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동안의 위기설만 따져 보면 우리나라는 벌써 몇 번을 망하고도 남았다. 우선 지난해 초에는 “3월에 일본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국가 위기가 올 것”이라는 위기설이 나왔다.
3월이 지나갈 때쯤엔 “5월에 더 많은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니 5월이 진짜 위기다”는 말이 나왔고, 좀 후엔 “아니다. 6월 말에 외국 금융기관이 결산하면서 한국에서 돈을 빼 갈 것이므로 6월 말이 위기다”는 말이 나왔다.
7월 위기설, 8월 위기설도 있었고, 9월에는 외국인 보유채권 만기가 돌아온다는 ‘9월 위기설’이 만연했다. 10월에는 국가부도설이, 11월엔 외국 헤지펀드들이 돈을 뽑아 내가 한국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11월 위기설, 그리고 12월에도 역시 외국 금융기관들이 돈을 뽑아 가면서 환율이 폭등하고 기업들은 대거 환차손으로 도산하고, 한국은 결국 망할 것이라는 12월 위기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의 한 논객은 12월에 주가가 50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얘기했고, 물가가 폭등할 것이니 생필품 사재기를 해놓으라고까지 주장했었던가.">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 없던 위기도 불러오는 위기설

지난 한 해 동안의 위기설만 따져 보면 우리나라는 벌써 몇 번을 망하고도 남았다. 우선 지난해 초에는 “3월에 일본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국가 위기가 올 것”이라는 위기설이 나왔다.
3월이 지나갈 때쯤엔 “5월에 더 많은 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니 5월이 진짜 위기다”는 말이 나왔고, 좀 후엔 “아니다. 6월 말에 외국 금융기관이 결산하면서 한국에서 돈을 빼 갈 것이므로 6월 말이 위기다”는 말이 나왔다.
7월 위기설, 8월 위기설도 있었고, 9월에는 외국인 보유채권 만기가 돌아온다는 ‘9월 위기설’이 만연했다. 10월에는 국가부도설이, 11월엔 외국 헤지펀드들이 돈을 뽑아 내가 한국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11월 위기설, 그리고 12월에도 역시 외국 금융기관들이 돈을 뽑아 가면서 환율이 폭등하고 기업들은 대거 환차손으로 도산하고, 한국은 결국 망할 것이라는 12월 위기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의 한 논객은 12월에 주가가 50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얘기했고, 물가가 폭등할 것이니 생필품 사재기를 해놓으라고까지 주장했었던가.
2009년이 밝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월과 2월에 걸쳐 주식시장에서 배당받은 외국인들이 대거 한국을 탈출해서 위기가 올 것이라는 위기설도 있고, 일본계 금융기관들이 결산기를 맞아 자금을 회수하며 외환위기가 올 것이라는 ‘3월 위기설’도 있다. 경제위기설은 말 그대로 ‘설’일 뿐이고 정부나 일반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제의 약점을 들춰내 보완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데, 이른바 ‘말이 씨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IMF 쇼크 때까지 이렇다 할 위기설이 없었다. 실제로 그때까지 논스톱 성장곡선을 그려 왔기 때문에 여러 학자들을 중심으로 외채문제를 걱정은 해 왔지만 국가부도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IMF 사태가 벌어지자 그 다음부터 위기설 같은 것이 크게 화제가 됐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쌍용증권 이사로서 IMF쇼크를 예견했던 스티브 마빈의 위기설이다.
당시 그는 주가 100선도 무너지고 한국은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원래 위기설은 이른바 ‘선진국’에서라면 기껏해야 은행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기업들이 대규모 도산하는 사태를 맞는다는 정도의 얘기다. 사실, 이런 얘기라면 그 끝에는 ‘파국’이 없다. 경제는 순환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라면 다시 복원력을 가지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우가 좀 다르다. 외환위기설이라는 것은 곧 국가부도와 비슷한 사태를 의미하는데, 한번 부도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다. 개인이 파산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듯이, 국가 역시 마찬가지로 그때까지 쌓아올렸던 신용이 사라지고, 그 이후에는 국제적으로 자금 조달 자체가 힘들어진다(IMF쇼크 이후 우리나라가 빠르게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IT정보기술 버블로 전 세계가 호황이었다는 행운이 따랐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위기설을 보듯이 우리나라의 위기설을 볼
수 없는 이유다. 파괴력이 크게 다르다.

