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투자가들 | 버핏의 오른팔 찰리 멍거(Charlie Munger)

‘세상 보는 지혜부터 갖춰라!’

“한국의 발전은 믿을 수 없을 정도예요. 놀랍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같아요. 과거 한국인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라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해 잘 압니다. 한국은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해요.”

찰리 멍거의 한국예찬론(2007년 버크셔 헤서웨이 주총 기자회견 때)이다. 그는 월가 최고의 투자전략가 중 한 명이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투자자로 손꼽히는 워렌 버핏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분신이며, 동시에 책사(策士)다. 멍거는 워렌 버핏이 회장으로 있는 버크셔 헤서웨이의 부회장이다. 오늘날 이 회사를 세계 최고의 투자그룹으로 키운 일등공신답게 명성이 높지만, 회사 주총 때만 버핏과 함께 얼굴을 내비칠 뿐 공식석상엔 잘 참석하지 않아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멍거는 2인자다. 때문에 1인자인 버핏의 그늘에 늘 가려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도 이걸 원하고, 또 즐긴다. 하지만 그는 일인자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2인자다. 버핏이 대외활동에 나설 때 멍거는 회사 살림을 도맡는다. 월가 언론은 이들을 “궁합이 척척 맞는 둘도 없는 동지”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이들은 철저한 팀플레이를 지향한다. 버핏이 하나하나 챙기는 어머니 스타일이라면 멍거는 존재만으로 믿음을 주는 아버지 같다. 주총 때를 비롯해 인터뷰 진행 과정만 봐도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대개 버핏의 답변은 길고 거침없으며 투박하다. 그런 후 옆자리의 ‘찰리’를 찾는다. 그러면 멍거는 자연스럽게 1인자의 답변을 거든다. 정곡을 찌르는 추가답변 아니면 “할 말 없다”의 둘 중 하나다. 1인자를 부각시키면서 답변의 완성도도 높이기에 제격이다. 굳이 나누면 버핏은 달변이고 멍거는 눌변에 가깝다.

멍거와 버핏은 1959년 지인의 소개를 통해 처음 만났다. 둘은 고향이 오마하로 같다. 멍거는 버핏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식료품 가게에서 일한 적도 있다. 멍거는 1924년, 버핏은 1930년에 태어났다. 멍거는 일찍부터 천재성을 발휘하며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어린 시절 버핏이 투자에 일가견을 발휘하는 동안 멍거는 공부 잘하는 천재로 유명했다. 미시간대를 졸업하기도 전에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 엘리트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멍거는 자신이 세운 ‘멍거 톨슨 앤드 올슨’이란 부동산법률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지인관계였다. 그러다 1965년 버핏의 조언을 듣고 투자전문가로 나섰고, 1969년 버핏이 세운 버크셔 헤서웨이에 합류함으로써 한배를 탔다.

멍거의 투자 원칙은 버핏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버핏의 투자전략이란 게 애초부터 멍거와 말을 맞춘 결과인 까닭에서다. 따라서 멍거도 저평가 우량주를 일찍 발굴해 제값을 받을 때까지 장기간 보유한다는 가치투자에 100% 동의한다. 멍거는 버핏보다 조심스럽다. 버핏에 비해 위험은 더 챙기고 기대는 더 낮추는 신중론자다. 가령 버핏이 투자후보를 열 군데 정도 결정해 멍거에게 맡기면 그는 그중에서 두세 개에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정도다.

멍거는 “투자할 땐 늘 위험부터 고려하라”며 “위험한 투자를 해야 한다면 걸맞는 투자수익을 고집할 것”을 권한다. 투자수익의 잣대가 되는 인플레나 이자율도 위험요소로 간주한다. 특히 파생상품은 ‘대량살상용 시한폭탄’으로 비유할 만큼 깎아내린다. 수급에서 벗어나 투기세력에 의해 가격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둘은 닮은꼴도 많다. 엄청난 독서광이자 사색가들이다. 뭔가를 읽고 생각하는 걸 좋아한다. 독서량으로 보면 용호상박이 따로 없다. 멍거의 얘기다. “버핏과 나에겐 확실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바쁜 스케줄을 싫어한다는 점이죠. 단지 앉아서 읽고 또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어요. 분명 다른 비즈니스맨들과 다른 점이죠.”

폭넓게 읽고 생각하되, 행동은 단순 명쾌한 걸 지향한다. 멍거는 성공투자를 좌우하는 건 오직 지식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어렵고 복잡하지는 않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명확한 입장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권한다. 다만 그는 만물박사란 별명답게 다양한 분석 틀을 동원해 투자방침을 세운다. 경제, 경영학은 물론 심리, 생물학까지 차용한다. 버핏이 멍거를 만나기 전에는 회사가치보다 싸면 무조건 샀는데, 그를 만난 후부터는 가격(Price)과 가치(Value)의 적정 여부에서 한 발 나아가 미래가치까지 반영하게 됐다고 한다. 뛰어난 회사를 고르는 눈이 한층 정밀해진 셈이다.


