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투자가들 | 월가를 휘두른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케네스 피셔(Kenneth Fisher)

부전자전(父傳子傳)이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피셔(Fisher) 가문을 보면 딱 이 단어가 떠오른다. 피셔 가문은 월가에서 알아주는 대표적인 투자 가문이다. 1대인 필립 피셔는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요, 현대적인 투자 이론의 창시자로 손꼽힌다. 50년대에 최초로 ‘성장주’란 개념을 월가에 소개했다. 그는 또 벤저민 그레이엄과 함께 워렌 버핏의 두 스승 중 한 명이다. 버핏은 “그(피셔)는 훌륭한 기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완벽히 이해한다”며 피셔를 추앙한다. 버핏이 피셔의 저서 《평범한 주식과 특별한 수익》을 읽고 샌프란시스코까지 찾아가 스승으로 모신 일화는 유명하다.

2대인 ‘케네스 피셔(Kenneth Fisher)’ 역시 아버지 못지않은 월가 최고의 투자 전략가다. 1950년 태어나 올해 58세인 그는 월가에서 한창 이름값을 올리고 있다. 남다른 투자 전략과 잣대로 1970년대 초반 증권가 데뷔 이래 탁월한 수익률을 거뒀다. 펀드매니저로서 대를 이어 월가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가문은 피셔 가문이 거의 유일하다. 아들이 세운 ‘피셔 인베스트먼트’는 고객에게 고수익을 안겨주는 알짜배기 운용사로 알려져 있다. 지금대로라면 피셔 가문의 명성은 3대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케네스 피셔에겐 3명의 아들이 있는데, 이중 한 명이 10대 때 벌써 청소년을 위한 투자 지침서를 출간해 피는 속이지 못한다는 경험칙을 보기 좋게 증명해 냈다.

케네스 피셔의 투자 나침반은 ‘주가매출액비율(PSR)’로 요약된다. 주가수익비율(PER)과 비슷하지만 수익 대신 매출액을 쓴다는 게 다르다. 시가총액을 과거 12개월간의 매출액으로 나누면 PSR이 도출된다. 가령 시가총액(주가×발행주식수) 2000억 원에 전년 매출액이 2500억원이면 PSR은 0.8로 계산된다. 피셔가 PSR을 눈여겨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PSR을 보면 기업 규모와 함께 대중적인 인기도를 측정할 수 있어요. 이익은 회계 방식을 바꾸는 등 여러 방법으로 얼마든 조절할 수 있죠. 반면 매출액은 변동률이 낮아요. 이익만 중시하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죠. 이익은 들쑥날쑥해도 매출액이 탄탄한 회사에만 투자합니다.” 매출액이 높아 PSR이 낮은 게 좋은 주식이라는 것.

피셔는 PSR과 관련된 3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PSR이 1.5보다 큰 주식은 투자 대상에서 뺐다. PSR이 1.5배란 말은 매출액 1000원 짜리 회사를 1500원에 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PSR이 높은 회사의 주가가 오르더라도 그건 기업 본질에 의한 상승이 아니라 과대평가에 따른 결과라고 일축한다. 둘째, PSR 0.75배 이하의 ‘바람직한 종목’은 장기간 보유한다. 셋째, 바람직한 종목을 매수했다면 PSR이 3 이상으로 뛸 때 매도하는 게 좋다. 위험을 감수하겠다면 PSR 6까지 보유해도 나쁘진 않다고 덧붙인다. 더불어 피셔는 PSR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PSR이 중소기업보다 낮고, PSR 1 이하 종목이 급등하는 사례가 많으며, 악화된 실적 발표 직전에 PSR이 높을수록 급락 빈도가 높다는 점 등이다.


수익보다 매출액에 주목하라

PSR은 피셔가 내세운 투자기법의 일부일 뿐이다. PSR처럼 계량적인 분석 기준과 다양한 질적 펀더멘털 요소를 함께 봤다. 가령 재무 상태의 건실함을 알아보기 위해 담보 비율과 부채 등도 주도면밀하게 분석했다. 그는 유동자산이 유동부채 규모의 2배 이상이며 자기자본이 최소한 총자산의 절반 이상인 기업을 최종 투자 대상으로 압축했다. 부채 비율은 낮을수록 좋겠지만 최대 40%를 넘지 않는 곳이 좋다. 기술주나 의료 관련 회사라면 R&D 비율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가연구개발비비율(PRR)이란 지표도 개발했다. PRR이 5~10이라면 굉장히 싼 종목으로 강력 추천이다. 그가 주장하는 슈퍼주식은 인플레를 감안한 주당순이익 증가율이 15% 이상이란 조건도 맞춰야 한다.

