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이후 전 세계 경제는 마치 2008년의 금융위기를 연상케 했다. 한데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역시 그때 같지는 않다. 위기는 지속되고 있지만 지난번과는 다른 점이 많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아시아 신흥국들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아시아의 시대가 오는가?

지난 8월 이후 전 세계 경제는 마치 2008년의 금융위기를 연상케 했다. 한데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역시 그때 같지는 않다. 위기는 지속되고 있지만 지난번과는 다른 점이 많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아시아 신흥국들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지난 2008년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한국경제의 체력은 단단했다. 그렇지만 2008년에는 위기가 오자 가장 먼저 ‘부도날 위험이 큰 국가’로 해외 언론에 이름을 올렸고, 때맞춰 국내에서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국이 망할 것’이라는 자해성 소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위기를 맞은 것은 미국과 유럽이었는데 한국에서 돈이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했다.

2007년 달러당 900원 정도였던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단숨에 1500원을 넘겼다. 은행들이 국제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어졌고, 외국에 나가서 외평채를 발행, 위기론을 잠재우겠다고 큰소리치던 정부는 결국 외평채 발행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부도위험을 나타내는 CDS프리미엄은 거의 700 가까이 치솟았다. 그 이전이든 그 이후든 이 수치는 80~110 정도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정도는 달라도 사정은 다른 아시아 국가도, 기타 신흥국가들도 모두 비슷했다. 특히 1990년대 말에 외환위기를 겪었던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한 번 홍역을 치렀다. 이른바 전통적인 선진국들은 대부분 국제통화를 가지고 있어 실질적으로는 부도날 위험이 없는 나라들이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이들 선진국보다 재정이 훨씬 튼튼했던 아시아 국가들이 막상 금융위기의 해일이 다가오자 가장 위험국가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 2011년에는 움직임이 다소 달랐다. 위기는 위기이기에 2008년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지만 그 정도가 무척 약했다. 환율이 오르기는 올랐는데 1050원 하던 것이 1090원 정도로 오르는 데 그쳤다. CDS프리미엄도 일부에서는 ‘폭등’이라고 말하지만 그래 봐야 150~170 정도다. 오히려 프랑스 등이 우리나라보다 CDS프리미엄이 높아졌다. 위기가 난 곳이 유럽이고 미국인 만큼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난번과는 다른 상황이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채권은 그다지 팔지 않았다. 이 때문에 환율도 예상보다는 선방했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국제시장이 흔들리면서 어느 정도 악화되기는 했지만, 아시아가 공통적으로 지난번 위기 때보다는 선방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모두 흔들렸지만 환율을 비롯, 국가 경제 자체가 흔들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아시아의 위상이 극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번 위기가 초기 단계이고 앞으로 실제 유럽 등에서 디폴트(채무 불이행)사태가 벌어질 경우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갈 수 있지만 아시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만큼은 틀림없다.

도대체 이런 극적인 변화는 어디에서 일어난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적’이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아시아는 이전 외환위기의 ‘전과’가 있었다. 이 때문에 여러 나라가 ‘부도가능 국가 리스트’에 올랐다. 그러나 막상 2008년에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은 막 확장형 경제개발의 길을 들어서던 동유럽이었다. 실제로 경제위기에서 가장 빠른 회복을 보인 것도 아시아였다. 중국은 과열을 걱정할 정도로 빠른 시간에 회복했고, 이른바 중화권 경제로 불리는 대만과 동남아시아 역시 빠르게 회복했다.

인도네시아는 풍부한 원자재를 바탕으로 주목을 받으며 세계의 투자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시아는 일단 과거의 ‘전과’ 이미지를 벗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안전지역’으로 평가되는 시대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상 세계경제는 그동안 지역별로 경기와 주가가 순환됐었다. 제일 먼저 원자재도 풍부하고 2000년대 들어 생산력도 갖추기 시작한 남미 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중국-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가 좋아지고, 그다음 미국과 서유럽, 전 세계가 호황기에 들어 원자재 가격과 석유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하면 최후로 중동이 호황기를 맞았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이런 공식대로 차츰 회복됐다.

남미가 좋아졌고, 아시아가 좋아졌다. 그리고 올초까지만 해도 미국과 서유럽이 회복됐다. 그러나 여름 이후 유럽과 미국의 경제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다음 향방을 알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동안엔 미국과 유럽 경제가 나쁘더라도 결국은 그래도 부도가 날 수 없는 선진국이 안전하다고 해서 이들 나라의 국채는 ‘안전자산’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이젠 이런 공식을 믿을 수 없게 됐다. 부도가 나지 않더라도 국채를 남발해 이들 국채 가격이 많이 떨어지면 역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번 투자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방향을 바꾸기가 힘들다.

국채 인기가 떨어지면 해당 국가 통화의 인기도 떨어지고 화폐가치가 하락한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손해(환차손)를 보기 때문에 점점 투자자금이 이탈하게 되고 경제가 빠른 속도로 나빠질 수 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튼튼한 나라들은 자국으로 투자자금이 몰려오는 것을 막기 시작했다. 화폐가치가 너무 오르면 수출에 불리하기 때문. 스위스의 경우 스위스프랑 가치가 지나치게 오르자 중앙은행이 “앞으로 유로화 대 프랑화 가치를 1.2로 고정시키겠다”고 나섰다. 일본도 언제든지 엔고를 막기 위해 시장개입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렇게 되자 국제 투자자금으로선 갈 길이 없어졌고, ‘그다음으로 안전한 곳’을 찾던 자금이 아시아로 들어오기시작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아직 유럽과 같은 복지사회에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정은 그다지 부실하지 않다. 한국은 예외지만 상당수 국가들이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자원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면 된다. 외환 보유액이 많지 않아도 한국처럼 완전 개방형 수출입경제로 자금 유출입이 격심한 곳이 아니라면 큰 문제가 없다.

또 유럽과 미국은 금융이 지나치게 발달해 한 나라의 위기가 금세 다른 나라로 이전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금융이 덜 발달된 아시아 국가들은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국가에 투자해 놓은 것도 적고, 빌린 자금도 적다.

유럽 은행들이 모두 어려워져서 일제히 투자자금을 다 뽑아가는 상황만 아니라면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도 다른 지역보다는 적다는 것이다. 그럼 앞으로는 ‘아시아의 시대’가 될까.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아직 아시아 국채가 ‘안전자산’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단기간이라면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다만 아직 ‘발전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안요소 역시 많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적・정치적 불안이 완전히 해결됐는지 알기 힘들고 지속적인 도약이 가능할지도 아직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다만 아시아 지역이 예전보다 신뢰를 얻게 됐다면, 앞으로도 웬만한 위기에 이전처럼 환율이나 국가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릴 일은 줄어들 것이다. 또 긴 눈으로 보면 다소 흔들림이 있더라도 아시아지역 통화와 경제 등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재정문제와 일부 국가의 디폴트 문제가 해결되기 전의 선진국보다는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 배진성
  • 201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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