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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영철

명랑도 연습이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김영철
데뷔 23년 차 코미디언, 11년 차 아침 라디오 DJ다. 인터내셔널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19년째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코미디언으로 시작했지만 가수, 작가, 교수 등으로 지경을 넓혀왔다.
지은 책으로는 《김영철, 타일러의 진짜 미국식 영어》 시리즈, 《일단, 시작해》 《울다가 웃었다》가 있고, 《치즈는 어디에?》 등 세 권의 번역서를 냈다.
“제가 상상했던 그림입니다.”

2015년 MBC 연예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김영철은 이렇게 말했다. 호들갑 없이, 담담하게. 한여름 〈진짜 사나이〉 훈련으로 혹독한 시간을 보낼 때 그는 연말의 시상식을 떠올렸다. 데뷔 당시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5년 동안은 시상식에 올 일이 없었다. 시상식에 오고 싶었고, 어떤 상이든 받고 싶었다. “사실은 상이 너무 받고 싶었다”고 말할 때 김영철은 조금 울먹였다.

김영철의 상상은 힘이 세다. 경남 양산군 서생면 신암리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창밖의 기찻길을 보며 생각했다. 저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고 싶다고, 가서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10년 후 그는 서울서 개그맨이 됐고, “미안합니다~”로 스타가 됐다. 2013년 캐나다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을 다녀온 후엔 언젠가 저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상상했다. 2016년 호주 멜버른 코미디 페스티벌에선 무대에 올라 6분간 영어로 개그를 소화했다. 라디오 DJ가 된 것도 그의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다. 처음엔 오전 여섯 시, 지금은 일곱 시에서 아홉 시까지 라디오를 진행하며 아침을 깨운다. 그의 라디오는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기록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든 건 오직 연습이었다. 영어 공부를 한 지는 19년, 새벽 기상을 시작한 것은 이제 11년 차다. 그는 이비인후과를 정기적으로 다니며 진찰을 받고 자기 전에 성악가처럼 목을 푼다. 라디오 시작 전 40분 동안 전화영어를 하며 입도 풀고 머리도 푼다. “누군가는 재능으로 코미디를 하지만, 누군가는 성실함으로 그 자리를 채운다”고 김영철은 말한다. 그의 말마따나 “명랑도 연습”이니까.


오늘 아침에도 한결같이 목소리가 쌩쌩하던데요.
매일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나오나요.


“(실리콘밸리의 철학 멘토라 불리는) 라이언 홀리데이가 《데일리 필로소피》라는 책을 냈는데 어제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됐어요. 스토아학파는 묻는대요. ‘내가 누구인가,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인가’를요. 제가 아침 라디오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게 됐어요. 아침 라디오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아침 일곱 시부터 아홉 시는 제가 제일 잘 놀 수 있는 시간이고요. 알람도 여러 개 필요 없어요. 5시 50분이면 눈이 떠져요. 전날 열 시 반에는 꼭 자려고 해요. 저한텐 아침이 너무 소중하니까.”


〈김영철의 파워FM〉 전에는 더 이른 시간인 여섯 시에 〈펀펀투데이〉를 진행했죠.

“저는 아침 라디오가 위시리스트였어요. 이코노미에서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게 돈을 낸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 마일리지를 쌓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저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죠. 그러다 공석이 나니까 가장 마일리지가 높은 저에게 기회가 왔고요. 제 인생은 연예인으로서 금수저는 아니었지만 기회가 많았어요. ‘미안합니다~’로 크게 주목받다가 슬럼프가 왔고, 주춤하던 시절에도 송은이, 박미선, 강호동, 신동엽, 유재석같이 좋은 선배님들이 곁에 있었고요.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잘하려고 하기보다 바르게 해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치열한 연예계에서 ‘바르게’ 온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서평 중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나는 이른 아침 김영철 씨처럼 빠르다. 빠르게 달려서 차를 놓치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나서 알았다. 차를 탄 건 내가 빨라서가 아니라 너그러운 기사님 덕분이었다.’ 그걸 보고 알았어요. 내 스스로 한 게 아니구나. 너그러운 기사님들이 있었구나. 진심으로 청취자의 도움, 함께한 스태프의 구성력 등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겸손해야 하는데 이게 힘들어요. 예능인은 또 뻔뻔해야 하거든요(웃음).”


그래서 현재 결론은.

“저는 운도 좋았고, 열심히도 했고, 주변에 좋은 분도 많았고요.”


그 좋은 분들이 해준 조언을 실행한 것도 한몫했죠. 정선희 씨의 조언 “독서를 해라”, 서수민 PD가 말한 “코미디 페스티벌에 가봐라”를 듣고 실천했으니까요.