한편 피셔는 스타일을 강조했다. 1980년대에 내놓은 PSR 개념만으론 달라진 증시 환경에 대비할 수 없다는 이유로 최선의 투자 전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물이 ‘스타일투자’다. 시대 유행에 따라 보유종목 역시 순환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그는 포트폴리오 선정을 자산배분(주식, 채권, 현금비중), 스타일선택(시가총액, 내재가치 등), 종목선정(스타일 내 종목비중) 등 3가지로 나눴는데, 역시 스타일선택이 수익률을 좌우하는 최대 결정변수였다고 회고했다. 피셔는 주식을 다시 6가지 스타일로 나눴다. 대형가치주, 중형가치주, 소형가치주, 대형성장주, 중형성장주, 소형성장주 등이다. 가치주인지 성장주인지 여부는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주가매출액비율(PSR), 배당수익률 등 4가지 전통적인 평가 방식에 따라 결정했다. 이때 피셔는 시장지배력(대형주)과 성장잠재력(소형주)을 특히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최선의 스타일을 고르는 건 어렵다. 그래서 생각한 게 최악의 스타일부터 버려 나가는 방법이다. 그는 “나쁜 스타일 2개를 버리는 것만으로도 평균 이상의 수익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형주와 소형주를 선택해야 할 때 피셔는 해외시장을 살핀다. G7 중 미국을 뺀 나머지를 G6로 부르며, 이들 국가의 성장률과 미국의 성장률을 비교해 보는 식이다. 가령 미국이 G6보다 성장률이 높을 경우 소형주의 수익률이 대형주보다 높다고 보고, 그 반대면 대형주에 투자한다. 대기업이 소기업에 비해 해외시장에서의 매출·이익의존도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피셔는 시장이 좋아하는 걸 찾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이웃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라”며 기관투자가들의 자금동향 추적을 그 예로 들었다. 물론 기관투자가들과는 반대로 투자 전략을 짜기 위해서다. 시장에서 관심거리가 된다는 건 이미 주가에 충분히 반영돼 있기 때문에 정반대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

피셔는 스스로 가치투자자로 불리길 거부했다. “주식을 배운 처음엔 가치투자자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자본주의를 따라갈 뿐”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효율이 높은 절체절명의 투자 원칙이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늘 시대변화를 좇으며 최적의 투자 환경을 만드는 게 합리적이란 입장이다. 시대별 혹은 상황별로 적용해야 할 기준이 다르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수십 년 동안 조금씩 그만의 투자 이론을 새롭게 변화시켜 왔다. 핵심은 ‘시장과 반대로’다.

한편 그는 늘 연구하는 투자자다. 지식이 없으면 남들과 다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투자회사들과의 차별화에 각별히 공을 들인다. 그래서 회사도 월가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구했고, 역할모델 역시 변화를 즐기는 초창기 인텔이나 월마트로 선정했다. 그의 얘기다.

“불과 5년 전 제가 했던 일들도 모두 낡아빠진 게 돼버렸죠. 항상 새로운 걸 배워서 시대 흐름에 올라타야 합니다. 알려진 정보로 투자하는 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수익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내일 적용할 저의 투자법은 오늘과 어제의 그것과 달라야 합니다. 기업이 변하듯 투자 기법도 늘 변해야 하죠.”

그는 스승이자 아버지였던 필립 피셔에 깊은 애정을 표시하는 효자였다. 아버지 피셔가 노년에 잇따른 사고와 알츠하이머로 병원 신세를 질 때 직접 수발을 들기까지 했다. 아버지도 둘째 아들 케네스 피셔에 남달랐다. “주식투자에 대해 전문적으로 교육시킨 유일한 자식”으로 꼽을 만큼 대를 잇기를 바랐다. 그러나 갈등도 있었다. 아들은 주관이 뚜렷했고 다소 반항적이기까지 했다. 어려서부터 나무와 숲을 좋아해 임산업을 하고 싶었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뒤를 이었다. 대학 졸업 후 아들 피셔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시작했는데, 순탄치 못했다. 60대 중반인 아버지는 자신의 방식을 바꾸는 것을 싫어했다. 1973년 결국 아들은 독립했다. ‘피셔인베스트먼트’라는 자산관리회사를 설립해 독자적인 투자 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이 회사는 주로 연기금 자금을 맡아 운용하고 있다. 사무실은 울창한 삼림 보존구역 옆의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숲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또 글 솜씨가 탁월했다. 1984년부터 ‘포브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문장력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수많은 학술 잡지에 필자로 적극 참여해 많은 논문을 남기기도 했다. 당연히 베스트셀러 저자 반열에도 이름이 올라있다. 1984년에 출간된 그의 첫 책 《슈퍼주식》은 지금도 서점에서 팔리는 유명 서적이다. 이 밖에 《월스트리트의 왈츠》,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100가지 생각》 등도 필독서로 손꼽힌다.

일러스트 : 배진성



케네스 피셔의 투자전략 10 계명

① 독자적인 판단 능력과 기준을 세워라.
② 투자 기준을 남들과 거꾸로 설정하라.
③ 경쟁사가 없는 최선의 기업을 골라라.
④ 이익보단 매출액 비율을 먼저 챙겨라.
⑤ 기술주라면 R&D 비율이 높은 곳을 골라라.
⑥ 영원히는 아니라도 5~10년은 보유하라.
⑦ 결과보단 원인분석을 통해 미래를 전망하라.
⑧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최악의 경우를 피하라.
⑨ 만고불변의 투자원칙이란 없으니 늘 공부하라.
⑩ 바람직한 주식이라면 자신 있게 보유하라.
  • 200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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