독서로 쌓은 통찰력이 투자 비결

실제로 멍거의 지적수준은 대단하다. 세상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인지 거의 모든 사회현상과 주제에 정통해 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상을 보는 지혜(Worldly Wisdom)’를 언급한다. 증권가에 떠도는 그때그때의 분석보고서보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철학과 역사서적에서 결정적인 투자 실마리를 찾으라는 조언이다. 그에 따르면 시각을 넓히는 데는 독서만한 게 없으며 독서야말로 분석기술을 결정적으로 향상시킨다. 때문에 학위와 투자지혜는 무관하다는 쪽이다. 대학교육이란 게 너무 지엽적이고 편협한 문제만 가르쳐서다. 지혜를 얻자면 스스로 길을 찾아 떠나는 수(독학)밖에 없다. 이럴 때 책은 내비게이션으로 제격이다.

한편 증권가에 떠도는, 이른바 ‘돈 버는 재무공식’은 그의 관심 밖에 있다. “주식투자의 성공비결은 복잡한 재무공식이 아닌 기업에 대한 철저한 가치분석과 상식, 그리고 신뢰”라고 못 박는다. 때문에 주식매수나 기업인수와 관련된 의사결정은 대단히 짧고 명쾌하다. “후보군에 오른 기업 중 미래가치에 믿음이 가면 남은 건 악수와 사인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어렵고 복잡한 공식은 보통사람들을 겁먹게 하는 것일 뿐”이라며 “나 자신도 정확한 산술 도식은커녕 개념조차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이 밖에도 고령의 투자대가가 내놓는 성공지침은 다양하다. 평균적인 수익밖에 거두지 못하는 대세추종적인 투자보다는 자신의 의지에 따른 독립적인 역발상 전략을 추구할 것을 권한다. 역발상은 끊임없는 독서를 통한 통찰력으로 가능하다. 모르는 걸 인정하는 게 지혜의 시작인 것처럼 지적 겸손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잘 아는 분야를 파되 자신을 속이지는 말라는 메시지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상승세를 유독 경계했다. “당신이 연못 속의 오리라면 폭우가 쏟아질 때 점점 위로 올라가게 됨을 느낄 것”이라며 “하지만 이때 정말로 올라가는 건 연못의 물이지 당신이 아니다”라며 착각하지 말고 겸손할 것을 가르친다.

“세상을 당신에게 맞추지는 말라”며 “늘 도전하고 수정함으로써 변화와 더불어 살라”고 했다. 펀드에 대한 가르침도 빠뜨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펀드의 속임수에 속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의 말이다. “운용사는 늘 최고 실적을 낸 펀드만 강조해 마케팅에 사용하죠. 속지 않으려면 매년 초 해당펀드의 1달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연도별로 계산해 비교하면 좋아요. 그러면 평범한 사람도 안목이 생기죠.”

그는 한국 주식에 대한 식견도 남다르다. 버핏이 주저할 때 포스코 매수를 권유해 대박을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국영기업이었던 포스코의 훌륭한 성장세를 보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할 정도다. “어떻게 이런 기업이 묻혀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까지 격찬했다. 신세계에 대한 관심도 높다. 글로벌 할인점 코스트코 사외이사인 그로서는 경쟁업체인 신세계의 남다른 성장성을 일찍 목격했다. 그는 “신세계는 놀라운 기업”이라며 “압도적인 시장지배력과 현명한 의사결정 전략 등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다”고 했다. 특히 한국 기업인 중에선 정주영 현대차 회장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아픔을 딛고 일어선 한국경제를 격찬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그는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 조선 등 한국 기업사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어 냈다”며 “특히 조선분야의 경우 일본을 제쳤는데,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성과”라고 했다.

일러스트 : 배진성



▣ 찰리 멍거의 10대 투자원칙

① 방대한 독서를 통해 분석기술을 고도화하라
② 다수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분석과 판단을 따르라
③ 돈을 벌겠다면 끊임없이 ‘왜’란 질문을 던져라
④ 잘 아는 분야를 파되 자신을 속이지는 말라
⑤ 시장을 분석하기보다 기업을 분석하라
⑥ 기회비용을 최소화하자면 적절히 자본을 배분하라
⑦ 불필요하게 복리의 효과를 방해하지 마라
⑧ 기회가 왔다면 확신을 갖고 크게 행동하라
⑨ 끊임없는 도전과 수정으로 세상에 적응하라
⑩ 적어도 15년 이후의 가치를 볼 수 있도록 하라
  • 200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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