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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투자가들 | 월가의 슈퍼마리오 마리오 가벨리(Mario Gabelli)

튀어오를 기업만 골라 사라

월가엔 유독 ‘워크홀릭’이 많다. 그래야 살아남는 게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의 성공 법칙이기 때문이다. 마리오 가벨리(Mario Gabelli)도 일벌레 하면 빠지지 않는 열정적인 월가 고수 중 한 명이다. 그의 업무 스타일은 남들이 보기엔 대단히 빡빡하다.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답게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책상 앞에 앉는다. 그러고도 저녁 9시가 넘어야 퇴근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요일 오후라도 주저 없이 간부회의를 소집한다. 하지만 정작 그에게 주식투자는 일이 아닌 취미인 모양이다. “내 일에 대해 한 번도 직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주식을 고를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주식에 대한 열정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게 지인들의 평가다. 월가는 이런 그에게 정력적인 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란 별명을 붙여 줬다.
가벨리는 피터 린치도 인정하는 베테랑 펀드 운용자다. 어린 시절 그는 뉴욕의 브롱스에서 보냈다. 집은 가난했다. 10대 때부터 웨이터, 캐디 등의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캐디 일을 통해 주식을 처음 알게 됐다”는 피터 린치와 같은 추억을 가진 셈이다. 어릴 적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그의 조직 및 인재관리 철학은 꽤 특이하다. “나는 늘 박사만 뽑는다(Get the PHD Attitude)”며 “근성만큼 중요한 성공비결도 없다”고 한다. 여기서 박사(Ph.D)란 일종의 비유로 가난하고(Poor), 배고프고(Hungry), 성공에 대한 깊은(Deep) 열망이 있는 사람을 뜻한다.

그는 가치투자자다. 그것도 가치투자의 원조이자 산실로 꼽히는 컬럼비아대학 출신이다. 벤저민 그레이엄, 워렌 버핏, 찰리 멍거, 데이비드 도드 등과 같은 계파다. 그에게 주식을 가르친 스승은 컬럼비아대학의 로저 머리 교수다. 증권분석 전공학자로 벤저민 그레이엄과 함께 《증권분석(Security Analysis)》 5판을 공동 집필한 가치투자의 선구자다. 또 소문난 독서광이다. 늘 손에 읽을거리를 들고 다닐 만큼 책읽기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워렌 버핏, 존 템플턴과 함께 월가의 대표적인 독서 마니아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책이나 언론 기사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무조건 많이 읽는 게 최고”라고 조언한다. 그 역시 마치 소설에 빠져든 문학청년처럼 투자보고서 읽기를 멈추지 않았다.

단지 그가 가치투자자란 이유만으로 주목을 받는 건 아니다. 걸출한 투자성적을 거둔 몇 안 되는 실력자란 게 집중조명의 근거로 더 타당하다. 대학 졸업 후(1967년) 그는 자동차부품 담당 애널리스트로 월가에 데뷔했다. 1977년엔 독립해 ‘가벨리자산관리회사’를 설립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펀드 운용은 그를 월가의 독보적인 펀드매니저로 키운 원동력이 됐다. 이때부터 1998년까지 21년간 무려 연평균 21%라는 경이로운 수익률을 거뒀다. 2000년엔 자산규모만 200억 달러를 웃도는 초대형 펀드로 성장했다. 모닝스타가 최근 발표한 미국펀드 수익률 ‘톱 10’에도 가벨리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환상적인 자산배분으로 유명한 ‘가벨리ABC’펀드가 최근 10년(1998~2007년) 평균수익률 6.9%를 달성하며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기회포착을 위해 자산의 25~30%를 늘 현금으로 보유함으로써 안정적이면서 탁월한 누적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는 평가다.

그의 종목선정 스타일은 철저히 아날로그적이다. 인터넷보다는 재무제표 더미에 파묻혀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구식으로 해야) 수익이 한 푼이라도 높아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의 관심사를 요약하면 두 가지 화두로 정리된다. 가치투자의 영원한 화두인 저평가 부분과 매수 후 저평가를 해소할 수 있는 변수(호재)의 존재여부다. 이를 위해 가벨리는 ‘PMV’라는 자신만의 저평가 기준모델과 함께 주가를 끌어올릴 재료인 촉매이론을 고안해 냈다. 이 두 가지 화두를 접근순서에 따라 다시 세 가지 단계로 나눴다.

