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소프라노 이해원

영혼을 어루만지는 천상의 목소리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제공 : 뉴에라프로젝트 

소프라노 이해원이 부르는 가곡 ‘시간에 기대어’를 듣다가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노래에 자장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변 소음이 차단되고 그가 부르는 노래로 세상이 꽉 차는 듯했다. 지상의 소리 같지 않았다. 그 힘에 이끌려 유튜브에 링크된 그의 노래를 찾아 듣다가 팬이 되고 말았다. 노래도 노래지만 마음이 확 끌린 건 꾸밈과 과장 없는 진솔한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다.

스물여덟 살 소프라노 이해원. 그는 클래식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슈퍼루키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성악과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그 과정에서 수석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콩쿠르 역시 도장 깨듯 1위를 휩쓸었다. 대구성악콩쿠르·광주성악콩쿠르·이대웅콩쿠르 1위, 경북 파바로티 콩쿠르·엄정행 콩쿠르 대상 등이 대표적. 현재는 독일 한스아이슬러음악대학 석사과정에서 소프라노 안나 사무일(Anna Samuil)을 사사하고 있다.

올해는 여러모로 그에게 잊지 못할 의미 있는 해다. 생애 처음으로 소속사가 생겼고(뉴에라프로젝트), 10월 12일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서울 광림아트센터에서 가졌으며, 콘서트 티켓 오픈 10분 만에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도 소속사도 예상 못 한 흥행이었다. 숨어 있는 두터운 팬층을 확인한 소속사 측은 2층 좌석을 추가로 오픈했는데, 이 역시 곧 전석 매진됐다. 공연 며칠 전에 만난 이해원은 이 상황을 얼떨떨해했다.

“진짜 놀랐어요. 지금도 그저 신기해요. 도대체 어떤 분들이 저를 열정적으로 봐주시는 걸까요. 연주회를 하면 10대, 20대 관객이 70~80% 정도 돼요. 대부분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 같아요. 나머지 20~30% 정도는 한국 가곡이나 성악을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이고요.”

그와 함께한 1시간 40분간의 인터뷰는 봄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노니는 시간 같았다. 소통에 능한 데다가 감정 이입을 잘하고, 수시로 ‘까르르까르르’ 웃음을 터뜨려 주변 사람들에게 밝음의 에너지를 스르륵 전염시켰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도전

타고난 재능에 노력으로 다져진 편안한 음색, 어떤 장르든 성악 발성으로 우아하게 소화해내는 능력, 게다가 밝고 명랑한 특유의 에너지까지. 그의 인기 비결이다. 지난해, 이해원은 BTS(방탄소년단) 노래 ‘봄날’을 재해석한 가곡으로 화제몰이를 하며 뉴스에도 등장했다. BTS의 랩이 그의 음성을 거치자 우아한 클래식으로 재탄생했다.

“저는 도전을 좋아해요. BTS의 ‘봄날’ 원곡은 엄청 빠른 랩이잖아요. 편곡 버전을 들어봤는데 좋아서 바로 하겠다고 했죠. 정통 성악에 대한 엄숙주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도전은 늘 설레요. 창법을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이 곡을 잘 소화하면, 이 노래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클래식도 더 좋아해주지 않으실까, 라는 생각도 했어요.”

‘봄날’을 부르는 이해원은 힘을 ‘툭’ 뺀 모습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낮게 읊조리듯 불러 가사를 음미하게 만든다. 오페라 아리아나 가곡을 부르는 그의 음성은 균질한 톤을 유지하지만, 이 노래는 다르다. 가사에 따라 힘 조절을 하면서 부른다. 장르마다 달라지는 창법은 스스로 깨친 부분이다. 무엇보다 가곡을 부를 때 뭉개지지 않는 정확한 발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비결을 묻자 먼저 ‘깔깔깔’ 시원하게 웃고 답변한다.

“정확한 발음에 집착하는 편이에요. 다른 나라 언어는 자신 없지만, 한국 가곡만큼은 아주 잘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발음이 좀 안 좋은 것 같으면 펜을 입고 물고 가사를 읽어보기도 하고, 평소에도 발음을 또박또박 하려 해요. 또 노래하면서 가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이 가사는 발음을 어떻게 해야 어울리지? 어떻게 해야 이 부분이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릴까?’를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해요.”


