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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출신 변호사 이소은

음악은 마음을, 법은 삶을 잇는다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고윤지 

이소은
아티스트이자 미국 변호사. 14세에 〈EBS 청소년 창작가요제〉에 자작곡을 낸 것을 계기로 가수로 데뷔했다. 윤상·이승환·김동률·토이 등의 뮤지션과 협업했고 네 장의 정규앨범을 냈다. 대학 졸업 후 노스웨스턴 로스쿨에 입학하고, 뉴욕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중재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 현재는 뉴욕에서 문화예술 비영리단체를 운영 중이다.
‘엄마친구의 딸과 아들’ ‘반짝이는 수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생각해본다. 이들의 성취는 저절로 된 것처럼 그 안에 감내했을 두려움과 어려움을 가벼이 여기는 태도에 대해서. 민주화 운동으로 부당 해직된 교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에서 생활했고 학창 시절에는 윤상, 이승환 등의 걸출한 뮤지션과 음악 작업을 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로스쿨에 합격해 미국 변호사가 된 이소은의 이야기는 비슷하게 소비됐다. 그는 ‘영재’라 불리기도 했고, ‘엘리트’로 구분되기도 했다. 그 사이 탈락된 맥락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그의 입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겪은 이야기들, 이를테면 ‘여러 문을 두드렸다가 가까스로 열린 문에 비집고 들어가서 악착같이 내 길을 파면서 나아가는’ 과정들 말이다.

10년 전 《딴따라 소녀 로스쿨 가다》라는 책을 낸 이소은은 그로부터 10년 후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를 냈다. 전자가 성취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자는 성취 이후의 이야기다. 그 성취가 헛되지 않길 바라는 안간힘, 그럼에도 그 치열함에 소중한 내가 망가지도록 버려두지 않겠다는 다짐. 스스로에게 끝없이 기회를 주되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유연하고 관대해져야 한다는 약속. 그가 10년간의 미국 생활, 뉴욕에서 변호사로 분투하며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소은은 파워풀해졌다.

〈그레이 아나토미〉 〈브리저튼〉 등을 기획한 할리우드 크리에이터 숀다 라임스는 《포브스》에서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멋지고 파워풀한 여성들이 흔히 외부에서 파워를 가져도 된다는 허락을 기다리다가 기회를 저버리는 일을 많이 봤습니다. 허락을 구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파워풀해지면 됩니다.”


독자 리뷰 중 “응원을 받았다”는 글들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 제가 그런 응원이 늘 고팠나 봐요. 두려운 상황에 많이 노출되기도 했고, 예민해서인지 그 환경의 분위기와 감정을 느끼는 강도가 좀 세서 책이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용기를 얻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어요. 제 글을 읽고 응원을 받았다면 가장 감사한 일이고요.”


10대 시절, 1집 앨범 〈소녀〉를 발표했을 때부터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변호사가 될 것”이라고 대답했던데요.

“그땐 아무 생각 없이 막연하게 미드를 상상하면서 얘기했던 것 같아요(웃음). 변호사는 그냥 법원에서 멋지게 변론하며 배심원을 감동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인 줄 알았죠.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변호사가 되고부터 예전보다 디테일에 더 신경 쓰고 완벽주의 성향이 짙어져 피곤하기도 해요.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여전히 창의적인 일이 제일 설렌다는 것, 그래서 그런 삶을 어떻게 실현할까 고민한다는 거죠.”


결국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2012년 《딴따라 소녀 로스쿨 가다》라는 로스쿨 입성기를 썼고, 변호사로 살아온 10년 후에는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라는 기록을 남겼죠. 둘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요.

“미국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의 삶의 이야기라기보다, 여러 변화를 겪는 동안 어떻게 하면 나에게 충실한 삶의 모습을 고유한 방식으로 만들어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고비들을 풀어가면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이런 의문에 대한 저만의 답을 찾은 과정을 적었어요. 뉴욕에서 변호사라는 환경과 직업은 특수하지만 그 안에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고요.”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보는 동시에 ‘고지식한 완벽주의자’라고도 합니다. 이 둘은 어떻게 공존하나요.

“(웃음) 되게 모순같죠. 그런데 또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일할 때 요령 안 피우고 고지식하게 파고드는 스타일인 데다가 저에 대한 기준이 좀 많이 높아서 스스로를 힘들게 해요.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는 이유는 늘 내가 원하는 길로 자유롭게 가기 위한 거죠. 자유롭게 살기 위해 제가 선택한 것들을 실행하는 방법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로펌에서의 하루하루,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의 뉴욕 지부 부의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꽤나 치열해 보였습니다. 잠잘 시간도, 허리를 펼 시간도 없는 나날이더군요.

