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1개월이 지난 후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보통의 자연재해라면 보통 1주일만 지나도 분위기를 추스르기 시작하고, 선진국의 경우는 1개월 정도만 지나도 재해 자체가 잊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일본 대지진은 좀 다르다. 1개월이 지나도 다른 나라 같으면 온나라가 망가질 정도의 대형 여진(餘震)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후 방사선 유출이 한 달이 넘게 지속됐다.">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일본 대지진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1개월이 지난 후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보통의 자연재해라면 보통 1주일만 지나도 분위기를 추스르기 시작하고, 선진국의 경우는 1개월 정도만 지나도 재해 자체가 잊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일본 대지진은 좀 다르다. 1개월이 지나도 다른 나라 같으면 온나라가 망가질 정도의 대형 여진(餘震)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후 방사선 유출이 한 달이 넘게 지속됐다.
재해는 보통 일과성이기 때문에 회복도 빠른 것이 보통인데, 이번 일본 대지진의 경우는 실제로 재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사실 보통 재해였다면 앞으로의 예측도 간단하다. 일본 경제의 경우 4월부터 서서히 복구 특수가 일어나기 시작해서 연말까지 다소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이다. 물론 복구 수요가 일본 경제 부흥으로 이어질지까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만, 대지진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 자체는 확실했을 것이다. 전 세계 경제로 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베 대지진이나 미국의 카트리나 허리케인, 인도네시아 대 쓰나미 등이 세계경제에 미친 영향은 없거나 미미했다. 한 지역이 피해를 보면 복구수요가 일고 수혜기업들이 등장했다가 1년 정도 지나면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얼마 지나면 다시 일본은 일어설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그에 못지않은 많은 전문가들이 쉽게 입을 벌리지 않고 있다. 이번 일본 대지진은 다른 재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인데, 다르다는 것이 공공연히 말하기는 좀 힘든 얘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번 대지진은 지난 금융위기가 그랬듯이, 그전까지 세계경제를 움직이던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즉 최근까지 형성된 ‘글로벌 소싱’과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장기적으로 분해될 가능성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대지진으로 ‘일본의 힘’이 증명됐다고 얘기한다. 사실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에 피해를 입은 도호쿠 지역은 GDP가 일본 전체의 4%에 불과한 곳이다. 그러나 이지역이 멈춰 서면서 전 세계의 주요 산업이 멈춰 서는 결과를 빚었다. 전 세계에 ‘애플 쇼크’를 일으키며 순항하던 애플의 ‘아이패드2’가 일본산 부품을 구하지 못해 물량을 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애플은 배터리와 터치스크린 글라스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대만의 노트북 업체들도 고민을 안고 있다. 대만 업체들은 실리콘웨이퍼 등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노키아, 소니에릭슨 등 휴대전화 제조업체들도 일본으로부터 부품조달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일본의 자동차 기업들은 공장이 도호쿠 지역에 있든 없든, 올 연말까지도 생산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일본 밖에 있는 GM, 르노 삼성 등 그동안 일본산 자동차 부품을 사용하던 업체들이 생산에 큰 곤란을 겪게 됐다. 현재까지 부품이 남아 있는 업체들도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차량에 들어가는 2만여 개 부품 중 하나만 부족해도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고는 일본에서 났는데, 전 세계 대기업들의 공장이 멈추는 결과를 빚었다.

결국 전 세계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었던 셈이고 이 때문에 일본의 실력이 증명된 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는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일본 기업으로부터의 수입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일본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낮았던 현대-기아자동차나 한국 전자업체들은 생산에 그다지 큰 차질을 빚지 않았고, 오히려 점유율을 높이는 기회가 됐다. 사실 국적을 따지지 않고 전 세계에서 가장 싸고 품질 좋은 부품을 사들여서 물건을 만드는 이른바 ‘글로벌 소싱’은 전 세계의 상식이 됐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부품 공급 연쇄사슬인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산 부품을 줄이자고 ‘부품 공급선(수입선) 다변화’를 추진했던 그동안의 한국의 전략은 어찌 보면 생뚱맞은 것이었다. 실제로도 일본의 경제 관료들이 가장 견제했던 것이 한국의 수입선 다변화 전략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이런 ‘수입선 다변화’가 맞았던 것으로 증명됐다.

일본처럼 지속적으로 지진과 이에 따른 생산차질 위험이 있는 나라에서 일방적으로 부품을 수입하는 것이 위태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물론 전 세계가 일본에서 부품을 사온 것은 일본 제품이 경쟁력이 있어서다. 일부는 일본이 아니면 만들지 못하는 상품도 있다. 그러나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기업도, 다른 나라 정부도 생각할 것이다. ‘적어도 대체 부품을 다른 나라 기업에서 구입하든지 우리나라 기업에서 만들어야겠구나’라고 말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차츰차츰 대체부품 개발과 구입선 확대를 시작할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완전히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도로 일본기업을 이 체인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 다른 변수도 있다. 대지진과 쓰나미로 생긴 일본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그 자체로 세계경제를 변화시킬 것이다. 일단 현재는 원자력에너지가 가장 촉망받는 대안에너지라고는 하지만 앞으로는 좀 더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지속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구 소련의 체르노빌이나 미국의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건은 모두 아주 넓은 나라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이번 사고가 더 크게 벌어졌고, 도쿄가 방사능 낙진의 피해를 입는 위치였다면 일본은 나라 자체가 무너졌을 것이다.

현재도 일본의 식품이 수입 금지되고, 일본의 고철이 팔리지 않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한 달이 넘게 전 세계 뉴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일본의 기타 제품도 팔리기 힘들어질 것이다. 물론 실제로 방사선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에서 미국 쇠고기가 그랬듯이, 진실과 소비자의 심리와는 큰 관계가 없다. 한번 낙인이 찍히면 여파는 오래가는 법이다. 물론 일본은 내수도 강력한 나라지만, 이 경우 역시 일본인들이 마음놓고 자국산을 쓸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또 원자력발전소를 쓸 수 없게 되면서 일본은 심각한 전력부족에 시달리게 됐다. 에어컨 수요가 있는 여름이 되면 공장이 돌아가면서 쉬어야 한다. 우리가 1970년대까지 그랬듯이 ‘절전’을 넘어 ‘정전’이 이뤄질 것이다. 역시 일본으로부터의 안정적인 제품공급이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일본은 향후 침체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성장하는 국가라면 모르지만, 늙어가는 국가이므로 더할 것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어떨까. 세계 2~3위권의 일본 경제가 내리막을 걷는다면 물론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약점으로 여겨졌던 우리나라의 부품, 소재업체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 : 배진성
  • 2011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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