가벨리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PMV (Private Market Value)로 도출한다. PMV란 ‘기업가가 비슷한 성격의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지급하고자 하는 가치’다. 즉,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시장보다 더 빠삭하게 내부정보를 갖고 있는 기업매수자로부터 알 수 있다는 얘기다. 그에 따르면 PMV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경영권 프리미엄이다. 기업매수자는 회생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기업가치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 기꺼이 웃돈을 주고서도 해당기업을 사들인다. 가벨리 역시 PMV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사들인 뒤 기업매수자가 달려들 때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해 되팖으로써 보상을 받는 전략을 구사했다.

둘째는 감춰진 자산이나 수익원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는 PMV를 추정하기 위해 일반적인 표준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 뭔가를 찾고자 했다. 눈에 보이지 않거나 과소평가된 자산, 수익원, 경쟁력 등을 기업매수자가 찾아내기 전에 먼저 발견하면 굉장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PMV와 시장가격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사건이나 사람 등과 같은 촉매(catalyst)에 주목했다. 동인(動因)이 없다면 100년이고 200년이고 저평가 딜레마를 해소할 수 없을 수도 있어서다. 그는 “PMV에 비해 저평가된 종목이라도 단기간에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수익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촉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가벨리의 세 가지 공략 포인트 중 월가는 특히 촉매이론에 높은 점수를 준다. 가치투자자로 꼽히는 그도 저평가종목 발굴에 사력을 다했다. 좋은 걸 싸게 사야 훗날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싸게 샀다지만 오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저평가 종목 중 주가가 오를만한 기업만 다시 한 번 간추린다. 특정산업의 규제완화 등 정책변화, 기업의 숨겨진 자산(부동산 등) 발견, 인수합병, 기업 구조조정, 놀랄 만한 단기 실적개선 등이 대표적인 촉매다.

촉매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특징적인 것과 환경적인 것이다. 특징적 촉매란 특정기업의 전망을 바꿀 수 있는 내부변화를 의미한다. 매각이나 구조조정 등의 예상이 기업전망에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환경적 촉매는 비즈니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외부의 대대적 변화를 일컫는다. 일례로 냉전시대 종말 같은 것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팔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것은 주가를 끌어올릴 촉매로 작용하기에 충분해서다. 한편 가벨리가 주장한 촉매이론은 워렌 버핏의 주특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워렌 버핏의 투자전략을 책으로 펴낸 적이 있는 며느리 메리 버핏은 “기업매각, 구조조정, 합병, 분사, 인수 등에 투자하는 차익거래는 버핏이 부를 일궈 낸 가장 큰 비밀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한다. 버핏의 가치투자 성공 스토리에 가벨리의 촉매이론이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다. 물론 누가 먼저 기업변화를 주가상승 촉매로 활용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둘 다 촉매가 될 수 있는 변수에 주목했다는 사실이다.

촉매이론과 관련해 그는 기업수익에 영향을 미치는 큰 흐름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경제ㆍ사회ㆍ정치적 환경 변화로부터 돈 벌 기회를 챙기라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인구구조 변화에도 관심이 많다. 개개인의 소득변화가 새로운 시장창출 및 기업생사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신흥시장 성장에 따른 중산층의 급증은 항공ㆍ관광 비즈니스를 키울 것으로 본다. “세계의 중산층은 앞으로 비행기를 많이 타게 될 것”이라며 “향후 5년간 이들 관련회사에 투자하면 분명 큰돈을 만질 것”으로 예측한다. 그는 또 현금장사를 하는 회사를 좋아한다. 때문에 그의 포트폴리오엔 늘 프랜차이즈 사업에 주력하는 회사들 위주로 채워져 있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주식투자자라면 향후 5D(Deficit, Dollar, Dividends, Democrats, Deals)에 주목할 것”을 주문해 화제를 모았다. 5D로 요약되는 여러 복합적 재료가 증시 향방을 결정할 것이란 입장이다. 미국의 엄청난 재정적자(Deficit)를 차기정부가 어떻게 대처할 건지 중요하며,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Dollar) 흐름도 증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배당(Dividends)과 민주당(Democrats)도 주요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몇 년 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업의 인수합병 붐(Deals)도 주식투자자라면 꼭 챙길 것을 권한다. 이들 5D는 지정학적 위기와 원자재 가격급등만큼 중요한 변수란 게 그의 판단이다.

가치투자 계보의 걸출한 실력자 중 한 명인 그지만, 아쉽게도 주식투자와 관련된 미래전망은 조금 부정적이다. 그는 “앞으로 주식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갖지는 말라”며 “지난 15년간 두 자릿수의 고수익이 계속 나왔기 때문에 조만간 강세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대규모 조정국면에 들어서든지 아니면 약세로 돌아설 수 있어 기대수준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충고다.

일러스트 : 배진성
  • 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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