“정선희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라디오 5일 동안 생방 하면 어휘실력 다 나온다. 술자리에서도 한 사람이 한 이야기 또 하면 지루하잖아. 너도 책을 열심히 읽고 새로운 일을 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고요. 어른이 될수록 문해력, 어휘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방송을 하는 사람은 더요. 라디오 하기 전에 매일 신문을 보고 영자신문을 읽어요. 헤드라인이나 뉴스를 알고 있어야 진행을 할 수 있어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거든요.”


코미디 페스티벌 이야기를 한 사람은 많아도, 실제로 가본 사람은 드물죠.
무대에 선 사람은 더 그렇고요.


“2013년 9월 1일을 두 번째 생일이라 생각해요. 캐나다 몬트리올 코미디 페스티벌이 제 삶을 바꿨죠.”


그 치열한 행보가 《일단, 시작해》에 담겼죠. 이번 책 《울다가 웃었다》는 비슷하면서도 결이 다릅니다. 앞의 책이 “해봐, 하면 돼” 느낌이라면 후자는 “안 될 수도 있지만, 괜찮아”라는 느낌이랄까요.

“《일단, 시작해》는 30대 후반에 나왔고, 자기계발서로 분류됐어요. 그때는 초초긍정이었을 때예요. 이제 50을 바라보니까 뭔가 삶을 관망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창피와 부끄럼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분이 있으리란 믿음이 생겼어요. 제 맘을 좀 들키고 싶었고요. 형 이야기도 전에는 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할 수 있겠더라고요.”


10대에 겪은 시련이 인생의 고비를 넘게 해줬다는 부분이지요.

“열여덟에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열아홉에 형이 세상을 떠났어요. 형이 하늘나라로 갔을 때는 애써 밝은 척을 했어요. 학교에 가면 까먹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은 아침 라디오 시간이 모든 걸 잊는 순간인 거 같아요.”


글을 쓰면서 그 상처를 마주하고 흘려보내게 됐고요.

“글에 그런 힘이 있더라고요. ‘두 명은 날 안 좋아하고 일곱 명은 관심이 없고 한 명이 나를 좋아한다’ 그걸 아는 데 20년이 걸렸어요. 그 아홉 명에게 너무 관심을 쏟았던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도 글로 정리하다 보니 그들과 작별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너무 센티해질까 봐 글은 꼭 낮에 썼다고 했습니다.

“글은 항상 오후 두 시에 썼어요. SNS도 절대 밤에는 안 해요. 일은 3~4시 감성으로 끝내야 해요. 밤에 쓰면 뭔가 수식어가 붙어요. 형을 생각할 때도 이렇게 썼어요. ‘달을 보면 뒤죽박죽될까 봐 지금 해를 보며 글을 써. 형이 하늘나라 갔을 때가 내가 열아홉 살’ 이렇게 담담하게 썼어요. 형을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참 안 와요. 박지선이는 제가 너무 보고 싶어 하니까 꿈에 몇 번 다녀갔거든요. 그럼 동료들이랑 이야기하죠. ‘어제 지선이 봤어.’ 라디오도 하다 보면 울 일이 정말 많아요. 우리 작가가 ‘이거 우리 DJ 울겠는데’ 하면 무조건 울어요(웃음). ‘울다가 웃었다’라는 책 제목은 저한테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아요.”



23년 차 방송인 김영철의 성과 중 하나는 지금까지 큰 구설도 방송사고도 없었다는 거죠.

“내 얘기만 해서 그래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잘 안 옮겨요. 그러다 보니 방송 사고가 없어요. 아니, 내 얘기하기도 시간이 모자라요.” (일동 웃음)


이른바 ‘누구 라인’이 없다는 것도요.

“라인이라는 게 득도 있지만 실이 되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더 당당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 스스로 지키는 원칙이랄까 약속이라는 게 있어요. 이중약속 절대 안 하고, 약속 절대 안 깨기. 한번은 윤종신 형이랑 강호동 형이 오후에 만났는데 저를 두고 내기도 했대요. 호동 형이 그랬대요. ‘(강호동 흉내를 내며) 쩔대 안 와.’ 저는 네 시에 영어학원을 가거든요. 형이 그래요. ‘(강호동 톤으로) 넌 뭐가 그래 당당하니. 너가 후밴데.’ 그럼 저는 이야기해요. ‘최소 이틀 전에 이야기해.’ 대신 이틀 전에 이야기하면 무조건 가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할 당시 깔끔한 살림살이, 단정한 요리 솜씨 등이 화제가 됐죠. 자기관리가 잘되는 사람이라고요.

