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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스물하나〉 김지연

우주에서 온 소녀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제공 : 킹콩by스타쉽 

지난날 사람들은 김태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하면서 주눅 들지 않고, 겁먹지 않고, 제 몫을 해내느냐고. 〈아가씨〉의 김민희와 하정우, 〈1987〉의 강동원과 유해진, 〈미스터 션샤인〉의 이병헌, 〈승리호〉의 송중기…. 그동안 김태리가 합을 맞춰온 배우들이다.

이제 사람들은 김태리에게 묻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거나 어떤 부분에서는 넘어섰다. 대신 그 질문은 김태리의 상대역, 김태리의 라이벌, 김태리의 대척점에 선 배우에게 넘어갔다. 바로 김지연이다. 이제 김지연은 “어떻게 김태리에게 밀리지 않고, 제 몫을 해낼 수 있었냐”는 질문을 받는다. 지난 3월 종영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김태리의 이야기였으나 동시에 김지연의 이야기였다. 김태리가 펜싱을 하게 된 동기, 김태리가 펜싱 선수를 하며 가장 영광스러웠던 순간, 김태리가 펜싱을 그만둘 때 마주 안고 울었던 사람은 모두 김지연이었다. 그 동기 부여가 가능할 사람, 그 결론이 납득이 갈 사람, 김태리와 대등하게 칼을 겨눌 수 있는 사람으로 선택된 그는 제 몫을 톡톡히 해냈고, 누구의 그늘에 가려지지도, 의미 없는 기싸움을 하지도 않고 함께 빛났다.

아이돌 출신의 배우가 이제는 이슈가 되지도 않을 만큼 흔해졌다. 우주소녀의 보나로 불린 김지연은 자신의 연기에서 아이돌의 흔적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아이돌을 준비하며 얻은 근성, 아이돌로 활동할 때 가졌던 완벽에 대한 욕심, 순발력과 속도감을 무기로 삼는다. 아이돌 경력을 극복하려 애쓰기보다 아이돌과 배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활짝 웃는 그는 이 둘의 시너지가 자신을 더 빛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김태리, 남주혁 등 큰 선배들과 함께 주연을 맡았습니다.

“제가 겁이 많은 성격이 아닌데도 초반에는 긴장을 많이 했어요. (나)희도 언니(김태리)랑은 촬영 3개월 전부터 함께 펜싱을 하면서 울고 웃었는데 그 시간이 촬영에 들어가서도 도움이 됐고, 덕분에 편하게 현장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태리 언니는 항상 ‘하고 싶으면 테이크 더 많이 가도 되니까 긴장 풀라’고 이야기줬고요.”


희도의 라이벌이자 절친인 고유림은 많은 라이징 스타들이 탐내는 역할이었을 텐데요.

“오디션을 보러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갔는데 전 오디션 마지막 날 마지막 순서였어요. 오디션 현장에서도 분위기가 좋았고 4부까지 리딩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연락을 받았어요.”


1995년생인데요. 작품속에서 1990년대 고등학생으로 살아낸 시간은 어떤 기억인가요.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더라고요. 저는 연습생 생활을 오래해서 특별히 학교 친구들과의 에피소드가 없었어요. 희도와 유림뿐 아니라 태양고 5인방과의 관계에서 저도 위로를 받았어요. 같이 교복 입고 떡볶이 먹고 했던 기억은 실제로 추억이 됐고요. 이 시간이 저에게는 진짜 고등학교 시절같이 남을 것 같기도 해요.”


실제 김지연의 ‘스물다섯’ 그리고 ‘스물하나’는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저는 스물둘에 데뷔를 해서 스물하나는 치열했어요. 치열하고 조급했죠. 잘될 수 있을까, 잘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더 혹독하게 대했던 거 같아요. 스물다섯에는 그래도 조금 즐기게 됐어요. 우주소녀 앨범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볼 수 있었고, 처음으로 해외에서 뮤직비디오도 찍어보고요. 그때 첫 음악방송 1위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돌 우주소녀로도 성취를 이뤘고, 배우로서도 방점을 찍었습니다.

“제가 승부욕이 정말 강한 편인데, 뭔가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이걸 못해내는 내가 싫어서예요. 꼭 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후에 뭔가 힘들거나 후유증이 남을 만큼은 아니에요. 딱 봐서 못 할 것 같을 때는 포기도 빨라요(웃음). 다만 뭔가를 할 때 제 능력의 최대치를 내려고 해요. 아이돌 초반에는 생각한 만큼 안 나오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다음번 무대에 지장이 생기더라고요. 그 후로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최선을 다하자, 라는 생각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우주소녀 보나는 연기하는 김지연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이돌로 활동한 경험은 제게 모든 걸 빠르게 습득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줬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두려움도 없어졌고요. 무대에서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긴장도 덜합니다. 새로운 상황에서 대처 요령도 빨리 파악되고요. 연기하는 김지연은 덕분에 생각이 넓어졌어요. 연기를 하면서 내 생각도 확고해지고, 서툴렀던 감정 표현이나 낯가림도 좋아졌고요.”



펜싱은 직선적인 스포츠죠.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고요.