음악 선생님 아버지, 작곡 공부한 어머니

그가 노래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 타고난 음색은 DNA 힘이 크다. 그의 부모 둘 다 음악에 조예가 깊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을 하다 올해 정년퇴직했고, 어머니는 작곡을 공부했다. 그를 지금의 실력으로 이끈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부모의 한결같은 지지와 응원, 또 하나는 이해원 스스로 길을 헤쳐 나가는 자기주도성.

음악 DNA를 물려준 부모, 일찌감치 찾은 적성, 엘리트 코스에 독일 유학까지. 겉으로 보자면 부모가 앞에서 이끄는 금수저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음악을 시작한 12세부터 16년의 시간은 이해원 스스로 결정하고 노력하고 책임지는 과정이었다. 콩쿠르 우승 등 실력이 검증될 때마다 저명한 레슨 선생님을 모실 수도 있었지만 이해원은 12세 때 만난 첫 음악 선생님과의 호흡을 대학 입시 때까지 지켜나갔다. 그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각종 콩쿠르를 찾아서 접수하는 것도, 대입용 자기소개서 작성도 그 흔한 학원 도움 하나 없이 혼자서 해냈다. 자기주도성이 정점을 발휘한 건 유학길에서였다.

“처음엔 미국에 가고 싶었어요. 맨해튼에 있는 한 교수님을 만났는데 ‘너는 동양인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정말 잘하지 않으면 장학금 받기 쉽지 않다’고 냉정하게 말씀해주셨죠. 그럴 바에야 유럽 무대로 나가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 가려고 모아둔 비행기 값으로 비엔나에 갔고, 1차에서 한국인 중 저 혼자 합격했어요. 그런데 비엔나는 생각보다 작더군요. 극장도 하나밖에 없고요. 승산이 없겠다 싶어 독일을 떠올렸고, 독일 중에서도 수도 베를린으로 가자고 결심했어요. 학교요? 친구들에게 ‘베를린에서 무슨 학교가 좋아?’ 물어서 원서를 넣었습니다. 독일어 자기소개서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의 중학생 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내가 좋아서, 나만 좋고 싶지 않아서


이해원은 현재 독일에서 두 살 터울 여동생 이주원 비올리스트와 함께 산다. 그곳의 하루하루는 치열한 연습벌레의 삶이다.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고, 그날 목표는 꼭 달성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의 모토는 “가장 먼저 연습실에 도착해서 가장 늦게 돌아오자”라고.

이해원은 지금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전 세계 대중과 소통하는 음악가로서 출발점.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라는 평범한 질문에 그는 이런 답변을 했다.

“‘노래 잘하는 소프라노’보다 ‘누군가의 마음을 터치하는 소프라노’라는 칭찬을 받고 싶어요. 이탈리아 데뷔 무대를 마치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시더니 이탈리아어로 그날 제 연주가 가장 감동적이었다며 따스하게 안아주시고 제 사인을 받으셨어요. 그분의 눈빛이 아직도 선해요. 또 한 한국인 친구는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제 노래를 듣고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전해왔어요. 이런 피드백이 저를 음악가로서 숨 쉬게 해요.”

우문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던졌다. ‘노래를 왜 하나요?’라는. 그는 어록 같은 현답을 내놓았다.

“제가 좋아서, 또 저만 좋고 싶지 않아서요.”

비장하게 한마디로 답변한 그는 분위기를 바꿔 ‘깔깔깔’ 웃더니 말을 이었다.

“제 성격이 그래요. 제가 써보고 좋은 것, 먹어보고 맛있는 건 꼭 누군가에게 권해야 직성이 풀려요. 화장품이든, 음식이든, 책이든 뭐든요. 음악은 그중 최고죠. 노래를 부르면서 환상적일 만큼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하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노래해요. ‘이 음악 들어보세요.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라고요.”
  • 2021년 1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딥다운   ( 2021-11-16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기사 읽는 내내 미소가 지어집니다. 저도 시간에 기대어를 정말 좋아해서 통화연결음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신사에 음원이 없어서 직접 제작을 부탁했더니 바로 만들어 주더군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