이런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일본에서부터 탄생한 ‘3월 위기설’이다. 정부와 대부분의 기업이 매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결산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은 정부를 비롯해 대부분 기업들이 3월 말을 기준으로 결산한다.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버블경제가 붕괴하는 바람에 기업들 도산이 줄을 이었고 이 때문에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많이 생겼다. 이런 은행들은 결산기가 돌아오면 부실채권을 줄여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들로부터 돈을 회수해 가고, 이 때문에 일본 내의 많은 기업이 도산할 것이라는 ‘3월 위기설’이 2000년대 초부터 매년 일본 언론지상을 장식했다. 그러니 ‘3월 위기설’은 원래 일본의 위기를 말하는 얘기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로 들어오면 외환위기설로 바뀐다. 일본 은행들이 한국에서 돈을 뽑아 가 외환이 부족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로, 사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일본의 투자자금이 극히 적음에도 매년 초만 되면 일본에서 수입된 3월 위기설은 우리나라에서 ‘한국의 위기’로 더욱 맹위를 떨친다. 이런 위기설은 국내시장에선 기업의 자금조달 위기설과 비슷하다. 멀쩡한 기업도 자금이 부족하다는 소문이 돌면 금융기관이 일제히 꾸어 줬던 돈을 흡수해 가 버리기 때문에 이른바 ‘흑자도산’이 나는 경우가 있다.


위기설 대응하느라 달러 사재기 나서면 진짜 위기 올 수도

국제금융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나 어떤 나라가 자금사정이 어렵다고 하면, 일제히 그 나라에서 돈을 빼 가기 때문에 멀쩡한 나라도 외환위기를 맞는 경우가 생긴다. 해외의 이른바 헤지펀드들이나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정밀한 정보를 가지고 투자할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설령 펀드 매니저들이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이 신문지상에서 ‘한국이 무너질 것 같다’는 정보를 접하고 한국투자펀드에서 돈을 빼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자금사정이 나빠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소문을 만드는 것이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위기설이다. 특히 외신들이 이런 정보를 검증 없이 싣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되고, 한국도 작년 10월말 실제 이런 위기를 겪었다. 물론 한국이 이런 대상에 오르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외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해야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는 구조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외채가 기본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고, IMF의 전력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해외 언론들이나 기타 투자자들이 지적한 문제들은 기본적으로 시중에서 떠돌던 위기설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라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위기설은 개인 차원에서도 큰 고민을 가져온다. 국가가 부도나는 상황을 가정하면 개인은 달러 사재기와 자산 매각, 주식시장에서는 선물 매도 등에 나서야 하는데, 어느 것이건 국가나 시장 전체를 볼 때 마이너스가 되는 일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경우 ‘죄수의 딜레마’라는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두들 다른 사람을 믿고 이른바 ‘개인 플레이’에 나서지 않으면 모두가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일부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달려가면 나머지 사람이 큰 피해를 보고 결국은 공멸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확실히 경제가 튼튼한 상황이라면 위기설은 보약이 되지만, 실제로 흔들리는 상황에서의 위기설은 결국 게임이론이 적용되는 상황을 만들고, 종국에는 공멸로 갈 수도 있다는 논리다.

물론 위기설을 없애는 방법은 위기설이 될 만한 상황을 미리 없애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설은 경상수지 흑자를 내는 방법으로 극복이 가능한데, 경상수지는 무역수지와 여행수지 등 무역외 수지로 나뉜다. 개인 차원에서 볼 때 달러를 아껴 쓰는 게 결국은 전체 경제 시스템을 지키는 길로 이어진다는 지극히 고풍스러운 결론이 나온다.

경제 전문가들은 위기설이 진짜 현실이 될 가능성에 대해 “대단히 희박하다”고 말한다. 어떤 식으로 계산해 봐도 우리나라가 써야할 돈보다 가지고 있는 돈이 많다는 것이다. 다만, 그러려면 한 가지 전제가 있는데, ‘외환보유고가 줄어들어도 당황하지 않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계산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외환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 ‘위기설’이 퍼지면서 개인들이 달러 사재기에 나서고, 이를 본 해외 투자자들이 여기저기 박아 놓았던 자산을 찾아가기 시작하면 진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년 10월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듯이 말이다.
  • 200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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