 증액 안이 유럽 17개국 모두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것. 단 한 나라만 찬성하지 않아도 절차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앞서 16개국이 모두 찬성한 상황에서 전체 경제 규모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 슬로바키아가 그동안의 논의를 원점으로 돌이키는 순간이었다. 한데, 부결된 직후 확대 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슬로바키아 야당은 “다음번 투표에선 찬성하겠다”고 입장을 뒤집었고 이틀 만에 다시 시행된 투표에서 확대 안은 간단히 가결됐다. 결국 돌아설 것을 반대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확대 안 통과에 정권을 연계했는데, 야당 입장에선 일단 집권연정을 해산시켜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슬로바키아의 내부 정치싸움에 자칫하면 세계경제가 다시 한번 홍역을 겪을 뻔했다.

지난 2008년 일어났던 금융위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 모습이 변해가고 있다. 이젠 경제문제가 정치문제로 진행하고 있다. 경제만 봐서는 경제를 전망할 수 없고 정치문제를 봐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비교적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 경제문제에 비해 정치문제는 각국의 여러 가지 정치상황이나 국민감정을 알지 못하면 예측하기 힘들고, 이해하고 공감하기도 힘들다. 정치가 경제의 걸림돌이란 말은 상당히 상징적인 말이었지만, 앞으론 상당히 현실적인 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난 8월 이후 일어난 미국의 국가부도 논쟁과 그에 이어진 미국 신용등급 강등, 그리스 지원문제 등 일련의 사건은 말 그대로 각국 내부의 정치문제가 전 세계를 뒤집어놓은 사례다. 정치문제가 되다 보면 각 집단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게 되고 ‘형식적 균형’을 갖춘 보도가 이어지면 과연 현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기 힘들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의 경우다. 당시 EFSF 승인과정에서 며칠 동안 독일 의회에서 확대 안이 통과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전 세계 주가가 폭락하고 여기에 유탄을 맞아 한국의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620표 중 523표의 압도적인 다수표로 승인됐다. 막상 승인이 되고 나서 나온 외신들의 해설은 애초부터 승인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독일 내부의 관심은 승인 자체보다 그리스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대한 연정 내부의 반란이 어느 정도였는지였다. 연정 내부의 이탈이 많으면 향후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런 상황에 대해 외신들이 시시각각 움직이는 각 정파의 입장만 보도하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볼 때는 독일의 대세가 뭔지 알기 힘들었다. 집권당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 ‘대세’에 지장이 있든 없든 일단 큰 사건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생리가 작용하면서 투표당일까지도 국내 투자자들은 통과 자체가 되지 않는 게 아닐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왜 시장이 흔들리고 뭐가 문제가 있는지를 국내 투자자들이 거의 알기 힘들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유럽이 그리스 지원 안을 놓고 티격태격하자 국제사회에서도 고도의 ‘정치’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유럽 문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혼란스러워지자 각국에서 해결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한데 이 과정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암울한 전망뿐이다. 예를 들어 “유럽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 세계가 더블 딥에 빠진다”든지, “그리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유로 존은 와해될 것” 류의 말들이다. 사실 이런 말들은 ‘언론 플레이’에 가깝다. 각국에서 빠른 해결을 촉구하는 입장에서 유럽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고, 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옆에서 보는 각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알기 힘들다. 세계경제에 대한 계속되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위기는 실제보다 더 부풀려진다. 사실 유럽 각국의 정치-경제인들은 유럽문제가 전 세계 경제를 흔들 것이라는 전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좋든 싫든, 앞으로도 경제의 정치화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내년은 각국에서 대형 선거가 잡혀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미국과 프랑스・러시아 등 10여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잡혀 있고, 중국의 경우도 권력 이동이 예정돼 있다. 선거를 앞둔 각국 정부는 국민들의 부담이 되는 정책을 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표를 얻어야 하므로 어찌 보면 당연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일단 각국 정부가 경제를 살려보자는 생각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자는 데 이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젠 각국 정부도 돈이 떨어진 상태고, 결국은 빚이 많은 나라는 그동안 미뤄둔 국민들의 부담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동안 그리스 등 재정 부실국에 돈을 지원하는 입장이던 우량국가의 경우는 국민들에게 부담 얘기를 하기가 힘들 전망이다. ‘국민의 부담’ 얘기가 나오면 야당은 여당의 실정을 뻥튀기하며 자국이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는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선거가 끝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경우 ‘재정 불량국에 대한 지원 반대’를 내세우고 집권한 정당이 실제로 이 정책을 펼칠 경우는 기존 구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긴축을 약속했던 재정 불량국이 약속을 어기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주장하며 유럽의 대형 은행들을 안고 무너지겠다고 한다면, 역시 전 세계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과거 IMF 쇼크 때 IMF 측이 대선후보들에게 모두 양해각서 체결에 대해 동의를 받은 것도 이런 상황을 우려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 향방에 따라서는 미국의 금융산업 모양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현재까지는 버핏세 등 부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 정도로 정책 대안이 나오고 있는데, 시위가 점점 확산되고 전 세계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경우 역시 금융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

지난 2008년에도 금융회사 규제안은 단기간의 시장 요동으로 이어진 일이 있다. 게다가 최근 전 세계는 미국이 다시 한번 돈을 푸는 제3차 양적완화를 시행하느냐에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이런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공화당과 민주당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각각의 정책의 단점을 폭로하면서 긴장상태를 만들어간다면 역시 단순한 금융시장 문제에 그치지 않고 경제 자체를 흔들어놓을 수 있다.

개인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각국의 정치-경제상황에 따라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문제도 처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최소한 명심해두고 행동하는 게 낫겠다. 또 유럽이나 미국처럼 세계경제 전체에 파장을 미칠 수 있는 나라의 경우 뉴스를 좇아가지 않으면 이게 좋은 뉴스인지 나쁜 뉴스인지도 판단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내년을 넘기더라도, 각국의 재정문제와 불경기가 이어지고 부실이 쌓일 경우 경제가 정치화되는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수 있다. 국제 뉴스는 보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열린 경제를 하는 나라 국민들의 운명이라면 운명이랄까.

일러스트 : 배진성
  • 201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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