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하반기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글로벌 기업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이번 글로벌 위기는 2000년 초 IT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보다 기업 경영에 더 큰 충격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IT 불황 당시 글로벌 기업의 매출이 급감했던 본격적 충격기는 6개월, 최대 감소폭은 -4.1% 정도였는데, 현 위기의 경우 충격기가 1년이고 최대 감소폭도 -17.5%에 달해 충격의 기간(span)과 깊이(depth)가 모두 확대된 것으로 판명됐다. 기간(2배)×충격 강도(4배)=8배 이상의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핫 이슈] 글로벌 경제위기의 승자와 패자는?

2008년 하반기 시작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글로벌 기업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이번 글로벌 위기는 2000년 초 IT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보다 기업 경영에 더 큰 충격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IT 불황 당시 글로벌 기업의 매출이 급감했던 본격적 충격기는 6개월, 최대 감소폭은 -4.1% 정도였는데, 현 위기의 경우 충격기가 1년이고 최대 감소폭도 -17.5%에 달해 충격의 기간(span)과 깊이(depth)가 모두 확대된 것으로 판명됐다. 기간(2배)×충격 강도(4배)=8배 이상의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 중에서도 기업들의 투자 위축과 수요 감소로 에너지·철강·화학 등 중간재 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불황기에 소득이 감소하면서 수요 변동에 민감한 자동차·운송 업종의 전년 대비 매출 하락폭이 크고, 교역 감소로 무역 업종도 충격이 크다. 반면 방위산업, 헬스케어, 음식료, 통신 서비스 등 불황기에도 소비를 줄이기 어려운 업종은 상대적으로 선방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2009년 4/4분기를 지나면서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본격적인 회복세에 돌입했다. 특히 한국과 신흥국(BRICs) 기업들이 회복세를 견인하고 있으며, 금융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도 3.5% 성장률(2009년 4/4분기)을 기록하면서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1년이 조금 넘은 충격의 기간이었지만, 그사이 글로벌 기업들의 체질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됐다. 위기는 각국의 핵심적인 기업경쟁력을 여실히 노출시킨 계기이기도 했다.

한국 기업의 성적표는 훌륭한 수준으로, 주로 매출 10조 원 이상 기업(글로벌 1000대 기업에 해당)과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탁월했다. 2010년 1/4분기 실적으로 볼 때 삼성전자는 분기 영업이익 4조4100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하이닉스 반도체 역시 사상 최대 매출(2조8214억 원), 최대 영업이익(7991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은 8809억 원으로 사상 최대, 현대자동차는 판매 대수 25.7%, 매출 39.6%, 영업이익은 357% 증가했다. 대한항공 역시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의 실적을 실현했다.

중국 기업들의 실적도 양과 질 모두에서 단연 탁월했다. 대부분 신흥국들이 불황기에 성장을 크게 높였지만 글로벌 1000대 기업에 포함되는 기업들의 수 자체는 크게 늘지 않은데 반해 중국의 경우 2007년 글로벌 1000대 포함 기업이 24개 사였는데, 2009년 현재 40개 사로 급증했다. 중국 기업들은 최근 단순한 매출위주의 성장에서 탈피해 수익성을 고려한 ‘내실 있는 성장’을 통해 업계에서 위상이 향상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철도·에너지·철강·석유 등 국가 기간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 주가 되었는데, 최근에는 전자·운송·유통 등 새로운 업종에서도 중국 기업이 부상하고 있다. 범중화권 중에도 대만을 제외한 홍콩·싱가포르 기업들의 글로벌 1000대 기업 수가 크게 늘면서 업계 내 위상도 높아졌다.

미국은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나 제품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애플·구글·MS 등 혁신적인 기업들과 사우스웨스트항공·UPS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업계를 흔들었던 기업들이 경제위기 속에서 고성과를 냈다. 일본은 강력한 부품 제조 역량과 장인정신이 핵심경쟁력이라는 게 다시 확인됐고, 유럽은 신산업보다는 화학·의학·식료품 등 전통 영역에서 경쟁력을 유지했다. 신흥국은 에너지·통신·철강 등 국가 기간산업에서 독보적으로 내수를 점유하거나 풍부한 자원력으로 공급을 장악하며 과점적 지위를 확보한 기업이 두드러졌다.


기업 역량에 따라 불황기 대응방식도 달라야

기업별로 보면, 위기를 겪으며 눈에 띄게 하락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더욱 탁월한 실적을 달성한 기업도 나타나 명암이 뚜렷하게 엇갈렸다. 불황기에서 승자와 패자를 나눈 요인은 무엇일까. 기업의 불황기 승패의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눠보았다.

