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2008년을 보내고 2009년은 좀 희망차게 출발하고 싶었건만, 여지없이 중동에서 사고가 터져 버렸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미 사상자만 2000명을 넘어서고 있다니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증시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시장 조정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정영완의 투자 키워드 | ‘지정학적 리스크’가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 줄까?

힘든 2008년을 보내고 2009년은 좀 희망차게 출발하고 싶었건만, 여지없이 중동에서 사고가 터져 버렸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미 사상자만 2000명을 넘어서고 있다니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증시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시장 조정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우선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중동 불안 = 유가의 장기적 상승’이라는 당연해 보이는 공식이 사실과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중동 불안 때문에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후 장기간 유지된 경우는 많지 않다.

1980년대 내내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을 벌였지만 국제 유가는 전쟁이 끝난 1988년까지 ‘반토막’이 됐다.

세계 원유생산량 1위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쿠웨이트, 이라크 등 3개 주요 원유생산국들이 실질적인 전쟁터로 변했던 걸프전의 예를 살펴보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후 다국적군이 행동을 개시하기까지 1990년 8~11월에 국제 유가는 급등했지만, 걸프전 이후 국제 유가가 정상을 회복하는 데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단어가 증권사 투자전략가들에게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을지언정 실제 장기적인 투자수익과는 별
관계가 없었던 예는 수없이 많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던 2003년, 많은 투자전략가들은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단어를 거의 입에 달고 다녔으나, 2003년 코스피지수는 오히려 30% 가량 상승하여 장기상승의 초석을 다졌다.

필자가 생각하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하나의 사건을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하여 투자심리를 ‘극단적’으로 몰고 가려 한다는 점이다. ‘중동에 사건발생 → 자동적인 원유공급 차질 → 유가폭등 → 경기침체 → 주가폭락’의 시나리오가 좋은 예다. 그러나 중동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원유공급에 장기적인 차질이 생기고 유가가 폭등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두 번째 공통점은 투자전략가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언급하는 시기는 대체로 주가가 이미 많이 하락하여 투자 심리가 극도로 불안할 때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세 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대체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어 주가가 하락할 때는 장기투자자가 매수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투자기회가 되어 왔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변수 중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변수를 들라면 ‘경기’와 ‘유동성’을 들 수 있다. 누가 생각해 봐도, 1~2년을 두고 지속적으로 세계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흔하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닥권에서 주식을 팔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거론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물론, 대부분 그 사람들 주장과는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장기적인 수익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글쓴이 정영완님은 1995년부터 삼성증권에 근무하고 있다. 35세 때 최연소 지점장으로 발탁됐고, 삼성증권 영업지원파트장을 거쳐 현재는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장을 맡고 있다. 2001년, 2007년 매경 증권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정영완의 톱다운 전략》 《명품 투자학》이 있다.
  • 200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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