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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밖에 안 보여, 안보현

글 : 선수현 기자  / 사진제공 : 넷플릭스 

안보현의 고향은 부산 영도다. 친구들과 갯바위에서 수영을 하고 대나무에 낚싯줄 감아 물고기를 잡으면서 해가 저무는 것도 모르고 놀던 개구쟁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복싱을 시작하고 체육 특기생으로 진로를 정했다. 부산 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전해 금메달까지 거머쥘 정도의 실력파 선수였다. 하지만 잦은 부상을 겪으며 운동을 그만뒀다. 그즈음이었다. 영화 〈챔피언〉과 〈주먹이 운다〉를 보며 막연하게 연기자의 꿈을 갖게 된 것도.

넷플릭스 〈마이 네임〉은 안보현을 다시 출발점으로 이끌었다. 촬영 대부분이 부산 영도에서 이뤄졌다. 유년 시절 곳곳에 추억이 깃든 동네. 친구들과 종종 지나치던 소각장도 그대로였다. 마치 그를 위해 장소를 정한 듯 현장에는 친숙함이 가득했다. 그가 맡은 형사 ‘전필도’의 주특기는 복싱이다. 처음 시나리오에서 필도는 유도 전문이었지만, 안보현의 복싱 이력을 감안해 설정에 변화를 줬다고 한다. 〈마이 네임〉에는 액션 느와르 장르 특성상 주먹다짐 장면이 많은데 덕분에 그는 누구보다 생생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솔직히 운동을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오랫동안 복싱을 하며 이골이 났달까요. 다만 배우로서 운동 경력이 작품을 하는 데 장점이 될 수 있어 지금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어요. 운동을 오래 해서 반사 신경도 괜찮은 편인데 의도치 않게 합이 안 맞는 액션 장면에서도 부상을 방지할 수 있더라고요. 대역을 쓰지 않아도 되고.”

부산에서 펼치는 복싱 액션. 그에겐 촬영 과정만으로도 흥미로운데 벅찬 결과까지 안게 됐다. 〈마이 네임〉이 넷플릭스 글로벌 시청 순위 3위를 차지한 것. 덩달아 안보현의 SNS에는 해외 팬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지금의 자신을 키워온 곳에서 그는 글로벌 스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차가움 속에 있는 따뜻함

넷플릭스 〈마이 네임〉에서 마약수사대 형사 ‘전필도’로 열연한 안보현.
〈마이 네임〉에서 안보현이 맡은 전필도는 마약수사대 소속 형사로 소신과 원칙을 갖고 수사를 펼쳐가는 인물이다. 필도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대입하며 몰입해갔다. 마약 피해로 죽음에 이른 필도의 여동생, 곁을 주지 않는 필도의 캐릭터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갔다. 안보현은 아끼는 친여동생을 떠올렸고 학창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며 오랜 시간 느낀 외로움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꺼내 올렸다. 평소 정의롭게 살고 싶은 마음도 대입했다.

필도에 빠져들수록 선명해지는 교집합이 보였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나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혼자 헤쳐 나가는 모습이 자신과 같았다. 필도 캐릭터에서 발견한 “차가움 속에 있는 따뜻함”은 곧 안보현 자신이기도 했다.

“필도와 제가 비슷한 면이 많더라고요. 아픔이나 슬픔이 있으면 혼자 삭이고 이겨내는 게 저도 그렇거든요. 마약수사대 형사로 일하며 과거의 아픔을 잘 이겨내고 자신이 맡은 일을 강단 있게 해내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어요.”


악역 말고 이런 역할도 가능하다고?

넷플릭스 〈마이 네임〉에서 마약수사대 형사 ‘전필도’로 열연한 안보현.
그는 전필도를 완벽하게 그려냈지만 사실 처음 제안 받은 역할은 ‘도강재’였다. 조직에서 쫓겨나 복수의 칼날을 가는 약물 중독자 강재는 배우 장률이 연기하며 섬뜩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줬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악역 이미지가 강했던 안보현에게 김진민 감독은 변화를 권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그는 필도를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안보현과 장률 모두 착 감기는 인물을 그려낼 수 있었다.

“〈마이 네임〉이 공개되고 차갑지만 선한 역할을 보여줄 수 있어 좋았어요. 전작에서 너무 강하고 무서운 이미지로 각인된 것 같았거든요. 많은 분들이 제 악역만 봐서 눈빛이 선하지 않다고 느끼나 봐요. 댓글 중에 ‘이런 역할도 되네요!’라는 반응이 있었는데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다양한 연기에 도전하고 더 잘해야겠다는 자극이 됐어요.”

안보현은 복싱을 그만둔 후 모델로 활동하다 배우가 됐다. 대다수의 무명 시절이 그렇듯, 그의 역할을 설명하려면 긴 수식어가 필요하다. 〈태양의 후예〉 유시진(송중기)이 이끄는 특전사 부대원 스나이퍼, 〈그녀의 사생활〉에서 성덕미(박민영)를 좋아하는 오랜 친구. 그 외에도 대중에게 선명하게 각인되지 않은 배역들을 수두룩하게 맡았지만, 그는 아무 연고 없는 서울에서 어떤 노동도 마다하지 않으며 묵묵히 배우의 꿈을 키워갔다.

상황이 반전된 건 〈이태원 클라쓰〉에 출연하면서다. 인정받지 못하는 금수저 망나니 ‘장근원’의 유약한 내면을 비열하게 표현해 보는 이의 분노지수를 자극했다. 이어 〈카이로스〉에 출연하면서 그해 연기대상에서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최근에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유미의 세포들〉에서 현실 남자친구 ‘구웅’으로 열연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단발머리, 턱수염 등 웹툰 속 인물과 싱크로율 100% 일치했다. 더욱이 곰같이 무심하지만 연인을 위하고, 꿈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그에게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유미의 세포들〉은 〈마이 네임〉과 비슷한 시기에 공개됐지만 구웅과 전필도는 조금도 겹쳐 보이지 않았다. 각각을 연기한 안보현만 있을 뿐이었다.


캠핑·낚시·사이클링·드론 즐기는 취미 부자


복싱을 하며 다져진 끈기와 체력이 안보현의 기저를 지탱하고 있지만, 동시에 그는 스스로 채울 줄 아는 힘이 있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취미들은 그를 충전하는 동력이 됐다. 지금도 시간을 쪼개 캠핑, 낚시, 사이클링, 드론, 사진 촬영, 기타 연주, 요리 등을 즐긴다. 유튜브 채널 〈브라보현〉에는 올드카를 캠핑카로 개조해 차박을 다니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로 달리고,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요리해 먹으며 일상을 특별하게 채워가는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올라와 있다.

“제가 두 달 정도 일을 안 한 적이 있는데 조바심이 나고 힘들더라고요. 오히려 현장에 나가는 게 마음 편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고 결과물을 보는 게 좋아요. 어려서부터 당근 한 번 주지 않고 채찍질만 하며 살아와서 30대 중반이 된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이 있어요.”

안보현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지금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만든 모래성이 아닌 오랜 시간 노력으로 쌓아온 탄탄한 돌탑과 같은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일상의 소소한 성취감과 행복을 채워가며, 오늘도 안보현은 다시 한 번 고삐를 바짝 죈다.
  •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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