“30대 중·후반만 해도 관리를 잘 못했어요. 배도 나왔고요. 한 후배의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했고 한때 제가 하루키이던 시절이 있었어요(웃음). 하루키처럼 달려보자 싶었던 거죠. 매일 뛰면 내일 좀 걸어도 돼요. 오늘 걸으면 내일 또 뛰면 되고요. 걷고, 뛰고 반복하면 된다는 공식을 알았어요. 시간을 나노처럼 쪼개기 시작했고요. 저는 ENFJ예요. 일단 엄청 시끄러워요. 사람도 좋아하고, 계획 세우는 것도 좋아하고요.”


ENFJ의 특징이 사람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면서도 마이웨이 기질이 있다는 거죠.

“강상중 교수님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100% 최선을 다하지 말고 30%는 본인을 위해 남겨두라고 했거든요. 자기를 위한 공부에 쓰라고요. 저는 주말에는 되도록 일하지 않아요. 그리고 명상을 꾸준히 해요. 토크쇼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배울 점을 찾고 따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도 열심히 읽고요. 명언에 빠질 때도 있어요. 덴젤 워싱턴이 말했다죠. ‘Fall forward’. 넘어지더라도 앞으로 넘어지라고.”


시간을 나노로 쪼개 써야겠네요, 정말.

“저는 김연아 선수의 연습을 존중하고 존경해요. 누구보다 열심히 연습하지만 그는 타인을 비방하지 않아요. 대인배죠. 저는 김연아 선수가 넘어지는 영상도 자주 봐요. 넘어지고 딱 1초 만에 일어나요. 다른 선수들은 흔들린 걸 수습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저는 김연아 선수의 멘탈에서 배워요. 못 웃겼다 싶을 때 빨리 일어나야 해요.”


영어 공부를 하면서 달라진 건 무엇인가요.

“영어를 배우고 또 가르치면서 정말 많이 늘었어요. 30분 가르치려면 세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요. 또 그들의 언어뿐 아니라 매너도 배웠어요. 서양 문화에는 건조한 배려가 일상화돼 있거든요. ‘결혼 왜 안 해?’가 아니라, ‘혼자 살다 보면 불편한 건 없어?’라고 묻는 거죠. 저도 그래요. ‘나는 돌잔치 같은 데 가서 애들이 나 잘 따르면 마음이 좀 그렇던데, 너는 안 그래?’ 하면서 제 마음을 먼저 표현해요. 그러다 보면 마음이 열려요.”


코미디언 김영철의 강점은 성대모사와 언어능력이죠.
이 둘의 공통점은 잘 관찰하고 잘 흉내 낸다도 있을 것 같아요.


“남을 잘 따라 하는 사람들이 언어도 잘 따라 해요. 엄마도 남 흉내를 잘 내는데 외할머니가 동네 코미디언이셨대요. 할아버지 할머니 남자 여자 흉내 다 내는. 그런 재능은 외탁했다고 볼 수 있죠. 저야 학교 다닐 때 선생님 흉내 다 냈고요. 그때 ‘알겠어?’가 안 되는 분이 있었어요. 항상 ‘아~겠어?’ 하셔서 제가 맨날 따라 하니까 저한테 분필 던지시고(웃음). 군대에서도 조교, 선임들 흉내 냈고요.”


언어를 배우려면 당당함은 필수겠어요.

“제가 그런 건 안 창피해하는 것 같아요. 엄마에게 배운 게 ‘없는 건 없다’고,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다’고 말할 줄 아는 거거든요. 그게 저를 더 당당하게 만들어준 것 같고요.”


50대도 기대가 됩니다.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좀 깐깐한. ‘내가 한번 샀으니까 이젠 네 차례야’라고 할 말 다 하는 그런 노인이 돼도 좋을 거 같아요. 가끔 좀 져주기도 하지만, 어리숙하진 않고요. 스물여섯에 연예인이 돼서 이제 23년이 지났어요.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머리가 안 빠졌으면 좋겠어요. 근데 뭐 어떡하겠어요. What if? 그리고 계속 청바지가 어울렸으면 좋겠어요. 향수도 적당히 뿌리고요. 제 마음은 늘 ‘빨간 머리 앤’ 같아요. 저 모퉁이를 돌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아마 김영철이 상상한 그 어른은 훗날 모퉁이 뒤에 서 있을 것이다. 그의 상상은, 그가 믿고 바라는 것들은 실상이 되고 마니까. 사람들은 그를 ‘토커(talker)’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는 누구보다 ‘리스너(listener)’다. 그리고 무엇보다 ‘액터(actor)’다. 그의 연습은 그를 어디로든 데려간다. 할리우드 시트콤에서 영어로 연기하는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조연상을 받겠다는 그는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는 중이다. 상상에 연습을 더하면 거기 김영철이 있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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