“처음엔 몸과 마음에 붙어 있는 기억, 화, 트라우마, 성취, 이 모든 것을 그냥 떼어내며 글로 옮기는 것 같았어요. 이해나 소화가 되지 않아도 음식물을 꾸역꾸역 몸에 집어넣는 그런 느낌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글을 다듬고 내가 변화하면서 똑같은 경험이 다른 색채를 띠기 시작했어요. 떼어내야 하는 짐이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갑옷 같은 것이었구나, 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로스쿨에서 후배들에게 한 연설에서 “아시안 소수 인종이라는 정체성은 나를 정의 내리지 않습니다.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고 더 많이 포용할 수 있도록, 더 용감하고 대범해질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줬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뉴욕에서는 아시안 소수 인종이고, 서울에서는 아주 명백한 다수에 속하는 사람이에요. 여기에 아티스트, 변호사, 작가, 기획자 등 여러 수식어가 있죠. 요즘 사회는 수식어가 많아요. 타이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하지만 정체성은 수식어와 다른 것 같아요. 저의 정체성도, 저는 ‘누구’라는 명사보다는 변화하고 움직이는 동사 같은 사람이고 싶어요.”


늘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어머니와 스스로 강하고 굳건하게 자기 길을 걸어온 언니의 존재는 어떤 의미인가요.

“가족은, 말로 표현하기 좀 힘들어요. 어떤 표현도 너무 시시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저를 만들고 성장시키고 일으켜주고 치유해주고 웃겨주고 지켜준 것은 다 가족이죠. 제가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친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데, 가족은 제가 절망하고 바닥 칠 때의 모습을 다 봤고 같이 아파해줬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보여준 건 가족이에요.”


새로 꾸린 가족인 남편과 두 돌이 된 아이도 새로운 세상을 알려줬을 것 같고요.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렸죠. 남편은 저한테 매일 광팬이라고 말해요(웃음). 팬데믹 정점에서 아기를 낳으며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진정한 파트너는 이런 관계구나’를 늘 느끼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어쩌면 ‘지금의 너로 충분해’라는 얘기를 해준 사람이죠. 아이는 저에게 가장 많은 깨달음을 주는 존재예요.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었나’ ‘내가 이렇게 사랑이 많았나’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죠.”


미국으로 떠나며 “음악 외의 세상이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음악 외의 세상, 한국 외의 세계는 어떻게 다가왔나요.


“처음엔 낯설고, 한없이 냉정하고 치열했죠. 많이 외롭기도 했고, 과거의 저와 익숙했던 삶을 그리워하기도 했어요. 지금도 쉽진 않지만 그만한 보상이 있다는 것을 느껴요. 음악 세계와 한국을 벗어나서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단단해졌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멘토의 도움도 좋지만 스스로가 가장 강한 조력자가 돼야 한다고 했죠.

“저는 힘들면 바닥을 한번 심하게 쳐요. 그다음에 닥치는 대로 붙잡을 수 있는 도구를 찾죠. 책도 읽고, 얘기도 하고, 일을 벌이고, 그렇게 행동하다 보면 늘 무언가를 찾게 돼요. 어떤 일에 몰입하면 다른 감정들의 농도가 옅어지는 것을 참 많이 경험했어요.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액션으로 극복한다’예요. 기분이 울적할 때 운동하거나 산보를 하면 머리가 맑아지는 것처럼, 행동을 하면 마음도 변화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돕는 방법 중 책이 많은 도움을 준 듯 보입니다.

“저는 책이 책을 안내한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고, 그 책에 인용된 구절이나 참고 문헌을 찾아 읽고, 작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 보면 그 작가에게 영감을 준 다른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분명히 나오거든요. 제가 음악을 들었던 방식과 비슷해요.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반에 참여한 다른 뮤지션을 알게 되고, 또 찾아 들으면서 이어지는 거죠. 구절을 간직하는 방법은 사진을 찍어요. 종종 사진 정리를 할 때 찍어놓은 책 구절을 다시 보고 기억하죠.”


