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세계경제는 그야말로 태풍 속이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달러 구하기 전쟁을 벌였고 많은 나라가 부도위기 직전에 몰렸다. 이 중 일부는 IMF 지원을 받았고,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를 통해 일단 위기‘설’을 한고비 넘어갈 수 있었다. 잘 생각해 보면 다소 이상한 점이 있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그리고 미국과 거래가 많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넘어지는 것을 보면 선진국도 후진국도 아닌 신흥국가들이다. 그 와중에 서러운 꼴을 겪은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은 1997년에 IMF 쇼크를 겪고 2000년대 들어와서는 신용카드 쇼크를 겪어, 다른 나라처럼 흥청망청 살아 본 적이 없다. 한국은 지난 10년 내내 내수 불황이었고, 모든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상시 위기경영을 펼쳤다.">

알기 쉬운 경제 이야기 | 경제를 움직이는 외교의 힘

지난 10월, 세계경제는 그야말로 태풍 속이었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달러 구하기 전쟁을 벌였고 많은 나라가 부도위기 직전에 몰렸다. 이 중 일부는 IMF 지원을 받았고,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를 통해 일단 위기‘설’을 한고비 넘어갈 수 있었다. 잘 생각해 보면 다소 이상한 점이 있다. 이번 세계 금융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다. 그리고 미국과 거래가 많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그런데 넘어지는 것을 보면 선진국도 후진국도 아닌 신흥국가들이다. 그 와중에 서러운 꼴을 겪은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은 1997년에 IMF 쇼크를 겪고 2000년대 들어와서는 신용카드 쇼크를 겪어, 다른 나라처럼 흥청망청 살아 본 적이 없다. 한국은 지난 10년 내내 내수 불황이었고, 모든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상시 위기경영을 펼쳤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독일보다 훨씬 많고 외환보유고 대비 단기외채의 비중은 일본이나 홍콩 등보다 훨씬 낮아 건전하다. 그런데도 외국 언론들은 입을 모아 한국이 위험하다고 합창했다. 이런 데는 외국 언론의 한국에 대한 무지나 편견, 그리고 그것을 시정해 주지 못한 정부의 문제도 있지만, 그 이전에 적어도 자신들에게는 이런 외환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점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사실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가장 먼저 극심하게 비판한 영국의 경우, 외채가 10조 달러에 이르고 외환보유액은 722억 달러에 불과하다. 작년 경상수지 적자가 1152억 달러이다. 그런데, 이런 영국은 어떻게 외환위기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이번 경제위기를 계기로 대단히 극명하게 부각된 것이 있는데, 결국 위기의 순간에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외교력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신청에 들어가고 금세 세계에는 달러가 돌지 않게 됐다. 어느 금융기관이 파산할지 모르니 일단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돈을 챙기고 빌려 주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전 세계가 모두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었는데,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곧 ‘스와프 한도 확대’란 결정을 내렸다. 스와프란 두 나라가 일정한 환율로 자국 화폐를 교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화를 맡기고 달러화를 빌려 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대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달러가 부족하다면 우리나라에서 한국은행이 원화를 찍어 낸 뒤 미국 중앙은행(FRB)에 가서 달러로 바꾸면 그만이다. 달러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원천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일이다. 말 그대로 흥청망청하는 나라가 스와프 협정을 믿고 계속 자국 화폐를 찍어 낸 후 달러로 바꿔 간다면 이것은 달러화 가치도 문제이고 인플레이션도 일으킨다. 만약 달러를 다시 갚지 못한다면 미국은 창고에 쌓인 그 나라 화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래서 미국이 맺은 통화 스와프 협정은 대부분 금액에 한도가 있었고, 그 대상도 세계에서 결제기능을 가진 널리 쓰이는 화폐들만이었다. 예를 들어 유로나 파운드, 엔화는 국제시장에서 화폐로 통용될 수 있기에, 그 나라가 달러를 되갚지 않더라도 국제시장에서 이들이 맡겨 놓은 자금을 팔아 달러를 보충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원화는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달러화 기근이 계속되자 기존 스와프 협정을 맺은 나라에 대해서는 아예 한도를 없애고, 무제한 달러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자 세계는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이는데, 그건 그 차별성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 통하는 강대국은 국가부도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지만, 반대로 새로운 세계 성장 동력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신흥시장들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높아진 것이다.