“그래서 저랑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일단 짧고 빠르게 점수가 난다는 것, 승부욕에 최적화된 게임이라는 것, 노력한 만큼 결과가 바로 보인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저는 콘서트 할 때도 땀을 많이 안 흘리는데 펜싱은 한 시간만 해도 땀이 쏟아졌어요. 특히 대본에 그려진 고유림 자체가 좋았습니다. 대본만큼만 표현해도 성공이라 생각했어요. 유림이는 가족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살죠. 그래서 벼랑 끝에 서자 고양이가 호랑이에게 덤비듯 덤비고요.”


호랑이는 김태리 배우가 맡은 나희도였을까요.

“희도는 유림이에게 넘어야 할 산 같은 존재이면서 가장 의지하는 존재죠. 일찍 철든 유림이가 가장 솔직하게 대하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촬영하면서 김태리 언니를 지켜보니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잘해내고 주위를 잘 챙기더라고요. 제가 촬영 경험이 많진 않지만 현장에서 어떤 배우를 보며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습니다. 촬영 시작 전 3개월의 펜싱 준비 기간이 있었어요. 김태리 언니가 4개월 먼저 시작했고 준비하는 걸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죠. 아이돌로서는 이렇게 긴 시간 한 작품을 준비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첫 회 때 언니의 나희도를 보면서 이렇게 채우고 쌓아왔구나, 하는 게 보였습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작품을 하기 전과 후의 저는 생각과 마음가짐이 아주 많이 바뀌었어요.”


김태리 배우는 당신을 두고 “빛나는 재료를 많이 가진 배우”라고 했습니다.

“배우로서 저를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처음 본 분들도 있을 거고요. 저는 금메달리스트에 맞는 펜싱 실력, 운동선수에 맞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관계마다 여러 모습을 갖고 있어서 다양하게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제작진,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연기하길 잘했다고 느끼나요.

“아직 배워가는 중이긴 하지만 가수 할 때와는 또 다르게 연기하는 동안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게 나오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껴요. 재밌다는 생각을, 잘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돌은 완성된,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한데 연기는 현장에서 새로운 지점들, 생각지도 못한 감정이 나와요.”


예를 들면요.

“처음으로 신기하다고 느낀 장면은 유림이와 가족의 첫 신이었어요. 첫 장면이 유림이가 아빠한테 안기는 건데, 제 본체가 낯을 좀 가려서 걱정을 했습니다. 포옹을 잘할 수 있을까 했는데, 리허설 때부터 신나게 달려가서 안기는 걸 보고 저 스스로 신기했어요(웃음). 사실 대본에는 운다는 내용이 없는데 눈물 흘리는 장면이 많았거든요. 평소 전 눈물이 없는데 촬영할 때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런 게 재밌었어요.”



2017년 〈최고의 한방〉으로 시작해 〈란제리 소녀시대〉 〈오! 삼광빌라!〉를 거쳐 〈스물다섯 스물하나〉까지 왔네요. 꾸준한 걸음입니다.

“이제 좀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본을 읽을 때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생각하게 되고요. 처음 연기할 때는 (배우들이 서는 위치를 지정해주는) T바도 몰랐어요(웃음). 이제는 없어도 알아서 척척 섭니다. 전보다는 조금 더 섬세하게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러고 싶고요.”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죠.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 꿈이었나요?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연습생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친구들에게서 ‘연예인 하고 싶어 하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주위에서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너 연예인 하면 되겠다’ ‘할 수 있겠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집에 가서 ‘엄마 나 할 수 있나 봐. 사람들이 연예인 하래’ 그랬어요. (일동 웃음) 그러던 중에 춤을 배웠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때 아이돌 시장이 열릴 때라 소녀시대 데뷔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 나 가수 할래’ 했고요.”


어릴 때 눈에 띄는 인물이었군요.

“음… 모르는 학교 친구들이 찾아와 선물을 준 적은 있습니다(웃음).”


작품이 끝나면 다시 우주소녀의 보나로 돌아가겠죠.

“가수냐 배우냐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가수일 때는 가수 일에, 배우일 때는 배우 일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멀리, 크게 목표 두지 않고, 길게 생각하지도 않으려 고요. 지금 주어진 일 잘하고, 앞으로도 당장 눈앞의 일들을 잘해내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그나저나 고유림은 나희도를 한 번도 이기지 못했는데, 승부욕 강한 입장에서 괜찮았나요?

“그러니까요. 처음에는 ‘진짜 한 번도 못 이기나’ 싶어서 분하기도 했는데요. 유림이는 뭔가를 지키기 위해 펜싱을 하고 희도는 펜싱이 너무 좋아서 그 자체를 즐기면서 하잖아요. 즐기는 사람은 못 당하는구나를 배웠습니다. 그건 유림이뿐 아니라 제게도 교훈이었고요.”


우주소녀는 ‘우주의 중심은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다. 한중합작그룹인 팀에서 김지연은 꽃봉오리 보(藵), 아름다울 나(娜)를 써서 보나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누구와 비교하기보다 나 스스로가 중심이라고 믿는 패기, 그 단단한 중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끈기. 승부욕은 있으나 겁이 없는 그는 차곡차곡 자신만의 커리어를 완성해간다. 꽃봉오리가 만개하기 직전의 순간, 그것이 청춘이라면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는 김지연의 청춘이 담겼다.
  •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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