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이 함께 쓰는 가계부 ⑧ 돈 없으면 은행 기계에서 꺼내면 되잖아?

예진이가 일곱 살 때 이야기다. 아직 경제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한번은 마트에서 갑자기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다. 나는 “그건 너무 비싸. 그렇게 비싼 것을 사줄 만큼 돈이 없단다” 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예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 은행 가서 돈 꺼내면 되잖아?” 하는 것이다. 순간 난 많이 당황했다. 그동안 아이에게 무심코 은행 ATM기기에서 돈 꺼내는 모습만 보여줬지,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왜 은행에 보관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지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돈이 은행 기계에서 꺼내기만 하면 되는 물건으로 인식했었나 보다.


문명의 이기가 발전하면서 오히려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조차 기회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신용카드가 일상화되면서 뭐든 원하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할 위험까지 생겨난 것이다. 돈을 버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은행은 돈을 보관하는 곳이지 우리에게 이유 없이 돈을 주는 곳이 아니란다. 그러니까 엄마가 은행의 기계에서 꺼내는 돈은 사실은 엄마 아빠가 힘들게 일해서 회사 사장님으로부터 받은 거야. 우리는 그 돈으로 쌀도 사고 반찬도, 옷도 사는 거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집도 바로 그 돈을 있는 대로 다 써버리지 않고 남겨서 모은 돈으로 산 거야.”

“왜 은행에 보관하는 건데?”

“돈을 쌓아 두고 있으면 도둑맞을 수도 있고 보관하기 불편하잖아. 서랍에 넣어 두자니 서랍을 열었을 때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와 돈이 날아가 버리면 어떡해? 그렇다고 지갑에 몽땅 넣어 가지고 다닐 수도 없잖아? 무거워서 들고 다닐 수도 없고. 그러니까 은행에 맡겨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것이 편리하잖아. 은행은 우리 돈을 안전하게 보관해 주는 곳이야.”

“내 보물 상자에 보관하면 안전할 텐데….”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은행은 보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 돈을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 주기도 해. 그렇게 돈을 빌려 가고 나서 한참이 지나면 그 사람이 돈을 갚으러 오잖아. 갚을 때는 고맙다는 표시로 빌린 돈보다 더 많이 은행에 주거든. 그러니까 엄마가 저번에 급해서 예진이가 설날에 받은 돈 잠시 빌려 쓴 적 있잖아. 엄마가 다시 되돌려 줄 때는 예진이에게 더 줬지? 바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 사람도 갚을 때는 그렇게 돈을 더 주지.”

예진이는 엄마에게 세뱃돈 10만 원을 잠시 빌려 주고 1000원을 이자로 받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은행은 돈으로 돈을 버는 거네.”

예진이는 세뱃돈을 엄마가 빌려 가는 것에 대해 내심 불안해했다. 그 불안을 달래 주기 위해 돈으로 돈을 버는 거니까, 불안하고 잠시 서운한 것은 참아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지? 그런데 은행은 그렇게 번 돈을 다시 엄마가 맡긴 돈을 찾을 때 조금 나눠 줘. 엄마가 맡긴 돈으로 돈을 번 거니까 나눠 주는 것이 당연하겠지? 아마 예진이 보물 상자에 넣어 두면 그렇게 돈으로 돈을 벌 수는 없겠지. 그래서 우리는 은행을 이용하는 거란다.”

그 뒤로 예진이는 돈이 생기면 은행에 맡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글쓴이 제윤경님은《아버지의 가계부》,《불행한 재테크 행복한 재무설계》,《부자들의 행복한 가계부》등의 저자이며 현재는 어린이 경제교육을 하는 (주)에듀머니 대표이다.
  • 200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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