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 다음에 위험한 곳이 어디인지 찾아다니게 되는데, 그 타깃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이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위험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모든 해외 금융기관이 한국에 달러 현금을 요구하면 버텨 나가기 힘든 상황이 올 수 있었다. 신흥시장들은 이 때문에 여러 가지 대응을 시작한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 우크라이나, 헝가리 등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한국도 경험해 봤지만, IMF는 돈을 꿔 준 다음엔 해당 국가에 고금리 정책을 요구한다. 고금리 정책을 펴면 높은 이자를 노리는 해외 자금이 들어온다는 논리며,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외환위기를 돌파했다. 그런데 이자를 높이면 불황이 계속되고, 이자를 내지 못한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이 늘어나는 고통이 발생한다. 역시 우리도 이를 경험했다. 사실 이 나라들이 이런 IMF의 득실을 알고 있었을지는 미지수지만, 다른 길을 찾지 못한 나라들이다.


전략적 거점인 한국과 통화 스와프 결정한 미국

사실 흥청망청 돈을 써 댄 나라들이야 억울할 것도 없지만, 비교적 건전한 상황에서도 달러가 금융기관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위기에 몰린 신흥국들의 불만은 컸다. 신흥국들은 G20 등의 회의에서 선진국들끼리만 하는 스와프 협정을 신흥국가들에게도 적용해 달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처음에 선진국들은 얼토당토않다는 반응이었다.

선진국들이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그 다음에는 지역적으로 해결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한-중-일이 아시아에서 기금을 만들자고 한다든가, 아니면 러시아 등이 자국 화폐로 결제하자는 움직임이 나왔다든가 하는 게 대표적인 얘기다. 그러나 이런 지역의 경우 거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역사적으로 주도권을 쥐려는 알력이 있던 경우가 많아 일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 다음에 나온 것이 IMF의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신흥국들의 반발이 심하자 결국 미국 대신 IMF를 통해 통화 스와프를 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IMF가 그 나라 통화를 받고 달러를 빌려 주는 역할을 맡는다. 다른 통화 스와프와 마찬가지로 돈을 가져가는 국가에 대해 별다른 정책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채로도 안 잡힌다. 다만 IMF라는 기구 자체도 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은 위험요소다. 결국 IMF란 게 여러 나라들의 분담금을 가지고 만든 것인데, 빌려 줄 수 있는 돈은 한도가 있고, 현재 위기에 몰린 국가는 한두 나라가 아니다.

사실 한국 입장에서는 돈이 필요 없더라도 이 프로그램에 전략적으로 가입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었지만, 일부 외신에 한국이 이 프로그램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한국 내에선 제 2의 IMF가 온다는 소문 때문에 금융시장이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순전히 오해지만 ‘괴담’으로 발전할 경우 쓸데없는 국력 소모가 극심할 것이 뻔했고 정치적인 부담도 됐다.

결국 한국은 미국과의 직접 통화 스와프를 텄다. 10월 30일 멕시코, 브라질, 싱가포르와 함께 300억 달러짜리 계약을 체결했다. 원래 한국은 미국의 스와프 대상이 아니다. 한국 원화가 국제결제 화폐도 아니고, 다른 나라들처럼 ‘최고 신용등급’을 가진 것도 아니다. 사실상 몇 나라만 콕 찍어 엄청난 특별대우를 해 준 것인데, 이게 가능했던 것은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아시아 거점국가이고 한국이 망하지 않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상 아직 한국이 필요하다는 얘기고, 미국이 실질적으로 한국의 생존을 보증했다는 얘기다. 뒤집어 보면 외교가 나라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얘기도 되고, 아직 우리나라의 실력이 외교를 통해서 생존을 도모해야 할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도 된다.
  • 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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