14세에 ‘회상’이라는 곡을 작사·작곡해 창작가요제에 참여했을 때
“나의 음악은 완벽하지 않지만, 내 가슴에서 나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하는 모든 게 그렇다고 생각해요.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하지 않아서 두렵기도 하고 불안을 느끼기도 하는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마음에서, 진심에서 나왔다는 거죠. 책도 그래요. 완벽하게 쓴 책은 아닐지라도, 100% 제 가슴에서 나온 진심의 이야기예요. 음악도 글도 앞으로 계속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당시 소녀 이소은의 바이올린 연주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언니 역시 피아노에 두각을 보여 어린 시절 홀로 미국에 남아 공부를 했다고요(언니 이소연은 줄리아드음대를 나와 아시아 여성 최초로 교수직에 올랐다). 두 자매의 예술적 감성의 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정말 모르겠어요. 부모님도 알 수가 없다고 해요. 하지만 엄마는 정말 책을 좋아하셨고, 아빠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1년 치 용돈을 모아 레코드를 사셨대요. 레코드플레이어가 없어서 듣진 못해도 언젠가 들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행복해하셨고요. 그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진 게 아닐까 싶어요.”



평소 아버지는 두 자매가 어려운 일을 겪거나 슬픔에 빠지면 “forget about it(잊어도 돼)”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요.

“어렸을 때는 너무 자주 들어서 그냥 웃었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 말씀의 깊이를 알게 됐죠. 잊는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용서이기도 하고, 자신을 과거로 제한하지 말고 어떤 경험에도 매달리지 말자는 자유로움도 포함해요. ‘스스로에게 넉넉한 주인이 되고 제한하지 말고 나아가자’는 제 생각의 씨앗도 여기서 온 것 같아요.”


음악을 시작할 때 정재형·윤상·이승환·이적·김동률·유희열 등 근사한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10대와 20대를 이들과 함께 보낸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나요.


“원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죠(웃음). 그래서 그런지 좋은 기억이 대부분이에요. 물론 어린 나이에 가수를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얻은 게 훨씬 많아요. 제가 인복이 좀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음악 잘한다는 모든 뮤지션들 사이에서 자랐고, 배웠고, 나눴고, 멋진 오빠들에게 예쁨도 많이 받았어요. 축복된 커리어를 가질 수 있었죠. 제게 어떻게 그런 행운이 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이제 누군가의 선배, 롤모델이 된 30대와 40대는 어떤 이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세계가 많이 확장됐어요. 분야도 법조계뿐 아니라 비즈니스와 금융, 예술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죠. 뉴욕에 사는 특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를 선배, 멘토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도움과 조언을 줄 수 있는 인물인지 늘 의심해요. 더 많이 베풀고 살아야 하는구나, 그리고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돼요.”


현재는 문화예술 비영리단체를 운영 중입니다.
이 단체는 어떤 비전을 바라보나요.


“의미 있는 예술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가 기본 목표지만 그 외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더라고요. 요즘 세상은 네트워크가 넓어진 만큼 그 깊이는 얕아졌고, 특히 프로페셔널들이 느끼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있어요. 그걸 음악으로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감으로 채워보자는 비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10년 후의 나는 또 어떤 글을 쓰게 될까요.

“우선 10년이 안 걸리기를 바라고 있어요(웃음). 제가 글을 참 좋아하더라고요. 알고는 있었지만 몇 년 동안 이런저런 매체와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 내가 글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그 과정의 어려움도 낭만적으로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더 자주, 다양한 글을 꾸준히 쓰고 싶어요. 소설도 꼭 써보고 싶고, 동화와 각본도 시도하고 싶어요. 엄마와 딸의 대화를 책으로 엮어도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고, 조금 더 전문적인 글도 시도할 생각이에요.”


“그들은 했고, 나는 하지 않았다”가 어쩌면 차이일지 모른다. 그가 어느 부모에게서 어떤 수저를 쥐고 태어났느냐가 아니고 말이다. 이소은은 했고, 해냈다. 그는 열네 살에 공책을 찢어 악보를 그렸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에 음표를 붙였고, 그 노래를 녹음해 가요제에 나갔다.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가겠다”는 다짐은 미국으로, 로스쿨로, 국제기구로 이어졌다. 로스쿨 시험에서 꼴찌를 하기도, 30군데에 원서를 넣고 27군데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기도 했지만 그는 열린 틈을 비집고 들어가 스스로 파워풀해졌다.

‘자유로운 영혼’은 ‘고지식한 완벽주의자’의 도움으로 원 없이 날아오른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이소은다움’은 이제 ‘함께 날아오르는 법’을 모색하고 있다. 음악으로 마음을 잇고, 법률로 삶을 연결하면서 말이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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