가속성장群은 호황기에도 고성과群(매출성장률과 영업이익률 모두 상위 50% 이내)에 해당되었는데, 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현격한 성장세를 실현한 기업. 이들은 경쟁사들이 불황의 충격으로 위축되어 있을 때 높은 산업 지위와 재무 유연성을 바탕으로 오히려 시장지배력을 강화해나갔다. 2000년대 들어 서비스 부문을 꾸준히 강화한 HP는 2008년 EDS를 인수해 하드웨어와 서비스를 포괄하는 회사로 완전히 변신했다. 불황기에 오히려 공격적으로 사업구조 변화 속도를 높인 것이다.

실적반전群은 호황기에는 저성과群에 들어 있었는데, 위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고성과群으로 반전한 기업이다. 불황으로 인한 산업 충격이 커서 업계의 판도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은 빠르게 재무 유연성을 확보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들의 특징은 ①어려움 속에서도 성장 동력을 보전하기 위해 전략적 비용절감 ②다각화된 포트폴리오로 불황 충격을 약화시킴 ③실적이 악화되어도 핵심 영역에 대한 투자 유지 ④실적 반전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고객가치를 제공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불황기 생존을 위해 2008년 전사적인 비용절감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절감할 비용을 먼저 계획하고 절감 아이템을 발굴하면서 비용절감뿐 아니라 새로운 수익원 발굴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게 한 것. 이 과정에서 와이어 사용량을 20% 절감하는 신공법을 개발해 월 수억 원의 원자재비를 절감했으며, 폐 웨이퍼를 재활용해 월 수십억 원의 추가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절감된 비용은 주력사업 추진에 필요한 추가적인 투자재원으로 활용돼 기술경쟁력 강화로 연결됐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2008년 2.9조 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상황에서도 매출의 10.8%를 연구 개발에 투자하며 기술력을 유지해 2009년 흑자전환을 할 수 있었다. US에어웨이(US Airways)는 경쟁사들이 원가절감에 집중하던 2008년, 수화물 처리 품질을 높이기 위해 휴대용 스캐너 시스템을 도입해 수화물 관련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역발상’에 바탕을 둔 차별적인 가치 제공이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황충격群은 높은 성과를 발휘하다 불황 이후 실적이 하락한 기업으로 자동차·철강·항공사·건설 등 불황의 충격을 강하게 받았던 산업에서 많이 나왔다. 이들의 특징은 ①외형 성장에 주력하다 불황으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자 사업을 축소하고 ②급격한 수요 감소에도 대응을 미루다 기회를 잃고 ③후발 기업의 저가 공세, 사건 사고 등 이중고에 시달리며 쇠락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지속하락群은 불황 이전부터 지속적인 실적 악화를 겪으면서 재무 유동성이 이미 악화되어 불황의 충격에 적절히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이다. 이들은 극심한 자금난으로 생존이 위협당하고 있는 상태. 운영 효율성이 낮고,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소홀한 바람에 불황으로 인한 소비 감소에도 대체 상품이나 시장을 통한 위기 극복이 불가능했다.

불황기에 운명이 엇갈린 기업들을 볼 때 불황의 충격이 클수록 위기와 기회도 동시에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이 위기 극복의 출발점. 모든 상황이 불확실한 불황기에는 의사결정이 지연되기 쉽지만 경쟁자보다 의사결정을 빨리 내려야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불황기 대응방식은 불황 이전에 기업이 갖고 있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①업계에서 시장지위가 높고 현금유동성이 충분하다면 운영 효율화를 통해 자금 여력을 보충한 후 공격적인 확장전략을 추진, 경쟁우위를 강화한다. ②시장지위는 강하지만 재무유연성이 약하다면, 운영효율화뿐 아니라 비주력사업 매각 등을 통해 유동성을 빠르게 확보하는게 시급하다. 이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확장전략을 추진한다. ③시장지위는 약하고 재무유연성이 강하다면 운영효율화를 통해 자금여력을 보충한 후 새로운 시장으로의 투자 확대를 모색하고 ④시장지위도 재무유연성도 약하다면 운영효율화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빠른 시간 내에 재무유연성을 확보한 후 이를 바탕으로 현재 영위하고 있는 사업과 시장 안에서 전략적 자원 재배치를 하면서 새로운 사업/시장으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일러스트 : 배진성
  • 2011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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