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신임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된 김중수 OECD 대사가 귀국하자, 기자들이 공항까지 찾아갔다. 그는 공항에서 “시장이 평가하는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를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이 한마디에 시중금리가 크게 흔들렸다. 일거수일투족에 시장이 흔들릴 정도로 한국은행 총재가 그렇게나 중요한 자리일까?">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금리를 둘러싼 정부와 한국은행 사이 신경전

지난 3월 말 신임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된 김중수 OECD 대사가 귀국하자, 기자들이 공항까지 찾아갔다. 그는 공항에서 “시장이 평가하는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를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이 한마디에 시중금리가 크게 흔들렸다. 일거수일투족에 시장이 흔들릴 정도로 한국은행 총재가 그렇게나 중요한 자리일까?
미국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은 이보다 훨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국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으로 경기를 조절하기 때문에 금리가 가장 중요한 경제 요인이 되는 이른바 ‘금리국가’다. 한데 우리나라는 다르다. 물론 장기적인 금리는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보다 더 직접적으로 경기와 GDP에 영향을 주는 것은 ‘환율’이어서, 우리나라는 ‘환율국가’로 알려져 있다.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높고, 해외에서 자원을 들여와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의 가장 큰 관심사는 환율인데, 굳이 영역을 따지자면 환율은 한국은행보다는 정부의 영역이다. 또 한국은행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강해 한국은행이 정부에 쓴소리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물가안정 정책을 펴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한은의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은행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일단은 가계 부채가 많아지면서 금리가 오르면 바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됐다. 가계의 부담이 커지면 바로 소비와 내수가 위축된다. 고금리 시절에는 금리를 1%포인트 정도 올리거나 내려봐야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저금리 상황에서는 다르다. 금리 9%에서 7%로 떨어지는 것과 3%에서 1%로 떨어지는 것은 다르다. 그러니 정부도 한국은행이 결정하는 금리 수준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서서히 ‘금리국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정부 입장에서는 저금리를 바란다. 저금리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야 소비가 살아나고 경기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선거를 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봐야 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몫이다. 사실 경기는 호경기와 불경기 사이클을 타게 마련이다. 이 사이클을 거슬러서 호경기를 지속시키려고 지나치게 돈을 많이 풀면 이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으로 이어져 서민에게 타격을 주고, 더 지속될 경우 이른바 ‘거품’으로 이어져 더 큰 자산가격 폭락이나 장기침체, 혹은 공황으로 연결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다.


금융위기 낳은 저금리 정책

중앙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지나치게 써서 문제가 생긴 가장 좋은 예로는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앨런 그린스펀이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만 16년간 FRB 의장을 맡았다. 그린스펀은 초기만 해도 정부에 맞서 인플레를 막아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일어났던 이른바 ‘닷컴버블 붕괴’ 이후였다. 저금리로 불경기에 빠진 경제를 일단 살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린스펀은 그 이후 경기 회복기에도 저금리를 유지했다. 그린스펀이 퇴임할 때까지만 해도 저금리를 유지하면서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른바 ‘골디락스’ 호황이 이어지자 모두 그린스펀을 ‘금융 마에스트로’라며 칭송했다. 중국이라는 저임금 국가가 등장해 전 세계의 인플레를 막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금리정책이 필요 없게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저금리로 넘쳐난 자금이 각국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버블을 만들었고, 이 버블은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무너져 내렸다. 금리를 올릴 타이밍에 터진 9·11 동시다발 테러로 저금리가 지속됐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지만, 결국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는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이 잉태했다는 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사실 지난번 닷컴버블 이후의 회복 과정에서 이번 금융위기의 싹이 텄다면, 이번 금융위기의 회복 과정 역시 문제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하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다시 평상시 금리로 복귀하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이것이 이른바 ‘출구전략’ 문제인데, 결국 이것을 결정하는 한 축이 한국은행 총재의 몫이 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현 정부도 다른 나라 정부와 마찬가지다. 일단은 금리를 낮은 상태에 두고 싶어 한다.

정부 일각에서 ‘경기가 다시 한 번 침체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잘못해서 금리를 미리 올려버리면 기껏 살아나는 경기가 금세 다시 죽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거품 조짐이 없으니 경기가 완전히 살아나는 것을 보고 올려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전임 이성태 한은 총재는 한은 내부 출신으로 물가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중앙은행의 논리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이른바 ‘매파’였던 셈이다. 금융위기 후에도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를 늦췄다. 정부 입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언제 금리를 올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과 벤 버냉키 FRB 의장이 협조하지 않느냐”고 저금리 정책에 협조해줄 것을 주문했다. 정부는 이에 더 나아가서 지난 1월부터는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기획재정부 차관을 참석시켜 발언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에 본격적으로 간섭하는 ‘관치금융’이란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이를 강행할 만큼 절실했던 모양이다. 이성태 총재 후임으로 한은 출신 대신 정부의 경제수석을 지낸 김중수 신임 총재가 임명된 것은 이런 상황에서 해석된다.

정부 출신 인사가 한은 총재가 된 만큼 독립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기보다는 정부와 보조를 맞춰 최대한 경기 부양을 우선시할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정부와 보조를 맞출 것으로 기대되던 김 신임 총재가 공항에 내리자마자 “시장이 평가하는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를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는 “모두 내가 정부에 협조해 금리를 동결할 거라 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으니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돼 시중금리가 미리 뛰어오른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 열린 첫 번째 금통위에서 김 신임 총재는 금리를 동결, 시장의 예상을 벗어나진 않았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저금리가 좀 더 지속된다는 가정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향후 금리는 오를 것이고, 그것은 시간문제라는 점도 기억해두자. 이미 몇몇 나라들이 금리를 올리고 있고, 우리도 3분기 금리 인상을 점치는 전문가가 많다. 금리가 오를 경우 채권형 펀드는 손해를 본다. 금리가 올라가면 주식은 악재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금리가 오르는 초기는 역설적으로 경기가 확실히 좋아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주가도 급등하는 경우가 많았다.
  • 2010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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